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역설, 인터넷보다 빠른 ‘스니커넷’이 다시 등장하다

  • 김시현 기자
  • 입력 2025.12.17 13:00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데이터의 크기는 더 이상 기가바이트나 테라바이트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최신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는 이미 페타바이트를 넘어 엑사바이트 단위로 커지고 있다. 엑사바이트는 테라바이트의 백만 배에 해당하는 용량이다. 

 

이 정도 규모가 되면 데이터 전송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인터넷 기반 업로드와 다운로드 방식이 오히려 병목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시 등장한 개념이 있다. 네트워크 대신 사람이 직접 저장장치를 옮기는 방식, 이른바 ‘스니커넷(Sneakernet)’이다.


스니커넷은 저장장치에 데이터를 담아 직접 이동해 전달하는 방식이다. USB나 외장하드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수백 개의 하드디스크를 묶은 전용 장비나 아예 서버가 실린 컨테이너까지 활용된다. 

 

과거에는 인터넷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이유가 다르다. 통신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했지만 데이터의 증가 속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르다. 이로 인해 “인터넷으로 보내는 것보다 하드디스크를 비행기에 실어 나르는 게 더 빠르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속도’에 대한 개념을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초당 전송 속도가 빠르다. 문제는 터무니없이 큰 규모의 데이터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예를 들어 초당 1기가비트 속도의 전용 회선을 24시간 내내 사용해도 1페타바이트의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린다. 반면 같은 데이터를 수백 개의 하드디스크에 담아 항공편으로 옮기면 며칠이면 끝난다. 

 

순간 속도는 느려 보여도 전체 전송 시간, 즉 체감 속도에서는 물리적 이동이 압도적으로 빠른 셈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AI 학습 데이터를 옮길 때 스니커넷이 다시 선택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 학습에서는 데이터 이동 자체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대형 언어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모델을 학습하려면 방대한 원천 데이터를 데이터센터로 옮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업로드는 시간뿐 아니라 비용도 부담이 된다. 

 

대용량 트래픽에는 추가 요금이 붙고 전송 중 오류가 발생하면 다시 처음부터 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스니커넷은 한 번 복사한 데이터를 그대로 옮기기 때문에 전송 실패에 따른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안 측면에서도 스니커넷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존에는 통신 음영지역이나 패킷 손실을 우려해 사용되던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이유가 바뀌었다. 

 

AI 학습 데이터에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 담겨 있다. 고객 정보, 산업 데이터, 독점적인 학습 자료가 인터넷을 통해 이동하는 순간 공격 대상이 된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저장장치로 데이터를 이동하면 외부 침입 경로 자체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 국방·의료·금융 분야에서는 여전히 네트워크와 완전히 분리된 데이터 이동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대용량 데이터 이전 서비스다. 서버가 가득 찬 전용 장비나 컨테이너를 고객사에 보내 데이터를 직접 복사한 뒤 다시 회수하는 방식이다. 

 

외형은 최신 기술이지만 본질은 스니커넷이다. AI 학습용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이러한 서비스는 오히려 수요가 늘고 있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아무리 확장해도 데이터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우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흥미로운 점은 통신 기술이 발전할수록 스니커넷의 상대적 가치가 더 부각된다는 점이다. 5G와 위성 인터넷, 차세대 통신 기술이 등장했지만 이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접속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AI 학습 데이터처럼 특정 시점에 초대용량을 한 번에 옮겨야 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물리적 이동이 유리하다. 

 

네트워크는 공유 자원이지만 하드디스크를 실은 비행기는 오로지 그 데이터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생성형 AI 시대의 스니커넷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의 환경이 만들어낸 현실적인 해법에 가깝다. 

 

인터넷은 빠르지만 데이터는 그보다 더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 격차가 존재하는 한 데이터 전송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방식이 계속해서 선택될 수밖에 없다. 최첨단 AI 모델 뒤편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전체댓글 0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AI 시대의 역설, 인터넷보다 빠른 ‘스니커넷’이 다시 등장하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