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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미 해군, 왜 자기 군함은 못 고치나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0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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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국 군함의 정비와 수리를 한국 조선소에 맡기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2025년 8월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한국을 군함 유지보수 거점으로 직접 언급했고 직후 한국 대형 조선소들이 미 해군 보급함과 보조함 정기정비 물량을 따내며 실제 계약으로 이어졌다. 

 

HD한국조선해양은 미 해군 MRO 사업 참여를 공식화했고 울산에서는 USNS 앨런 셰퍼드(Alan Shepard)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삼성중공업 역시 미 해군 보급선 오버홀 실적을 쌓으며 미 해군 정비창 네트워크에 이름을 올렸고, 한화오션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거점으로 미 해군 및 동맹국 해군 정비 수주를 노리며 동남아시아-태평양 정비 허브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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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조선 빅3가 나란히 미 해군 정비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한국이 사실상 태평양 작전권역의 핵심 정비 기지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미국이 왜 군함을 굳이 한국에서 수리하려는가. 언뜻 보면 단순하다. 어떤 기사를 보든 항상 미국 조선업이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물음표가 남는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조선 능력은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괴물에 가까웠다. 항공모함만 정규형부터 호위형까지 합쳐 100척이 넘게 쏟아져 나왔고, 전함은 8척, 순양함은 48척, 구축함은 무려 349척, 잠수함도 245척이 바다에 투입됐다. 

 

군함만이 아니다. 리버티(Liberty)선과 빅토리(Victory)선 같은 화물선은 조립식 블록 공법을 앞세워 마치 자동차 찍어내듯 하루에도 한 척씩 진수됐고, 어떤 선박은 건조 시작부터 취항까지 단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다. 


미국이 확보한 상선 전력은 1944년 말 기준으로 약 5,000만 톤 규모였다. 미국 조선소의 생산성은 1930년대 평균 대비 70배 가까이 폭증했다는 평가가 남아 있다. 한국 조선 3사가 주력으로 건조하는 초대형 유조선(VLCC)은 총톤수 기준으로 대략 16~20만 톤이다. 80년 전의 미국은 VLCC 300척을 4년 안에 뽑아냈다는 소리다.


한 마디로 미국은 세계 해전사를 통째로 갈아엎을 수준의 해상 공장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 해군이 쓰는 배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세기 내내 전 세계 바다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장면의 배경에는 바로 이 초인적인 건함 능력이 있었다.


도대체 왜 세계 최강을 자처하는 미국이,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선 강국이 불과 몇십 년 만에 후진국처럼 군함 하나 제대로 손보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는가. 모두가 이 질문에는 관심이 없다. ‘역량이 후퇴했다’는 말만 남기고 정작 어떻게 그 막강했던 산업 기반이 신기루처럼 증발했는지, 왜 미 해군이 동맹국 도크를 전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짚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기사에서 그 답을 풀어내려 한다.

 

Q1.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 조선업이 몰락한 과정은?

 

이 전례 없는 건조 열풍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부터 급격히 식어버렸다. 수요가 끊겼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이미 충분한 선박을 보유한 데다 상선 시장에서도 공급 과잉이 터져버린 것이다. 수천 척의 리버티선이 창고처럼 묶여 부두에 방치됐고 조선소 노동자 수십만 명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었다. 

 

전쟁 특수에 맞춰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산업 기반은 전시 물량 생산에 특화돼 있었을 뿐 평시의 민수 시장에서 살아남을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미국 조선업의 첫 번째 균열이 시작됐다. 게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항공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핵심 무기가 하늘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미군 고위층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장거리 핵폭격기와 제트 전투기, 이후 로켓과 우주기술까지 포함한 항공산업은 군수 발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 정부가 가장 먼저 자원을 투입하는 전략 산업이 되었다.

