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헤지펀드 스카이브리지 캐피털 창업자이자 트럼프 1기 백악관 공보국장을 11일 만에 물러난 앤서니 스카라무치가 트럼프 2기 경제팀의 두 실세를 겨냥했다.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와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이 "포토맥 열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가 9월 2일 공개된 CNBC 인터뷰에서 꺼낸 이 말은 월가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자기 실력을 믿고 워싱턴을 뜯어고치겠다며 들어왔다가 오히려 워싱턴에 물들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가장 고약한 대목은 정작 본인은 자기가 그 병에 걸린 줄 모른다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베선트와 러트닉은 현재 미국 경제정책의 핵심을 담당하는 두 축이다. 베선트는 국가의 돈줄과 국채 시장을 장악하는 책임자이며 러트닉은 관세와 무역을 지휘한다. 이들의 판단은 미국 안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제조업과 세계 금리까지 흔든다.
스카라무치의 말이 맞다면 이 판단들이 냉정한 계산이 아니라 권력에 취한 상태에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가 짚은 것이 실제 정책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다섯 가지 질문으로 짚어본다.
포토맥 열병이 대체 무슨 뜻인가.
포토맥강은 워싱턴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스카라무치는 이 강을 건너 수도로 입성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착각을 이 말로 불렀다.
당신은 똑똑하고 월가 출신이니 워싱턴에 내려가 그곳을 고쳐놓겠다고 마음먹는다. 자기가 워싱턴 사람들보다 한 수 위라고 여긴다. 그런데 정작 바뀌는 쪽은 워싱턴이 아니라 당신이다.
시크릿서비스의 경호를 받으며 대통령 차량 행렬에 올라 있다는 감각, 내가 이제 안쪽 사람이 됐다는 그 느낌이 사람을 도취시킨다고 그는 설명했다. 조심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유혹이라는 것이다.
이 진단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 것은 스카라무치 자신이 그 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를 거쳐 헤지펀드 스카이브리지 캐피털을 세운 그는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공보국장에 올랐다. 그러나 자리를 지킨 건 11일에 불과했다.
잡지 뉴요커 기자와 나눈 욕설 섞인 통화가 그대로 실리면서 해고되었고 그 짧은 임기는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그는 당시 자아를 다스리지 못했고 어수룩한 상태로 워싱턴에 들어갔다고 돌아본다. 자기가 앓아본 병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그 증상을 알아본다는 얘기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젊은 시절 실패담도 털어놓았다. 하버드를 갓 나온 그는 불안한 마음에 가장 멋있고 돈 잘 버는 자리를 좇았다. 1989년 당시 잘나가던 부동산 투자은행 부서에 들어갔지만 일이 맞지 않아 무능하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뒤늦게 자기가 잘하는 일이 따로 있다는 걸 깨닫고 골드만의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 판매와 마케팅, 리서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겉멋에 휘둘려 엉뚱한 자리를 탐하다 넘어졌던 경험이 권력의 겉멋에 빠지는 포토맥 열병을 남보다 먼저 알아보게 만든 셈이다.
그는 왜 하필 베선트와 러트닉을 저격했나.
두 사람의 출신이 스카라무치와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베선트는 진보 성향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펀드에서 최고투자책임자를 지낸 뒤 자기 투자회사 키 스퀘어 그룹을 차렸다. 40년 동안 투자업계에 몸담으며 60개국을 돌았고 각국 정상과 중앙은행 총재들을 상대해온 통화·채권통이다.
러트닉은 금융회사 캔터 피츠제럴드를 이끈 회장이었다.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이 회사는 직원 960명 가운데 658명을 잃었고 러트닉의 동생도 그때 숨졌다. 그는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둘 다 월가에서 정상을 찍고 나서 워싱턴에 들어온 아웃사이더다.
트럼프 2기 경제팀은 이런 사람들로 채워졌다. 월가에서 성공한 이들이 굼뜬 관료 사회를 뜯어고치러 왔다는 이야기가 이 팀의 간판이다. 스카라무치의 발언은 그 간판을 안에서 뒤집는다. 우리가 워싱턴을 바꾼 게 아니라 워싱턴이 우리를 바꿨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나란히 있었다. 트럼프가 재무장관을 고를 때 둘은 경쟁자였다. 일론 머스크는 러트닉을 밀었지만 재무장관은 베선트가 차지했고 러트닉은 상무장관으로 갔다. 그리고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스카라무치가 말한 증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보이고 있다.
베선트의 증상은 어디서 나타나나.
베선트가 이 병의 사례로 꼽히는 건 재무장관 본연의 영역을 넘어 중앙은행 쪽으로 손을 뻗고 있어서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곧 연준은 대통령이나 재무부의 입김 없이 금리를 정하도록 만들어졌다. 정치가 금리에 끼어들면 시장이 통화 당국을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이 독립성은 오래 지켜온 원칙이다.
