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대 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버릴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은 맨해튼 프로젝트였다. 핵폭탄을 만들기 위한 이 초대형 국책사업은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됐다.
미 정부는 과학자와 군, 기업까지 총동원해 3년 만에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고 과학 기술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처음으로 뿌리내렸다. 맨해튼 프로젝트 자체가 ‘국가 총력 과학 동원 체제’의 상징이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 AI 시대의 미국과 중국이 그 때와 비슷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두 나라가 향하고 있는 목표는 ‘AGI’, 즉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며 창의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AI, 바로 그 기술을 먼저 완성하는 나라가 21세기 패권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기반이 된다.
미국은 이미 정부 주도의 대규모 AGI 프로그램을 추진할 필요성을 공식 문건에 담았다. 국방부와 에너지부, 주요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AI 맨해튼 프로젝트’를 검토 중이며 핵 개발 당시처럼 국가 안보와 산업경쟁력을 동시에 걸고 있다. 그 동안 민간 기업이 주도해온 AI 연구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도 뒤처지지 않는다. 베이징은 ‘신질생산력’이라는 이름으로 AI를 경제와 국방의 중심축으로 올려놓았다. 이미 군사 AI, 자율 무기, AI 행정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국가 차원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술 방패’로 AGI를 본다면 중국은 ‘체제 유지의 핵심 엔진’으로 AGI를 바라본다.
두 나라는 인류의 두뇌를 코드로 재현하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세기엔 우라늄을 농축해 핵폭탄을 만들었다면 21세기엔 데이터와 반도체를 정제해 ‘지능’을 만들어내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경쟁은 매우 높은 확률로 산업 기술의 진보를 넘어 정치와 안보, 나아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시 어떤 나라가 핵무기를 보유했는지, 그렇지 못했는지가 전후 세계의 강대국 여부를 갈랐다면 지금은 AGI가 그 역할을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AGI가 무엇인가. AI는 알겠지만 AGI라는 개념은 영 익숙하지 않다.
AGI는 인공지능(AI)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다. 기존의 AI가 언어 번역이나 챗봇, 자율주행처럼 특정한 분야에만 특화된 기술이라면 AGI는 인간처럼 거의 모든 지적 활동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뜻한다.
지금의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찾아내는 ‘전문 기술자’라면 AGI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문제를 이해하는 ‘전천후 인재’에 가깝다. 예를 들어 한 번은 법률 자문을 하고, 다음 날은 신약을 설계하며 그 다음엔 군사 전략을 짜는 식으로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도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능이다.
지금의 AI는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응할 뿐, 그 안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맥락을 전환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AGI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이해’와 ‘추론’을 인간처럼 수행하려는 시도다.
다시 말해 AGI는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찾는 존재다. 이 기술이 완성되는 순간 인류는 처음으로 ‘사고하는 기계’를 손에 넣게 된다. 전문가들이 AGI를 기술 경쟁이 아닌 패권 경쟁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 생산과 국방, 금융, 행정 등 사회 전반에서 인간이 맡던 의사결정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은 AGI를 국가의 운명을 가를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AGI를 먼저 완성한 나라가 향후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은 쉽지만 현실성이 얼마나 있나.
모든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AGI에 대해 희망적으로 서술한 자료들은 넘쳐나지만 정작 기술적으로 AGI의 구현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설명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이 기사에서는 AGI를 추구하는 AI가 넘어야 할 허들을 설명해 본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존재가 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지금의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말은 잘 하지만 ‘진짜로 생각한다’고 보긴 어렵다. 그 이유는 기술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AGI를 구현하려는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문제는 ‘깊게 생각하기’의 어려움이다. 지금의 AI는 주어진 문장에서 다음에 올 말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쨌든 논리적으로 말이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내용을 깊게 이해하거나 긴 생각의 흐름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를 풀다가 중간에 논리가 꼬이거나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 쉽다. 최근에는 ‘추론형 AI’라고 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늘리는 기술이 등장했지만 오히려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스스로 헷갈리는 문제도 나타났다.
