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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날린다"더니 "협상 잘 된다"…트럼프는 도대체 왜 이러나

  • 고건 기자
  • 입력 2026.04.0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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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초,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직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 연일 전례 없는 수위의 발언을 쏟아냈다. 발전소와 수자원 시설을 모두 파괴하겠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알아서 열어라, 48시간 안에 딜하지 않으면 끝이다. 

 

그러다 다음 날이면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석기시대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한두 번 일어난 일이 아니다.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기간 동안 코스피와 나스닥은 트럼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흔들리고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출렁였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SNS 게시물을 올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충동적인 성격 탓일까, 아니면 계산된 전략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한 가지 개념부터 짚어야 한다.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 트럼프의 말 바꾸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벼랑 끝 전술이란 무엇이고, 원래 누가 쓰는 전술인가?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은 냉전 시대 미국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이론화한 외교 전략이다. "내가 먼저 죽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이 양보하게 만드는 것" 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를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 부른다. 두 차가 정면으로 달려오는 상황에서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진다. 

 

따라서 이 게임의 승리 조건에 있어서는 자신의 비합리성을 상대방이 믿게 만드는 것, 즉 "저 사람은 진짜로 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심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 전술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원래 강자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압도할 수 있는 쪽은 그냥 압도하면 된다. 벼랑 끝 전술은 손에 쥔 패가 극히 제한된 약자가 마지막으로 꺼내는 카드다. 협상 테이블에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역설적으로 "나는 잃을 것도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전술의 역사는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들의 역사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게, 가장 오랫동안 이 전술을 갈고닦아온 두 나라가 있다. 북한과 이스라엘이다.


북한과 이스라엘은 이 전술을 어떻게 써왔고, 왜 잘 먹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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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MDAA 웹사이트)

 

먼저 북한부터 보자. 1953년 정전 이후 북한은 한미동맹이라는 압도적 재래식 군사력에 포위된 상태다. 경제력도, 외교 네트워크도, 소프트파워도 없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핵과 미사일이다. 이것이 없으면 북한은 그냥 가난한 독재국가일 뿐이다. 핵은 북한에게 협상 카드인 동시에 존재 이유다.

 

북한의 목표는 세 가지다.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억지하는 것, 제재 완화와 에너지·식량 지원 같은 실물 대가를 얻는 것, 그리고 대내적으로 지도자의 강인함을 과시해 정권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수단이 벼랑 끝 전술이다.

 

실제로 잘 먹혔다.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영변 핵시설 재처리를 강행하겠다고 위협했다. 한반도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 결과는 1994년 제네바 합의였다. 북한은 핵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 2기와 연간 중유 50만 톤을 약속받았다. 위협 하나로 구체적인 물질적 대가를 뽑아낸 전형적인 성공 사례다.

 

2002년 2차 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으로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은 비밀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시인하고 다시 NPT를 탈퇴했다. 6자회담이 시작됐고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핵 폐기 원칙에 합의하는 대신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 약속을 얻어냈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핵이 아닌 재래식 도발이었지만 논리 구조는 같았다.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맞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강제로 환기시키고 한국 내 정치적 분열을 유발했다. 직접적인 물질 대가는 없었지만 대화 재개 압박이 커졌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북한 벼랑 끝 전술의 정점이었다. 6차 핵실험과 ICBM 시험 이후 트럼프와의 싱가포르·하노이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하노이 회담은 역시 결렬됐지만 세계 최강대국의 현직 대통령이 일대일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 자체가 북한 외교의 역사적 성취였다.

 

북한의 전술이 작동하는 이유는 비대칭적 위험 감수 능력 때문이다. 북한 체제는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국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재로 주민이 굶어도 정권은 유지된다. 

