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말 현재 산업현장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고가 나면 “왜 사고가 났나”보다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를 제대로 했나”가 더 중요하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종이 점검표, CCTV 녹화본, 교육 서명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이런 자료는 사고가 나면 감독관 앞에서 실질적으로 위험을 관리했다는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다. 법은 회사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가가 아니라 회사가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가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보여줄 기록이 없으면 책임은 고스란히 경영진 몫이 된다.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이 ‘AI 기반 산업 안전관제 시스템’이다. 기존의 CCTV는 사람이 모니터링해야 했고 화면은 수십 개씩 흘러갔다. 사람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AI는 영상 속 위험 상황을 스스로 찾아낸다.
안전모를 쓰지 않은 작업자, 지정된 구역을 벗어난 차량, 높이에서 떨어진 물체, 쓰러진 근로자, 연기 같은 작은 징후까지 즉시 감지한다. 알림을 보내고, 그 장면을 자동으로 저장해 나중에 감독관이 왔을 때 “언제 발견했고, 어떻게 조치했고, 어떤 기록을 남겼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법이 요구하는 ‘발견-조치-보고-기록’ 흐름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술이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AI는 CCTV 화면 속 사람과 장비를 구분하고 장면의 패턴을 비교해 이상 징후를 찾아낸다. 이때 많이 쓰이는 기술이 ‘객체 인식’이다.
쉽게 말해 화면 속 사람을 사람, 헬멧을 헬멧으로 알아보는 눈 같은 기능이다. 요즘 업계에서는 ‘YOLO’라는 모델을 많이 쓰는데 빠르고 정확해 산업현장에서 선호한다. 물건 모양을 색칠하듯 구분하는 ‘세그멘테이션’ 기술도 함께 적용해 복잡한 환경에서도 정확도를 높인다.
○ YOLO(You Only Look Once)
YOLO 기술은 화면을 한 번만 훑어봐도 그 안에 있는 사람, 차량, 안전모 같은 물체를 즉시 구분해낸다. 일반적인 영상 분석 기술은 화면을 잘게 나눠 여러 번 계산해야 했지만 YOLO는 한 번의 연산으로 장면 전체를 파악한다. 이 덕분에 딜레이가 거의 없고 실시간 대응이 중요한 산업현장에서 선호된다.
작업자가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금지 구역에 차량이 진입한 장면을 즉시 감지해 경고를 띄우는 기능도 이런 속도를 기반으로 한다.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YOLO가 주력 기술로 자리 잡은 이유다.
○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
세그멘테이션은 화면 속 물체를 찾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모양 전체를 색칠하듯 분리해주는 기술이다. 사람, 기계, 차량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장면에서도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부터 장비인지 정확히 구분해준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기계 뒤에 반쯤 가려져 있어도 세그멘테이션은 사람의 윤곽을 따라 색을 칠해 전체 영역을 추적한다. 이런 방식은 좁은 공간, 어두운 장소, 방해물이 많은 현장에서도 인식 정확도를 크게 높인다. 산업안전 AI가 위험 상황을 놓치지 않도록 돕는 숨은 핵심 기술이며, 영상 기반 안전관리 솔루션의 품질을 가르는 요소로 평가된다.
문제는 데이터다. 사람 얼굴, 몸 동작, 작업환경 같은 영상 데이터는 엄격한 개인정보 규제를 받는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산업안전용 고품질 데이터셋을 확보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은 중국 법인이나 협력사와 함께 모델을 학습하기도 한다.
중국은 산업현장 CCTV가 많고 라벨링된 데이터셋도 풍부하다. 다만 중국은 데이터 반출이 금지돼 모델만 한국으로 가져와 서비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데이터를 직접 가져오지 않고 학습된 모델만 들여오는 방식이라 법적 문제는 최소화하면서도 인식 능력은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도 사고의 절반 이상이 하청·외주 노동자에게 집중돼 있고 작은 현장은 제대로 된 관리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
현장이 바쁘면 안전모를 깜빡하는 일이 흔하고 감독관이 오면 그때야 점검표를 급히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위험을 막기 위한 진짜 관리”가 아니라 “벌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관리”가 반복돼 왔다. 이런 한계를 AI가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 것이다.
최근 출시되는 솔루션들은 기술 성숙도도 훨씬 높아졌다. 기존 CCTV에 작은 장치를 추가해 AI 기능을 얹는 방식, 클라우드로 영상을 보내 분석하는 방식, 인터넷 연결이 어려운 공장에서 쓰는 ‘엣지AI’ 방식까지 다양하다.
어떤 솔루션은 사고 전후 30초 영상과 조치 내역을 자동 보고서로 만들어주고, 어떤 솔루션은 공장 내 위험지역 지도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해준다.
국내 보안회사들도 뛰어들었다. 에스원은 안전모 인식, 방독면 착용 여부, 위험구역 무단출입, 단독작업 위험 감지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AI CCTV를 내놨고, 건설·물류·2차전지 공장에서 이미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다른 업체들은 화재 전조인 연기·열 변화까지 감지하는 모델을 개발했고 5G 기반 현장 모니터링 서비스를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감독관에게 당당히 제출할 수 있는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가 났을 때 어떤 예방조치를 했는지, 현장의 위험요인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이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보관했는지를 본다. 사람이 손으로 쓴 점검표는 신뢰도가 낮다.
반면 AI는 시간·장소·장면을 모두 자동으로 기록한다. 작업자가 안전모를 벗어놓고 일한 장면이나 관리자 부재 상황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오히려 관리자를 더 엄격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기록의 신뢰도는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산업안전 AI는 결국 시기의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법은 강화되고 사고 책임은 무거워지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장도 기술을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 반복되는 교육보다 실제 위험요인을 눈앞에서 알려주는 시스템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많다.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경영진의 법적 리스크까지 관리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빠르게 검토하는 흐름도 자연스럽다.
AI를 산업안전에 들이자는 이야기는 결국 더 정밀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추자는 얘기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감시하는 기계가 불편할 수 있지만 안전 업무는 원래 불편함과 예민함을 전제로 한다. AI는 그 불편함을 사람 대신 떠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기술이 얼마나 더 정확해질지, 현장 데이터 규제가 어떻게 풀릴지에 따라 산업안전 AI 시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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