기술로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하자. 기술로도 안 되는 문제,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기억력’의 한계다. 사람은 지난 대화나 배운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연결할 수 있지만 AI는 긴 맥락을 기억하는 데 약하다. 대화가 길어지면 앞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리거나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고 ‘기억을 나눠서 저장하고 다시 불러오는 기술’이 시도되고 있지만 속도와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인간은 어떤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10년 전에 배운 지식이나 5년 전에 했던 경험을 쉽게 떠올려 현재의 판단을 내리는 것에 활용할 수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AI에게 이를 요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다. 기억이 길어질수록 AI는 느려지고 더 많은 전기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2024년 기술인 GPT-4를 기준으로 AI의 기억력을 인간과 비교한다면(대략적으로 인간이 하루에 하는 말의 분량을 감안해서) 몇 시간, 혹은 며칠에 해당할까?
전제가 필요하다. 보통 사람이 말하는 속도를 분당 150단어로 두고 회사나 가정에서 말하는 하루 총 발화량을 1만5천 단어 수준으로 넉넉하게 잡자. 토큰은 대략 영어 기준 1토큰≈0.75단어로 환산된다. 이 가정으로 GPT-4 계열이 기억하는 대화의 길이를 사람의 기억 시간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8K 토큰은 약 6천 단어로 환산되어 연속 발화 약 40분치에 해당한다. 32K 토큰은 약 2만4천 단어로 약 2.7시간치다. GPT-4o에서 지원하는 가장 고급 모델이 기억할 수 있는 128K 토큰은 약 9만6천 단어로 약 10.7시간치다. 하루 발화량과 비교하면 8K는 0.4일, 32K는 1.6일, 128K는 6.4일 분량이다.
대화형 서비스에서는 사용자와 모델의 말이 같은 창고를 공유하므로 실제로는 절반 가량만 사용자 측 내용으로 채워진다. 또 긴 맥락을 끝까지 동일한 품질로 유지하지 못하는 현상이 존재하므로 숫자만큼 “정확히 기억한다”고 보긴 어렵다.
요약하면 8K는 반나절도 못 가고, 32K는 하루 남짓, 128K는 사나흘에서 엿새 사이의 대화량을 대략 담는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 수준으로는 AGI를 구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토큰을 억지로 늘리려면 늘릴 수 있지만 천문학적인 전력과 돈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현실과의 연결’이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세상을 배우지만 AI는 대부분 텍스트로만 배운다. 그래서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배운 지식이 잘 맞지 않는다.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학습시키는 멀티모달(Multimodal) AI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물리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아주 쉬운 예시로 이 문제를 이해해 보자.


도시 위를 지나가는 민간 여객기에 불이 붙어 파편이 떨어지는 재난 상황에서 AI는 카메라로 이 장면을 확인하고 어떻게 판단할까? 적국의 전투기가 폭탄을 떨어뜨려 도시를 공습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난 상황인지를 현재의 AI 멀티모달 기술로 100%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현재의 AI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우선 AI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카메라에 잡힌 비행기의 모양이나 움직임, 주변 환경은 분석할 수 있지만 ‘의도’나 ‘상황의 맥락’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여객기도, 전투기도 크기만 다를 뿐이지 생긴 것은 비슷하다. 폭탄도, 파편도 역시 떨어지는 과정이나 모양은 비슷하다. 눈앞의 물체가 폭탄을 떨어뜨리는 전투기인지, 아니면 사고로 불타는 여객기 파편인지 판단하려면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저것이 왜 여기에 있는가, 무엇이 어떻게 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AI는 여전히 이 부분이 약하다. AI가 정확히 판단하려면 영상뿐 아니라 소리, 레이더, 비행 속도, 전파 신호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야 한다.