 

반면 미국은 전쟁 비용, 동맹국 피해, 여론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 비대칭이 북한의 위협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또한 핵과 미사일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는 살라미 전술로 협상 테이블에서의 몸값을 계속 올렸다. 1994년에는 플루토늄 재처리가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ICBM과 핵탄두 소형화다. 협상을 미룰수록 상대방의 비용이 커지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전술은 북한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북한이 위협을 공개 선언해서 협상 대가를 뽑아내는 방식이라면, 이스라엘은 핵 보유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핵 모호성 정책) 실제 행동으로 레드라인을 확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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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TVA Today 웹사이트)

 

이스라엘의 생존 환경이 이 전술을 만들었다. 건국 이래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지리적 취약성, 국토 최소 너비 15km에 불과한 종심의 부재, 두 번째 공격을 받을 기회가 없다는 실존적 공포가 이스라엘의 전략 문화 전체를 규정한다. 기다렸다가 맞으면 죽는다. 그러므로 먼저 친다.

 

이스라엘은 1960년대부터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 이 핵 모호성 자체가 이미 벼랑 끝 전술의 일환이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군사적 집결과 봉쇄에 직면해 외교적 해결을 기다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택했다. 이집트·요르단·시리아 공군을 첫날 궤멸시키고 6일 만에 시나이 반도·요르단강 서안·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우리는 선제타격을 망설이지 않는다"는 레드라인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1981년에는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단독으로 폭격했다. 당시 국제사회는 일제히 비난했다. 그러나 이 작전이 확립한 원칙, "이스라엘은 적대국의 대량살상무기 획득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Begin Doctrine은 이후 이스라엘 안보 독트린의 핵심이 됐다. 

 

2007년에는 시리아의 비밀 원자로를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행동했다. 오시라크를 폭격했고, 알키바르를 폭격했고, 이란 본토를 타격해서 위협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전례로 증명했다. 


두 나라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상대방이 "저쪽은 진짜로 할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실제 전쟁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힘이 됐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이 하나 남는다. 이 전술은 원래 약자의 무기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발전소를 다 날려버리겠다", "호르무즈는 너희가 알아서 열어라"를 외치고 있는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다. 왜 그럴까?


초강대국 미국은 왜 갑자기 이 약자의 전술을 쓰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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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마존 도서 소개)

 

답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의 직업에서 나온다.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의 협상 철학은 1987년 저서 《The Art of the Deal》에 그대로 담겨 있다. "협상 시작 전에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려라." 뉴욕 맨해튼에서 빌딩 한 채를 놓고 협상할 때 쓰던 방식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 방식을 그대로 국제무대에 이식했다. 이란에게 "발전소를 다 날린다"고 하는 것은 부동산 협상에서 "내가 이 딜을 깨고 나가면 너는 더 불리해진다"고 압박하는 것과 구조가 동일하다.

 

트럼프는 장기 지정학적 설계에 능한 전략가는 물론 10수 앞을 내다보는 체스 마스터도 아니다. 단지 지금 이 방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압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딜러일 뿐이다. 이 구분이 중요하다. 트럼프의 이란 압박을 거대한 지정학적 설계로 읽으면 과대해석이 되고 충동적 발언으로만 읽으면 과소평가가 된다. 

 

트럼프가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해 꺼낸 것이 벼랑 끝 전술이다. 최대 압박을 단기간에 가해서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만드는 것. 외교적 고립을 수년에 걸쳐 서서히 심화시키는 방식은 트럼프에게 너무 느리고 불확실하다. 오바마도, 바이든도 모두 실패했다.

 

그는 지금 당장 상대방을 방 안에 몰아넣고 협상을 끝내고 싶어한다. 그 협상 목표는 이란의 완전한 핵 포기다. 오바마의 JCPOA가 사실상 이란의 핵 능력을 허용했다는 비판과 함께 "47년간 아무도 못 한 것을 해냈다"는 역사적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동맹국까지 열받게 만드는 것도 이 전술의 일부다. "호르무즈가 막혀도 우리는 괜찮다. 피해는 너희 유럽과 중국이 본다"는 메시지는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에너지를 중동에 의존하는 모든 나라를 압박 구도 안으로 끌어들여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밀어내는 간접 압력으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은 북한·이스라엘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이름의 전술이지만 작동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 가지 차원에서 갈린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북한이 핵 위협을 선언할 때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는 제재로 굶어죽어도 핵을 쏠 수 있다." 이스라엘이 선제타격을 감행할 때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는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도 생존을 선택한다." 둘 다 자기 손실을 먼저 감수하겠다는 신호다. 절박함의 신뢰성이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상대를 압박한다.

