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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미국 AI 기술을 따라잡았나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19 18:58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미국이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처음에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 수출을 전면 봉쇄했을 때 의외로 중국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GPU는 인공지능 산업의 핵심 자원이다. 거대한 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막대한 연산 능력을 GPU가 담당한다. 

 

그런데 그 공급이 갑자기 끊겼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내 연구소와 기업은 일제히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서버는 멈췄고 학습 프로젝트는 중단됐으며 데이터센터 곳곳에서 불이 꺼졌다. 업계에서는 “마침내 중국의 AI는 끝났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몇 달 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중국의 연구기관과 빅테크 기업들이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칩이 막힌 상황에서 어떻게 학습이 가능했는지 누구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일부 모델은 연산 효율성 면에서 오히려 미국 제품을 앞섰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글로벌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미국이 장벽을 세운 자리에 중국은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고 있었다. GPU의 부족을 약점이 아닌 기회로 바꿔버린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생존 본능에 가까운 적응”이라고 표현한다. 불가능해 보이던 환경에서 오히려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이제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어떻게 칩이 봉쇄된 나라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을 뒤쫓을 수 있었을까.

 

중국, GPU가 바닥나다

 

2023년 10월,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최신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1년 전부터 A100과 H100 같은 고성능 GPU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이번 조치는 훨씬 더 강도 높았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AI 칩을 군사 연구나 감시 시스템 등 전략적 목적으로 전용할 가능성을 경계하며 엔비디아가 중국 전용으로 성능을 낮춰 출시했던 A800과 H800까지 금지 목록에 추가했다. 

 

이로써 중국으로 향하던 거의 모든 미국산 첨단 AI 칩의 통로가 막혔다. 사실상 ‘AI 반도체 철의 장막’이 내려진 셈이었다.


당시 미국의 판단은 명확했다. 인공지능 기술 경쟁이 국가 안보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면서 첨단 반도체는 전략 자산으로 승격됐다. 미 상무부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슈퍼컴퓨터급 연산망을 구축해 인공지능 연구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AI 기술이 군사적 우위를 결정할 수 있는 시대에 연산 칩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것은 국가 안보의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이 결정은 즉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GPU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미국의 제재가 시작된 이후였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두 등 주요 기업은 엔비디아 칩을 사재기하듯 매입했지만 재고는 빠르게 바닥났다. 데이터센터 증설 계획은 연쇄적으로 취소됐고 AI 모델 학습 프로젝트들이 중단됐다. 일부 스타트업은 학습용 서버를 해외로 이전하려다 비자와 허가 문제로 발이 묶였다.


당시 글로벌 시장의 반응은 비슷했다. “중국의 인공지능 산업은 최소 5년은 뒤처질 것”이라는 진단이 쏟아졌다. AI 모델의 연산량을 결정짓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GPU라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AI 학습용 칩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고 대체 가능한 제품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반도체 장비 기업과 소재업체까지 동참한 미국의 수출 통제는 곧 ‘AI 산업 봉쇄’로 이어졌다.

 

그러면 칩이 없는데 AI 학습은 어떻게 했을까. 

 

칩이 막힌 뒤에도 중국의 AI 연구가 멈추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버티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GPU 수입이 끊기자 중국은 즉시 대체 자원을 찾아 나섰다. 그 중심에 선 것은 화웨이였다. 

 

화웨이는 미국 제재 이후 자체 개발한 ‘Ascend(어센드)’ 시리즈 칩을 내세워 대형 언어모델(LLM) 학습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원래 Ascend는 고성능 클라우드용 칩이 아니라 스마트폰용 NPU에서 발전한 연산칩이었지만 화웨이는 이를 데이터센터급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신 버전인 Ascend 910B와 Ascend 910C는 이미 일부 국영 연구소와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주력 장비로 자리 잡았다. 엔비디아 칩 대비 절대 성능은 떨어지지만 ‘국산으로 대체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칩 자원이 부족하자 연구자들은 기존에 ‘버려지던’ 연산 자원까지 모조리 끌어다 썼다. 스마트폰 카메라용 감지센서, 차량용 엣지칩, 로봇용 프로세서까지 학습용으로 개조됐다. GPU 한 장 값으로 엣지칩 수백 개를 묶어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런 저비용 고효율 구조는 속도는 느리지만 비용 대비 결과가 뛰어나 ‘중국식 분산 학습’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실제로 베이징과 선전의 일부 연구소에서는 수천 개의 저성능 칩을 병렬로 묶은 자체 데이터센터가 운영 중이다.