베선트도 이 원칙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연준이 제 할 일을 넘어 이런저런 영역으로 권한을 넓히다가 정작 통화정책의 독립성까지 의심받게 됐다며 금리 결정만큼은 보석함처럼 따로 잠가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그 잠금장치를 흐트러뜨리는 사람이 바로 베선트다. 그는 파월 의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을 사실상 주도했다. 지난해 9월 열한 명으로 시작한 후보군을 그가 직접 걸러 넷까지 좁혔고 그 끝에 케빈 워시가 상원에서 54대 45로 인준받아 새 의장이 됐다.
민주당에서는 존 페터먼 상원의원 한 명만 당론을 넘어 찬성했다. 문제는 워시가 베선트의 오랜 친구라는 데 있다. 베선트는 정부의 힘을 실어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려 하는데 이걸 해내려면 의장이 된 친구의 손발이 맞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채 수익률이란 정부가 돈을 빌릴 때 무는 이자로, 이 숫자가 오르면 가계 대출 이자도 기업이 돈을 조달하는 비용도 함께 오른다. 베선트는 지금의 수익률이 실제 경제 상태보다 지나치게 높다며 손을 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방향은 엇갈린다. 워시는 연준이 쌓아둔 자산을 줄이고 단기 채권 위주로 바꾸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오히려 장기 금리가 올라가 베선트가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흐를 수 있다.
여기에 리사 쿡 사건이 겹쳐 있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연준 이사 리사 쿡을 자르려 했다.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쫓아내려 한 것은 112년 연준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준 이사는 법이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만 해임할 수 있는데 트럼프는 쿡이 주택담보대출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는 이유를 댔다.
대법원은 6월 29일 5대 4로 쿡의 손을 들어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자리를 지키게 했다. 같은 날 연방거래위원회 위원 리베카 슬로터의 해임은 허용해 연준만큼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선을 그었다. 파월 전 의장은 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사직은 유지하기로 해 워시 체제와 한동안 한 지붕 아래 있게 됐다.
연준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친구를 의장에 앉히고 국채 시장에 개입하려 그와 발을 맞추는 순간 자기가 지키겠다던 벽을 스스로 허문다. 안쪽 권력의 맛에 이름을 붙이면 스카라무치가 말한 그 증상이다.
그렇다면 러트닉의 증상은 어떻게 다른가.
러트닉의 경우에는 결이 다르다. 그는 상무장관으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앞장서 밀어붙이는데 그 확신이 부쩍 부풀어 있다. 관세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에 매기는 세금이다.
러트닉은 트럼프가 반도체에 관세를 매길 채비를 하고 있다면서 대만의 큰 제조사들까지 이미 관세가 온다는 걸 다 안다고 했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관세를 깎아주는 방식이 먹히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세금을 피하려는 기업들이 결국 미국 땅에 공장을 짓게 된다는 논리다.
캐나다와의 무역협상이 깨진 것을 두고도 그는 세게 나왔다. 캐나다 관리들이 국내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일부러 협정을 깨뜨렸다면서 그들이 했다는 말을 그대로 옮겨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나라 경제에 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특정 선거를 노려 트럼프와 싸우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에는 외국 적대세력의 입김이 배어 있다고까지 말했다. 데이터센터는 인공지능을 돌리는 데 필요한 대형 전산 시설로 전기를 엄청나게 먹어 환경 논란을 낳고 있는데 러트닉은 이런 반대마저 바깥세력 탓으로 돌렸다.
관세 하나로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고 나랏빚을 줄이고 공장을 미국으로 되돌리고 상대국을 압박하는 것까지 다 된다는 화법이다. 그는 관세가 물가를 밀어올린다는 지적을 인준 청문회 때부터 헛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관세로 걷은 돈과 거기서 나올 성장이 미국의 빚을 줄이고 채권시장을 다독일 거라는 낙관도 되풀이한다. 금리가 곧 안정되고 내려갈 거라 장담하기도 했다. 아웃사이더 특유의 확신이 정책 만능주의로 번지는 모습이며 차량 행렬과 경호가 주는 안쪽 사람의 감각이 판단을 단순하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해충돌 문제도 그를 따라다닌다. 러트닉은 장관이 되면서 사업체를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그의 재산 신고서에는 800곳이 넘는 회사와 사적 조직에 걸친 지분이 담겨 있었다.
그가 지휘하는 무역·산업 정책이 가족의 사업 이해와 얽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는데 최근에는 러트닉 가문이 관여한 핵심 광물 거래를 두고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안쪽에 들어온 사람이 공적 권한과 사적 이익의 경계를 흐리는 것 역시 스카라무치가 경계한 그 도취의 한 얼굴이다.
이 포토맥 열병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두 사람이 앓는 열병의 판단 착오가 미국 국경 안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먼저 제도의 독립성이 걸려 있다. 트럼프 2기의 큰 과제 하나가 독립기관을 손아귀에 넣는 일이다.