 

트럼프의 신호는 이와 매우 다르다. "이란 발전소를 다 날려버려도 미국은 손해가 없다. 우리는 에너지 독립국이다. 호르무즈가 막혀도 우리는 괜찮다. 피해는 너희와 유럽과 중국이 본다." 이것은 비대칭적 무관심의 과시다. 내가 더 안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관심의 신뢰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초강대국만이 쓸 수 있다. 실제로 손해가 비대칭적으로 적기 때문에 신뢰성이 생긴다.


이스라엘이 오시라크를 폭격하고 알키바르를 공습한 것은 "핵을 개발하면 이렇게 된다"는 레드라인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북한의 핵 실험도 마찬가지다. "이 선을 넘으면 핵전쟁"이라는 경계를 그어놓는다. 상대방은 그 선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그 선 앞에서 멈춘다.

 

트럼프는 반대로 한다. 48시간 최후통첩을 내걸었다가 연장하고, 또 연장한다. "발전소를 다 날려버리겠다"고 했다가 "딜이 잘 되고 있다"고 바꾼다. "이란 정부를 멸망시키겠다"고 했다가 "이란에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선언한다. 레드라인이 어디 있는지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유지한다. 

 

상대방이 저게 진짜 레드라인인지 아닌지를 계산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이것을 닉슨은 매드맨 씨어리(Madman Theory)라고 불렀다. 적이 "저 사람이 진짜로 미친 짓을 할 수도 있다"고 믿게 만들면 이성적으로 계산하는 상대방은 먼저 양보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본능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구사한다. 멍청해 보이는 선택일수록 오히려 가장 계산된 선택일 수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 나온다.


결국 북한과 이란, 미국의 세 벼랑 끝 전술 모델을 한 줄씩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은 "나는 죽어도 된다"고 위협한다. 이스라엘은 "나는 이미 행동했다"고 증명한다. 트럼프는 "나는 아프지 않다, 아픈 건 너다"라고 선언한다. 

 

전자 둘은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쓰는 전술이고 후자는 강자가 협상 테이블에서 약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같은 이름 아래 완전히 다른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 바꾸기는 실수인가 전술인가? 그리고 이란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트럼프에 대한 비난의 상당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그의 발언 때문이다. 직관적으로는 일관성이 신뢰성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협상에서 강하게 압박하려면 메시지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그러나 트럼프의 논리는 정반대다.


협상에서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하는 순간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 상대방이 예측 가능성을 얻는다. "저쪽은 여기까지만 한다"는 한계가 보이는 순간 상대방은 그 직전까지만 양보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동시에 나의 레드라인이 노출된다. "발전소는 안 친다"고 일관되게 말하는 순간 이란은 발전소 걱정을 안 해도 된다. 협박 카드가 사라진다.

 

트럼프의 말 바꾸기는 이 두 가지를 의도적으로 차단한다. 상대방이 내 한계를 계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48시간 최후통첩을 10일로 연장하고, 발전소를 친다고 했다가 5일 유예를 선언하고 "딜이 잘 되고 있다"고 했다가 "석기시대로 돌려보내겠다"고 한다. 무능해 보이지만 딜러의 관점에서는 의도된 설계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트럼프가 바꾸는 것과 바꾸지 않는 것이 있다. 바꾸는 것은 타이밍, 수위, 구체적 위협의 대상이다. 바꾸지 않는 것은 최종 목표다. "이란은 핵을 가질 수 없다"는 메시지는 트럼프 1기와 2기 내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목표는 철벽같이 고정하고 경로는 극도로 유동적으로 유지한다. 상대방은 목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다음에 어떤 행동이 나올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말 바꾸기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교착 상태에서 후퇴해도 패배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던 쪽이 그 입장에서 물러서면 그것은 명백한 패배다. 그러나 트럼프는 입장을 워낙 자주 바꾸기 때문에 후퇴해도 후퇴처럼 보이지 않는다. 

