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성능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바로 ‘파라미터(parameter)’다. 예전엔 이 숫자가 많을수록 똑똑하다고 여겨졌다. 챗GPT, 클로드, 제미니 같은 모델들이 “몇백억 개, 몇천억 개의 파라미터를 탑재했다”는 식으로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파라미터는 AI의 뇌세포에 해당한다. 문장을 읽고 세상을 해석하는 규칙이 모두 이 숫자들 안에 저장돼 있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를 보면 색, 맛, 문맥, 문법적 위치까지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모든 연결의 강약이 파라미터라는 숫자값으로 정리된다.
학습 과정은 이 수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일이다. 다음 단어를 맞히면 연결의 점수가 올라가고 틀리면 내려간다. 이런 조정이 수억 번 반복되면 모델은 문맥을 읽는 감각을 얻게 된다.
파라미터가 많을수록 모델의 ‘지도’는 정교해진다. 단어와 문장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더 잘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문체 차이, 은유와 직설의 구분, 수학적 추론과 일상적 표현을 다르게 처리하려면 그만큼 많은 기억공간이 필요하다.
초창기엔 단순히 크기를 키우는 것만으로 문법 오류가 줄고 긴 문맥 유지가 개선됐다. 데이터에 없는 조합도 그럴듯하게 메워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업계는 오랫동안 “파라미터가 곧 지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공식이 깨졌다. 파라미터를 두 배로 늘렸는데 성능은 몇 퍼센트만 오르는 시점이 온 것이다. 학습비용과 전력소모는 폭증했고 효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기술이 한계에 부딪쳐서가 아니다. 모델이 커질수록 학습의 본질적인 비효율이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결국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존재다. 하지만 이미 GPT 계열 모델들은 인터넷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공개 텍스트를 학습했다. 교재가 바닥난 상황에서 아무리 뇌 용량을 키워도 새로 배울 내용이 없다.
결국 같은 정보를 더 정교하게 암기하는 수준에 머무르며 이해력은 크게 늘지 않는다. 게다가 모델이 커지면 내부에 중복된 회로가 늘어나고 비슷한 일을 하는 파라미터들이 서로 엇갈려 작동하기 시작한다. 숫자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 아니라 단점으로 작용하는 시점이 언젠가 온다는 뜻이다.
이건 인간의 뇌로 치면 너무 많은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판단이 흐려지는 것과 비슷하다. 연산 구조도 점점 복잡해진다. 파라미터가 많아질수록 데이터가 오가는 통신량이 폭증하고 GPU 간의 계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병목이 생긴다.
머리는 커졌는데 오히려 반응 속도는 느려지는 셈이다. 실제로 GPT-4급 모델 하나를 돌리는 데 들어가는 전력은 중형 도시가 한 달 동안 쓰는 전기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되면 ‘크다’는 건 더 이상 장점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학습비용과 유지비용은 치솟는데 결과는 미미하기 때문에 업계가 방향을 바꾼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이제 인공지능의 발전은 덩치를 키우는 것보다는 같은 덩치로 얼마나 영리하게 사고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옮겨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AI의 똑똑함을 결정하는 요소가 파라미터 크기가 아니라 데이터 품질과 학습 방식, 구조 설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거대한 모델을 무작정 키우는 대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쓰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최근의 AI 모델들은 질문의 성격에 따라 필요한 회로만 선택적으로 작동시킨다. 이른바 ‘전문가 혼합(Mixture of Experts)’ 구조다. 언어 관련 질문이면 언어 전문가 네트워크만, 수학 문제면 계산 전문가 네트워크만 활성화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채용하면 전체 파라미터는 수천억 개라도 실제로는 그중 일부만 쓰이기 때문에 연산량과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덕분에 작은 모델도 대형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내게 됐다.
중국의 딥시크(DeepSeek)가 그 대표적 사례다. 서방의 거대 모델보다 훨씬 적은 파라미터로 GPT-4급 성능을 내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크기가 곧 성능”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업계는 이를 ‘딥시크 쇼크’라 부른다. 딥시크 쇼크는 AI의 경쟁력이 ‘거대함’에서 ‘정교함’으로 옮겨간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이제 GPT-5, 클로드 v4.5 같은 AI 최신 모델을 발표할 때도 파라미터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의미가 약해졌고 경쟁사에게 기술력과 학습 비용을 추정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마케팅의 중심은 숫자에서 체감으로 옮겨갔다.
예전엔 “GPT-3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졌다”가 메시지였다면 지금은 “GPT-5는 이만큼 인간처럼 추론할 수 있다”가 핵심 문장이 되었다. 파라미터 집착의 끝은 기술의 성능을 판정하는 척도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그 자체를 따라잡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BEST 뉴스
-
말하는 AI 말고 고르는 AI…'결정 모델'은 무엇인가
미국 스타트업 무수비(Musubi)가 6일(현지시간) 콘텐츠 검열용 AI 모델 'PolicyLM-1.7B'를 공개했다. 플랫폼 운영자가 일상 언어로 쓴 운영 정책을 읽고 채팅 메시지가 정책 위반인지 판정하는 모델이다. 짧은 메시지 하나를 판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중간값 기준 0.035초다. 무수비는 모델 가중치(AI... -
가장 비싼 AI가 1등이 아니다…클로드 신모델 3종 '용도별 골라 쓰기'
앤트로픽이 이달 들어 AI 모델 3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클로드 사용자의 선택지가 복잡해졌다. 최상위 모델인 '클로드 페이블 5.1'이 1일 출시됐고 22일에는 '클로드 오퍼스 5.5'가, 28일에는 '클로드 소네트 5.5'가 나왔다. 가격이 가장 비싼 모델이 성능 시험에서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가격 차...
전체댓글 0
실시간뉴스
-
가장 비싼 AI가 1등이 아니다…클로드 신모델 3종 '용도별 골라 쓰기'
-
맥미니로 AI 돌리기, 어디까지 되고 얼마 들까? "16GB로는 부족"
-
"소 잡는 칼로 닭 잡지 마라"…초고가 AI, 언제 써야 본전 뽑나
-
"이 주식 어때?"라고 묻는다면...AI가 뻔한 답만 하는 이유
-
항상 과거를 살고 있는 AI, 해결 방법은 없는 걸까?
-
AI에게 법 물어봤다가 낭패 본다? 제대로 물어보는 방법
-
뉴스 기사 보기 귀찮은 당신…AI에게 ‘충돌하는 주장만 뽑아라’ 시켜보자
-
“너는 변호사다”…AI 활용 고수들이 쓰는 ‘역할 프롬프트’
-
요즘 똑똑한 개발자들이 ‘AI 두 개를 동시에 쓰는’ 이유
-
“AI로 뭐 만들지?” 묻는다면…오늘 밤 바로 해볼 수 있는 5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