연준을 비롯한 독립기관에서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넓히려는 흐름이 대법원까지 올라가 있고 그 한복판에 베선트가 있다. 권력에 취하기 시작하면 견제 장치가 점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로 느껴진다. 스카라무치가 자아를 대통령 차량 행렬에 묶어버린다고 했던 말이 실감나는 부분이다.
다음은 세계 채권시장의 반응이다. 베선트가 국채 수익률에 개입하려는 시도와 연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전 세계 채권시장이 지켜보고 있다. 미국 국채는 세계 금융의 기준점이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가 출렁이면 다른 나라의 돈 흐름도 따라 흔들린다.
베선트는 9월 1일 일본 재무상 가타야마 사쓰키와 일본은행 총재 우에다를 만났다. 앞서 그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엔화가 지나치게 약한 상태에 머물지 않게 하라고 재촉한 바 있다.
그의 발언 직후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곧 금리를 올릴 거라는 관측이 힘을 얻었고 엔화도 강세로 돌아섰다. 미국 재무장관의 한마디가 남의 나라 중앙은행 금리 전망까지 움직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동아시아 제조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러트닉이 예고한 반도체 관세는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정면으로 겨눈다.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관세에서 제외해 주겠다는 방침은 이들 기업에 미국 투자를 압박하는 지렛대가 된다. 두 장관의 판단이 미국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공급망과 세계 금리로 번지는 그림이 여기서 맞춰지는 것이다.
다만 이 진단을 제대로 읽으려면 스카라무치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도 봐야 한다. 한때 트럼프 진영의 사람이었던 그는 이제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로 돌아섰고 이번 발언도 그런 자리에서 나왔다.
백악관은 곧바로 받아쳤다. 스카라무치의 10일짜리 존재감은 10년 전에 이미 끝났다는 게 백악관이 CNBC에 내놓은 답이다. 그러니 이 포토맥 열병 진단은 날카로운 통찰인 동시에 특정 진영에서 나온 프레임이라는 점을 함께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
그래도 그가 짚은 현상 자체는 근거가 있다. 아웃사이더의 과한 자신감, 연준 독립성의 잠식, 관세를 만능 열쇠로 여기는 태도는 베선트와 러트닉이 실제로 보여준 행보와 맞아떨어진다. 결국 그의 진단은 하나의 물음으로 모인다.
월가가 워싱턴을 고치러 온 것인가, 아니면 워싱턴이 월가 출신들을 바꿔놓고 있는 것인가. 그 대답에 미국 경제와 세계 시장의 앞날이 함께 걸려 있다.
BEST 뉴스
-
세계 최대 산유국에서 경유값이 갤런당 6.5달러를 넘은 이유
미국의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9월 21일 갤런당 6.51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자동차협회 AAA 집계에서 6.5달러 선이 뚫린 것은 처음이다. 다음 날인 22일에는 6.52달러로 한 단계 더 올라섰다. 에너지정보청 EIA가 매주 집계하는 고속도로용 경유 가격도 같은 날 기준 6.529달러로 나왔다. 9월 7일 5.967달... -
정답 찾으려다 해킹까지…스스로 선 넘은 AI 에이전트들, 왜 그럴까?
지난 9월 24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자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놨다. 오픈AI가 만든 AI가 호주 정부의 메디케어 통계 포털을 스스로 뚫고 들어가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접근했다는 것이다. 이 공격은 AI가 혼자 판단한 공격이며 총리는 이를 AI 에이전트가 정부 네트워크를 해킹한 ... -
에이전트 AI가 앞당긴 AGI 시계…어디까지 왔고 어디서 막혔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지적 작업을 거의 모두 해내는 AI를 범용인공지능(AGI)이라고 부른다. 예측 플랫폼 메타큘러스에서 2000명 가까운 예측가가 내놓은 AGI 도래 시점 중앙값은 2020년 2070년 무렵이었다. 이 값은 2024년 2040년으로 당겨졌고 2026년 초 2033년까지 내려왔다. 돈의 흐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오...
전체댓글 0
실시간뉴스
-
세계 최대 산유국에서 경유값이 갤런당 6.5달러를 넘은 이유
-
파월 후임부터 반도체 관세까지…스카라무치가 베선트·러트닉을 저격한 이유
-
중국의 국산 DUV 도전, 반도체 장비를 둘러싼 미·중 전쟁의 현재
-
분명히 협상하고 휴전했는데...여전히 진전 없는 중동, 무엇이 문제인가?
-
미국-이란 전쟁의 마침표가 한없이 늘어지는 이유, 이스라엘과 레바논
-
15년째 합의문 못 쓰는 NPT, 이란 공습과 북한 묵인이 보여준 균열
-
60년 동맹의 끝...아랍에미리트가 마침내 OPEC을 버린 이유
-
"발전소 날린다"더니 "협상 잘 된다"…트럼프는 도대체 왜 이러나
-
중국이 서두르지 않는 이유, 베이징의 ‘기다림 전략’을 읽다
-
중국의 ‘파트너’ 전략, 유럽에게 통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