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AI 규제의 지형을 보면 유럽과 미국이 완전히 다른 방법을 선택한 모습이다. 유럽은 AI를 위험 등급에 따라 관리하는 거대한 법 체계를 거의 완성했고 일부 조항은 이미 시행 중이다.
반면 미국은 연방 차원의 포괄적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기존 법과 주(州) 단위 규제를 중심으로 운영하며 최근에는 백악관 기조마저 “규제보다 혁신” 쪽으로 돌아섰다. AI가 의료, 교육, 금융, 고용까지 파고들면서 “어떻게 안전하게 쓸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된 지금 두 지역의 대응은 더 대비된다.
유럽의 중심에는 ‘EU AI 법(AI Act)’이 있다. 이 법은 AI를 위험 수준에 따라 금지, 고위험, 일반, 범용(GPAI)으로 나눠 관리한다. 예를 들어 개인에게 점수를 매겨 행동을 통제하는 시스템, 사람의 인지에 영향을 주는 은밀한 조작 기술 같은 방식은 금지된다.
이런 항목들은 2025년 2월부터 이미 적용됐다. 또 챗GPT 같은 범용 AI 모델은 2025년 8월부터 투명성 설명자료, 테스트 기록, 위험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개발사가 “이 모델이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일정 수준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위험 AI는 신용평가, 채용, 의료, 교육, 공공 행정처럼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영역에 해당한다. 이 범주의 기업은 2026~2027년까지 품질관리, 인간 감독 장치, 기록 의무 등을 단계적으로 갖춰야 한다. 유럽은 국가마다 AI 감독기관을 설치해 실제 현장에서 이 규정을 집행할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사후 책임 구조도 손질됐다. EU는 본래 AI 전용 배상 규정을 별도로 만들려 했지만 2025년 정책 노선에서 철회됐고 그 대신 2024년 말 통과된 새 제품책임지침이 AI를 포함한 소프트웨어를 ‘제품’으로 분류해 결함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기존에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인한 손해를 제품 책임으로 보기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서버에서 돌아가는 AI 모델도 결함 제품으로 인정될 수 있다. 이 지침은 2026년 말까지 EU 회원국의 국내법으로 편입돼 AI 사고 시 제조사와 운영사에 더 무거운 부담을 준다.
유럽은 여기에 디지털서비스법(DSA)과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겹쳐 AI를 다층적으로 규제한다. DSA는 플랫폼의 알고리즘 투명성을 요구하고 추천 시스템이나 광고 정책이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는지 평가하도록 한다.
GDPR은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대해 정보 제공과 인간 개입을 의무화해 신용평가, 자동 채용 같은 영역에서 AI를 그대로 쓰기 어렵게 만든다. 유럽평의회가 만든 ‘AI와 인권에 관한 국제 협약’도 2024년부터 서명 절차가 진행됐고 회원국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AI의 위험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반면 미국은 연방 차원의 포괄적 AI 법률이 아직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내놓았던 AI 안전 행정명령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폐지됐고 2025년 백악관의 새로운 AI 정책은 “규제 대신 혁신을 우선한다”고 선언했다. 이 정책은 정부 부처가 AI 개발을 방해하는 규정이나 지침을 점검해 수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규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의 AI 위험 관리 기준은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가 만든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가 사실상 기본 지침으로 쓰인다. 모델 개발 단계에서 데이터 품질, 테스트 방법, 위험 분석을 문서화하고 운영 단계에서는 기록과 검증 절차를 유지하도록 권고하는 방식이다.
비강제 규범이긴 하지만 업계 표준처럼 활용된다. NIST는 2024년부터 ‘AI 안전 연구소’를 출범시키고 대형 모델 개발사와 안전 테스트 협력 체계를 꾸렸다. 미국 정부가 직접 모델을 들여다보고 위험을 평가하는 첫 시도이지만 역시 강제성은 없다.
규제 집행의 실질적인 힘은 기존 기관이 가지고 있다. FTC는 AI가 소비자를 속이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불공정 행위로 제재할 수 있고 금융보호국(CFPB)은 차별적 신용 알고리즘을 문제 삼는다. 채용 과정에서 사용되는 자동화 평가 도구는 민권법과 고용 차별 규정의 적용 대상이다.
이뿐 아니라 미 식품의약국(FDA)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의료용 AI나 금융 관련 AI가 부정확하거나 위험할 때 기존 법률로 처벌할 수 있다. 미국은 새 법을 만드는 대신 기존 규제 도구를 그대로 접목해 필요한 부분만 AI에 맞춰 적용하는 방식이다.
주 단위 규제는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24년 제정된 콜로라도 AI 법은 고위험 AI를 사용하는 기업에 위험관리 프로그램, 설명 의무, 로그 기록 보관을 요구한다.
2026년 2월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개발자와 사용자의 책임을 각각 분리해 설정해 AI로 인한 차별과 부당한 영향이 발생할 경우 사업자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명확히 남기도록 한다. 뉴욕시의 자동화 채용도구 규정은 이미 2023년부터 시행돼 기업에 매년 편향 검사 보고를 의무화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유럽은 AI 위험에 대한 사전관리와 사후책임 체계를 이미 완성해가고 있으며 미국은 연방 차원의 강제 규제는 부재하지만 기존 제도와 주법을 활용해 필요한 부분만 조각처럼 관리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먼저 유럽 기준을 충족하는 내부 통제 체계를 갖춘 뒤 미국 시장에서는 NIST 프레임워크를 중심으로 문서화와 기록 관리를 유지하는 방식이 ‘최소 충돌 전략’으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AI가 기업과 국가의 시스템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들의 실생활 전반에 들어간 만큼 앞으로 AI 규제 이슈는 더욱 민감하게 다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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