여기에 더해 중국 연구진은 ‘클러스터 최적화’라는 새로운 무기를 꺼냈다. 이는 동일한 연산 능력을 가진 장비라도 소프트웨어 구조를 바꿔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모델을 쪼개서 병렬 학습하는 대신 메모리 사용량과 네트워크 병목을 줄이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기존 칩에서 더 많은 연산을 뽑아내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같은 칩을 더 똑똑하게 쓰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중국의 기술 문화 자체를 바꿔놓았다. 과거 미국이 ‘성능’에 집중했다면 중국은 ‘효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고급 칩이 없으니 남은 칩을 끝까지 짜내는 기술이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신기술이 쏟아졌다. 


연구자와 빅테크 인력은 다 미국으로 갔는데 그 공백은 어떻게 메웠나.

 

엔비디아 칩이 막힌 뒤 중국 AI 산업이 직면한 두 번째 위기는 인재였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주요 AI 연구자 대부분은 미국 대학이나 실리콘밸리 기업 출신이었다. 

 

구글 브레인, 메타 AI 리서치,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출신 인력이 중국 빅테크로 흘러들어가면서 산업의 초석을 다졌지만 미·중 갈등 이후 비자 제한과 제재로 그 흐름이 끊겼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은 인재를 수입하지 않고 ‘양산’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2020년 이후 주요 대학에 AI 전공 정원을 대폭 늘리고 국가급 인공지능 연구원을 잇따라 설립했다. 박사급 연구자 수는 불과 5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었고 졸업생들은 곧바로 빅테크 연구소나 스타트업으로 흡수됐다. 

 

이 과정에서 독특한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이 빠르게 대기업으로 이전되고 그 기술이 스타트업으로 분사되었다가 다시 대기업에 인수되는 형태다. 

 

‘랩–대기업–스타트업’으로 이어지는 이 순환 고리는 자본과 연구가 끊기지 않게 만드는 핵심 구조가 되었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디지털사이언스(Digital Science)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인공지능 관련 논문 수에서 이미 미국을 앞질렀으며 AI 특허 출원 건수는 미국의 6배를 넘어섰다.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인용지수와 학술지 게재 비중에서도 질적 향상이 두드러졌고 특히 생성형 AI 분야에서는 전 세계 연구의 40% 이상이 중국 기관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또 하나의 전환점은 오픈소스였다. 중국은 글로벌 AI 연구 네트워크에서 고립되자 오히려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버렸다. 바이두의 ‘ERNIE’, 알리바바의 ‘Qwen’, 그리고 최근의 ‘DeepSeek’ 모델들은 모두 공개 가중치를 제공해 수천 개의 중소 연구팀이 이를 기반으로 실험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 오픈소스 모델과 데이터셋이 폭발적으로 퍼지면서 연구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중국은 인재 수입 대신 양산, 유입 대신 순환, 폐쇄 대신 공유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그 방식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효과를 냈다. 미국에서 빠져나간 인재의 공백은 이제 중국 안에서 재조립된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가 메우고 있었다.

 

그러면 어쨌든 미국처럼 거대한 모델은 못 만드는 것 아닌가.


맞다. 중국은 아직 미국처럼 수십억 개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모델을 마음껏 돌릴 여력은 없다. 하지만 시장이 무섭게 보는 건 크기가 아니라 ‘속도’다. 미국이 천천히 정교한 모델을 만드는 동안, 중국은 일단 돌아가는 모델을 최대한 빨리 시장에 던졌다. 