 

호르무즈 48시간 최후통첩을 철회했을 때 이란 국영매체는 "트럼프가 굴복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딜이 잘 되고 있어서 연장한 것"이라고 프레이밍을 바꿔버렸다. 누가 이겼는지가 불분명해진다. 불분명함 자체가 트럼프에게는 이득이다.


문제는 이란도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란은 이 구도를 나름대로 독해하고 있다. 이란이 가장 먼저 읽는 신호는 미국도 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최후통첩을 반복적으로 연장하는 것은 협상 공간을 살려두고 싶다는 뜻이다. 진짜로 발전소를 날릴 생각이었다면 48시간 뒤에 날렸을 것이다. 연장했다는 것은 딜을 원한다는 신호다.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에 직면한 이란은 무한정 버틸 수 있을까?

 

원래 벼랑 끝 전술은 신정국가·독재국가가 민주국가를 상대로 쓸 때 유리하다. 선거도 없고, 여론도 없고, 주민의 고통에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란이 써야 할 "배째라식" 버티기를 지금 미국이 대신 쓰고 있는 것이다. 역할이 뒤집혔다.

 

이란이 완전히 버티기로 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최후통첩을 한 번 넘겼더니 연장됐다. 이란 입장에서 이것은 버티기의 효과가 실증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 시작부터 이란 최고지도자를 공습해서 암살해버린 것은 이란이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행동이었다. 해군이 궤멸됐고, 미사일 공장이 잿더미가 됐다. 매번 허풍이라고 버텼는데 어느 순간 진짜가 나왔다.

 

결국 이란은 트럼프의 위협을 100% 허풍으로 볼 수도 없고 100% 진짜로 볼 수도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 불확실성이 이란을 협상 쪽으로 미는 압력이 된다. 체제 생존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이 버티기가 아니라 협상이 되는 것이다. 이란이 결국 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버티기의 비용이 협상의 비용을 이미 초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 최후통첩이 허풍인지 진짜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말을 바꿀수록 이란은 다음 말을 더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상대는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이 트럼프식 말 바꾸기의 최종 기능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이것은 딜러의 협상 철학이 국제무대에 이식된 것이다. 목표는 고정하고 경로는 유동적으로 유지하는 것, 상대방이 내 한계를 계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후퇴해도 패배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이 설계된 전술의 일부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한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트럼프는 체스 마스터가 아니라 딜러라고 했다. 딜러는 지금 이 방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 압박이 만들어내는 부수적 파장을 통제하는 데는 관심이 없거나 능숙하지 않다. 

 

그리고 이 전술이 이란만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코스피와 나스닥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미국 내 협상팀조차 대통령의 다음 SNS 게시물을 예측하지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불확실성이 매일 SNS에서 생산되고 있다.

 

벼랑 끝 전술은 원래 약자의 무기라고 했다. 북한은 잃을 것이 없어서 쓰고,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쓴다. 트럼프는 협상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쓴다. 동기가 다르고, 구조가 다르고, 감수하는 비용이 다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북한과 이스라엘은 이 전술 외에 선택지가 없지만 미국은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말 바꾸기가 전술로 작동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상대방, 즉 이란과 나머지 세계 모두가 "그래도 미국은 결국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예측 불가능성은 압박이 아니라 혼돈이 된다.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도생하는 세계로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트럼프는 SNS에 글을 올리고 있다. 다음 포스팅이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전술의 증거이기도 하고 위험의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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