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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빠른 SSD, 싼 HDD…AI 시대에 다시 뜨는 40TB·100TB 하드디스크 기술

  • 고건 기자
  • 입력 2026.09.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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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가 커지면서 저장장치 기술 경쟁도 다시 빨라지고 있다.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AI 연산을 담당한다면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공급하고 결과물을 쌓아두는 역할은 SSD와 HDD가 나눠 맡는다. 두 저장장치는 겉보기에는 모두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용량을 늘리는 방식부터 원가 구조까지 크게 다르다.


SSD는 낸드플래시(NAND Flash)라는 반도체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남아 있는 메모리 반도체다. 속도가 빠르고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없어 AI 서버가 자주 읽고 써야 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적합하다.


문제는 용량을 늘릴수록 비용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SSD의 저장공간 자체가 낸드 셀이기 때문이다. 같은 세대의 제품을 기준으로 1TB SSD를 2TB로 만들려면 저장 가능한 낸드 셀도 거의 두 배 가까이 필요하다. 컨트롤러와 기판 같은 고정 부품 비용이 있기는 하지만 SSD 원가에서 낸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반도체 제조기술이 발전하면 TB당 가격은 내려간다. 3차원으로 낸드 셀을 더 많이 쌓거나 한 셀에 저장하는 비트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한 셀에 3비트를 저장하는 TLC에서 4비트를 저장하는 QLC로 넘어가는 것도 같은 원리다. 

 

다만 같은 기술 세대 안에서는 용량과 낸드 투입량이 비교적 정직하게 함께 증가한다.


HDD는 구조가 다르다. 내부에 플래터라고 부르는 원형 디스크를 넣고 그 표면의 미세한 자기 상태를 바꿔 0과 1을 기록한다. 용량을 늘리려면 플래터를 무작정 늘리는 대신 같은 표면에 더 많은 데이터를 촘촘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원가 구조를 바꾼다. 20TB HDD 두 개를 사용하려면 모터와 케이스, 전자회로, 기록 헤드 등 기본 부품도 두 세트 필요하다. 같은 데이터를 40TB HDD 한 개에 넣을 수 있다면 기본 부품은 한 세트면 된다. 40TB 제품이 20TB 제품보다 비싸더라도 가격이 정확히 두 배가 될 필요는 없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HDD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SSD가 훨씬 빠르지만 수십 페타바이트에서 엑사바이트 단위로 데이터를 저장하기 시작하면 용량당 비용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당장 계속 불러와야 하는 데이터는 SSD에 두고 접근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규모 데이터는 HDD에 저장하는 계층형 구조가 사용된다.


HDD 업계의 기술 경쟁은 결국 '플래터 한 장에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넣느냐'로 향한다. 이를 면적밀도라고 한다. 같은 크기의 원판에 더 많은 비트를 기록할수록 드라이브 한 개의 용량이 커지고 데이터센터는 같은 랙 공간과 전력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시게이트가 밀고 있는 HAMR가 대표적이다. HAMR는 Heat-Assisted Magnetic Recording의 약자로 열보조 자기기록 기술을 뜻한다. 

 

기존 HDD도 자기 상태를 바꿔 정보를 기록하지만 기록 단위를 계속 작게 만들면 문제가 생긴다. 자기 입자가 너무 작아질 경우 주변 열 때문에 자성이 불안정해지고 저장된 0과 1을 장기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HAMR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순간에만 레이저를 이용해 극히 작은 영역을 가열한다. 열을 받은 부분은 잠시 자성을 바꾸기 쉬운 상태가 되고 기록이 끝난 뒤 다시 식으면서 안정된다. 더 강한 자성을 가진 재료에도 데이터를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 작은 영역에 정보를 넣을 여지가 커진다.


시게이트는 이 기술을 적용한 Mozaic 4+ 플랫폼을 2026년 본격 양산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플래터 한 장당 4TB 이상을 기록하며 10장 구조에서 최대 44TB HDD를 구현했다. 

 

현재 두 곳의 대형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사업자에서 인증을 마치고 양산 공급 중이다. 회사는 장기적으로 플래터당 10TB까지 높여 100TB급 HDD로 확장하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웨스턴디지털은 다른 경로를 택했다. 현재 주력 기술은 ePMR와 UltraSMR이다. ePMR는 기존 수직자기기록 기술을 전자적으로 보조해 더 높은 기록 밀도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UltraSMR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트랙 일부를 지붕 기와처럼 겹쳐 배치해 플래터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웨스턴디지털은 이 기술을 이용한 40TB UltraSMR ePMR HDD를 고객사에서 인증 중이다. 기존 기술 계열을 60TB까지 확장하는 동시에 HAMR도 병행 개발하고 있다. 회사가 제시한 로드맵에서는 ePMR가 60TB까지 이어지고 HAMR는 2027년부터 본격적인 양산 확대에 들어가 2029년 100TB까지 확장된다.


두 회사의 전략 차이는 기술 전환 시점에서 드러난다. 시게이트는 HAMR를 먼저 대규모 양산에 올려 면적밀도를 빠르게 높이는 쪽을 택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이미 검증된 ePMR와 UltraSMR를 계속 개선해 높은 용량을 확보하면서 HAMR 전환 시점을 늦추는 방식이다.


기존 기술을 오래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새로운 기록방식을 양산하려면 기록 헤드와 미디어를 비롯한 생산공정을 바꾸고 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 

 

고객인 클라우드 사업자도 수십만 개 규모로 도입하기 전에 장기간 신뢰성을 검증한다. 기존 기술만으로 필요한 용량을 만들 수 있다면 생산설비와 고객 환경을 급하게 바꾸지 않는 편이 비용과 수익성에서 유리할 수 있다.


반대로 용량이 계속 커지면 HAMR의 의미도 커진다. ePMR와 SMR는 기존 자기기록 방식 안에서 트랙을 더 촘촘하게 배치하고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기록 단위가 작아질수록 자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물리적 문제는 남는다. HAMR는 기록 순간에 열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 한계를 다른 방향에서 해결한다.


웨스턴디지털이 HAMR를 별도 기술로 두지 않고 차세대 대용량 HDD의 핵심 축으로 잡은 이유다. 회사는 현재 두 곳의 하이퍼스케일 고객과 HAMR 인증을 진행하고 있으며 ePMR와 HAMR를 병행해 고객이 원하는 시점에 기술을 전환하도록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한편 웨스턴디지털은 여러 기록 헤드가 동시에 서로 다른 트랙을 읽고 쓰는 High Bandwidth Drive 기술을 공개했다. 기존 HDD보다 대역폭을 두 배 높이고 장기적으로 최대 8배까지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HDD의 약점인 낮은 속도를 일부 보완해 AI 데이터 처리 영역 가운데 지금까지 SSD가 담당했던 일부 구간까지 노리는 기술이다.


시게이트도 HAMR를 통해 용량당 전력과 데이터센터 면적 효율을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같은 10장짜리 플래터 구조에서 각 플래터의 저장밀도를 높이면 서버 랙을 추가하지 않고도 전체 저장용량을 늘릴 수 있다. 

 

회사는 현재 4TB 이상인 플래터당 용량을 향후 10TB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SSD와 HDD의 역할 차이는 앞으로 용량이 커질수록 더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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