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비서, 이미지 인식, 번역 서비스는 물론 공장 자동화와 자율주행까지 AI의 활용 범위는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AI가 고도화되고 더 깊이 연구될수록 기술적 한계도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데이터가 오가는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한다.
이 같은 문제는 AI 기술이 지금보다 더 널리 확산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최근 AI 연구자들과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는 개념이 있다. 인간의 뇌를 닮은 새로운 컴퓨팅 방식, ‘뉴로모픽 컴퓨팅(Neuromorphic Computing)’이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모방한 컴퓨팅 구조를 말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과 계산하는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다. 기억과 판단이 동시에 이뤄지고 필요할 때만 신호를 주고받는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이러한 특성을 전자 회로와 반도체 구조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기존 컴퓨터가 숫자를 빠르게 계산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면 뉴로모픽 컴퓨팅은 판단과 반응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뉴런’과 ‘시냅스’에 해당하는 구조를 반도체 안에 구현하고 신호가 발생할 때만 작동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이 때문에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실시간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기존 컴퓨터와는 무엇이 다를까. 현재 대부분의 컴퓨터는 ‘폰 노이만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계산을 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분리된 구조다.
연산을 위해서는 데이터가 메모리에서 CPU로 이동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고 전력이 소모된다. AI 연산처럼 데이터 이동이 잦은 작업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반면 뉴로모픽 컴퓨팅은 연산과 기억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이뤄진다. 마치 뇌의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듯 각 소자가 동시에 저장과 계산을 수행한다.
또 모든 회로가 항상 작동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순간에만 신호를 주고받는 ‘이벤트 기반’ 방식으로 작동한다. 전구를 항상 켜 두는 대신 사람이 들어올 때만 불이 켜지는 센서 조명과 유사한 개념이다.
지금 뉴로모픽 컴퓨팅이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AI 기술의 발전은 연산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동반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나 이미지 생성 AI는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이미 일부 국가의 연간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AI가 ‘클라우드’에서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 설비, 자율주행 차량, 로봇, 웨어러블 기기처럼 실시간 판단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중앙 서버와 통신하는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다.
지연 없이 즉각 반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전력·고속 판단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해졌고 뉴로모픽 컴퓨팅은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아직 초기 단계의 기술이지만 연구와 실험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 IBM은 ‘트루노스(TrueNorth)’라는 뉴로모픽 칩을 개발해 시각 인식과 패턴 분석 실험을 진행해 왔다. 인텔은 ‘로이히(Loihi)’라는 칩을 통해 학습 기능을 갖춘 뉴로모픽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한국 역시 국가 연구 과제를 중심으로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을 추진 중이다. 특히 로봇 제어, 국방 감시 시스템, 초저전력 센서 분야에서 실증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다만 범용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적용될 수준의 상용화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특정 목적에 맞춘 특수 칩 형태로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뉴로모픽 컴퓨팅이 AI 시대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대규모 연산과 정밀 계산에는 여전히 GPU와 CPU가 필요하지만 환경을 인식하고 즉각 판단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뉴로모픽 구조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무인 공장, 자율 시스템, 로봇과 같은 분야에서는 에너지 효율과 반응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적 선택지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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