허가를 받아서 민간 항로로 정직하게 날아온 여객기의 데이터가 있다면 이것이 여객기라고 판단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또는 허가받지 않은 초음속 항공기가 이상한 곳에서 날아와서 전형적인 폭탄 투하 후 이탈 경로를 그린다면 이것이 전투기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용화된 멀티모달 AI는 주로 ‘영상+언어’ 정도만 본다. 예를 들어 폭격기라면 고도나 속도, 군용 식별신호(IFF) 등을 함께 봐야 하는데 그런 정보가 빠져 있으면 AI는 근거 없는 추측에 의존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해야만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학습할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데 있다. AI가 전투기와 여객기를 완벽히 구분하려면 실제 전투기·민항기 영상 수천만 건을 보고 배워야 하지만 군사 작전이나 재난 사고 영상은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설령 있다고 해도 법적·윤리적 문제로 학습용으로 쓰기 어렵다. 결국 AI는 ‘현실에서 거의 본 적 없는 상황’을 추론해야 하므로 오판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금의 AI는 ‘이건 전투기일 가능성이 높다’ 정도의 추정은 가능하지만 생명을 좌우하는 군사 판단에 쓰일 만큼 확실한 기술력은 아니다.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 오판 한 번이면 민간인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AI의 판단을 그대로 믿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기서는 특이한 예시를 들었지만 앞으로 국가 간 경쟁에서 AGI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런 부류의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세계 최고의 AI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은 지금 이런 문제, 그러니까 AI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상황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를 기술적으로 뚫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 두 나라가 가는 길을 아주 쉽게,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정확히 풀면 이렇다.
AI의 한계를 극복해 진정한 AGI를 구현하려는 노력
미국은 지금 ‘경험하는 AI’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상을 보고 정답을 맞히는 수준을 넘어서 세상 속에서 직접 행동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으로 받으며 학습하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도시 상공에 나타난 전투기와 여객기를 구분하는 문제라면 비행체의 궤도, 속도, 통신 신호, 주변 공중망의 반응 등 수백 가지 변수를 스스로 종합하도록 훈련하는 식이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이 무엇을 종합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AI가 가능한 모든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알아서 무엇을 조합할지 결정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도시 상공에 이상한 비행체가 나타났다 → 항적 데이터를 검토하자 → 허가받은 항로인지 여부를 보자 → 카메라에 잡히는 모양을 보자 → 레이더 정보를 보자 → 공군에서 발령된 경고가 없는지 확인하자 → 당국에 접수된 시민의 신고를 확인하자 → ... 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시각·음성·레이더·위치 데이터 등을 동시에 활용하는 ‘멀티모달+환경 시뮬레이션’ 기술이 결합되고 있다. 가상의 전장이나 도시를 만들어놓고 AI가 수천 가지 상황을 직접 겪으며 스스로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가 추진 중인 ‘AI 에이전트 전장 시뮬레이터’가 대표적인 예다. AI가 단순히 폭격기 영상을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비행 패턴은 민항기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AI가 논리를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중국은 반대로 ‘뇌 모사형 AGI’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인간이 사물을 볼 때는 대체로 형태만 인식하지 않고 기억, 감정, 추론이 동시에 작동하듯이, 중국은 인간의 인지 구조를 그대로 흉내 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차이나 브레인 프로젝트(China Brain Project)’와 ‘베이징 범용인공지능연구원(Beijing Institute for General Artificial Intelligence)’이 이런 연구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AI가 이미지를 본 뒤 단순히 “이건 전투기다”라고 판단하는 것을 넘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스스로 추론하는 내부 회로를 설계하고 있다.
즉 눈앞의 장면을 판단하기 전에 원인과 결과의 연쇄를 계산하는 두뇌 구조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전투기와 여객기 파편을 구분할 때도 모양을 비교하지 않고 “항로가 왜 여기로 바뀌었나, 속도가 왜 떨어졌나, 파편의 낙하 각도가 왜 일정한가” 같은 인과관계를 따지는 식이다.
미국식 접근은 현실 데이터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아 AI를 세상 속에 직접 노출시키는 방식이다. 반면 중국식 접근은 인간의 사고 과정을 흉내 내 AI 내부에 사고 구조를 심어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나라는 모두 기억력과 판단력 강화를 핵심 과제로 보고 있다. 미국은 AGI가 과거 경험을 잊지 않도록 장기 기억 구조를 따로 두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오늘 학습한 전투기 영상을 1년 뒤에도 떠올려 비슷한 상황에 응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인간의 두뇌처럼 지식을 축적하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새 정보를 배워도 기존 지식을 지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덧붙이는 방식이다.
결국 양국의 목표는 같다. AI가 눈앞의 장면을 해석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은 시뮬레이션과 다중 감각 경험을 통해, 중국은 인간 두뇌의 구조를 모방해 이 문제를 풀려 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 AGI 구현에 더 효율적인지는 우리가 곧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우리가 핵무기의 효율성과 전쟁 억지력을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그것을 전쟁의 형태로 확인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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