 

그게 오픈모델 전략이다. 오픈AI가 모델을 폐쇄형으로 운영하며 보안과 상업성을 강조한 반면 중국 기업들은 가중치와 학습 코드를 공개해 ‘복제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수백 개의 연구소와 스타트업이 동시에 모델을 미세조정하면서 속도가 폭발적으로 붙었다.


바이두의 ERNIE, 알리바바의 Qwen, 바이트댄스의 Doubao 같은 모델들이 바로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GPT-4급의 완성도를 목표로 하기보다 ‘실사용 데이터’를 쌓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Qwen은 일반 사용자와 기업 고객의 대화 데이터를 매일 업데이트하며 실제 사용 과정에서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모델에 반영된다. 

 

바이두는 검색·지도·클라우드·자동차 OS 등 자사 생태계 전반에 AI를 얹어놓고, 그 모든 서비스에서 데이터를 흡수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미국 기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다.


중국의 장점은 ‘대중 확산형 구조’다. 즉, 모델 하나를 완벽하게 만드는 대신 수천 개의 모델이 동시에 퍼지고 진화하는 방식이다. 모델이 오픈소스로 풀리면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서비스에 맞게 바로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사용 데이터가 다시 상위 모델로 흘러 들어간다. 

 

그야말로 대규모 현장 피드백 실험이 매일 벌어지는 셈이다.


미국의 AI가 실험실에서 다듬어진 정제된 기술이라면 중국의 AI는 시장 속에서 부딪히며 진화하는 생명체에 가깝다. 그래서 시장은 중국을 두려워한다. 완성도의 차이는 여전히 있지만 속도와 확산력에서 중국은 이미 독자적인 경기장을 만들어버렸다. 

 

결국 AI 경쟁의 무게추는 ‘누가 더 크냐’가 아니라 ‘누가 더 빨리 쓰이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결국 미국의 제재가 실패한 것인가?

 

미국의 제재가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역효과’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애초 미국이 원했던 것은 중국의 AI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GPU 공급을 차단하면 중국의 모델 학습이 중단되고, 연구개발 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흘렀다. 제재 이후 중국의 칩 자립과 효율화 속도가 오히려 가속화된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과도하게 공격적인 수출 통제는 기술 격차를 벌리기보다 오히려 중국 내부 혁신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제재로 외국 칩이 끊기자 화웨이와 더불어 여러 국영 반도체 업체들이 자국 칩 개발에 총력을 쏟았고 정부는 여기에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했다. 

 

엔비디아의 H100을 대체하기 위해 급히 개발된 화웨이 Ascend 910C는 실제로 주요 AI 기업들의 모델 학습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칩 성능은 여전히 떨어지지만 연구자들이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체감 격차는 예상보다 훨씬 좁아졌다.


또한 미국의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비(非)미국계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우회 거래를 시도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거치는 제3국 경로를 통해 중간재 형태로 들어오는 GPU 부품 거래가 꾸준히 포착됐다. 

 

이런 비공식 루트는 미국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문화의 변화’였다. 제재 이후 중국의 연구 환경은 “없는 자원으로 최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재편됐다. 모델 크기를 키우는 대신 병렬 연산을 최적화하고 메모리 점유율을 줄이는 알고리즘이 집중적으로 개발됐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모델들이 DeepSeek이나 Qwen처럼 글로벌 시장에까지 진출했다. 미국의 벽이 오히려 ‘적응 훈련소’가 된 셈이다. 물론 제재가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과 장비 부문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고 중국의 자립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AI 산업의 핵심 동력이 하드웨어를 벗어나 ‘데이터–효율–확산’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서 제재는 목표했던 만큼의 억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결국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발목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스스로 달리게 만들었다. GPU를 막았더니 중국은 GPU를 덜 쓰는 길을 찾아냈고 인재를 막았더니 자국 인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제재가 기술을 봉쇄하기는커녕 새로운 기술의 한 갈래를 만들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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