 

동시에 국내 시장에서는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했다. 2차대전 동안 민간 생산이 중단됐던 자동차가 다시 조립라인에 올라오자 중산층 가정마다 자동차를 한 대씩 가지는 것이 곧 생활수준을 상징하는 시대가 열렸다. 고속도로 건설 붐과 교외화,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이 맞물리면서 자동차 산업은 미국 GDP와 고용을 이끄는 성장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산업 자원이 바다에서 하늘과 도로 위로 옮겨가면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조선업은 불과 십 년 만에 변방으로 밀려났다. 전쟁 이후에도 수요가 꾸준히 유지된 것은 군함뿐이었지만 군함만으로 민간 조선소의 생존을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이 등장한다. 일본은 미군이 남기고 간 선박 설계와 기술을 흡수한 뒤 저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상선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세계 경제가 컨테이너화와 원유 대량 해상 수송 시대로 전환하면서 상선 수요가 폭발했는데, 미국은 이미 이 시장에서 발을 뺀 상태였다. 미국이 관망만 하는 사이 1970년대 들어 일본이 세계 조선시장을 사실상 장악하자 미국 조선업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1970년대 중반 ‘머천트 메린 법(Merchant Marine Act)’을 통한 보조금 지원에 나섰지만, 인건비와 원가 구조의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본은 ‘톤당 가격’에서 미국 대비 절반 수준으로 배를 건조했고, 품질 면에서도 이미 국제 해운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조선소는 상선을 거의 건조하지 않게 되었고 남은 건 군수 발주물량뿐이었다. 하지만 군수만으로는 산업 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다. 민간 발주가 사라진 조선소는 기술혁신 동력이 떨어졌고 설비 투자도 중단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상황은 더욱 명확해졌다. 한국이 일본을 추격하며 초대형 유조선과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상선을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조립식 블록 건조와 인건비 경쟁력을 앞세워 일본과 함께 세계 시장을 양분했다. 미국은 일본과 인건비, 원가 구조를 가지고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지만 일본보다 한층 더 저렴한 비용으로 승부하는 한국이 글로벌 선박 시장에 새롭게 등장하자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렸다.

 

1987년 미국이 세계 상선 건조시장에서 차지한 비중은 1%도 되지 않았다. 1940년대 후반 세계 최대 조선 강국이었던 나라가 불과 40년 만에 국제 통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전락한 것이다. 군수조차도 민간 기술 발전을 흡수하지 못하면서 생산성이 급격히 뒤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이 과감한 민·군 겸용 조선소 구조를 채택할 때 미국은 폐쇄적인 군수 발주 구조에 갇혀 점점 더 비싸고 더 느린 시스템을 유지했다.

 

Q2. 일본과 한국의 민·군 겸용 조선소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한국과 일본의 조선업은 민수와 군수를 오가며 기술과 인력을 공유하는 혼합 모델로 성장해왔다.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대표적 사례로 상선을 대량 건조하는 동시에 해군 함정까지 제작하며 방위산업체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미쓰비시중공업, IHI,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같은 민간 조선사들이 사실상 해상자위대의 군함을 건조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미쓰비시는 잠수함과 이지스 구축함, IHI는 항공엔진과 함정, JMU는 호위함을 주로 건조하면서 일본 해상자위대의 주력 전력을 책임졌다. 전후 ‘평화헌법’ 제약으로 대규모 무기 수출은 금지됐지만 강력한 해군력을 상시 유지해야 하는 해상자위대의 발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민군 겸용 구조가 유지된 것이다.


미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미군은 군함을 건조하는 방식을 전용 군수조선소 체제로 고정해버렸다. 우선 안보 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앞섰기 때문이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같은 전략 자산을 일반 상선 조선소에 맡기는 것은 곧바로 기밀 유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미 해군은 설계도와 기술이 소련 등 경쟁국에 흘러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의 보안 규제를 강화했고 인증된 특정 조선소만 군수 사업을 전담하도록 구조를 짰다. 자연스럽게 군함은 몇몇 전용 조선소의 독점 품목으로 굳어졌다.


정치와 경제 논리도 겹쳤다. 전쟁이 끝난 뒤 민수 조선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고 다수의 민간 조선소가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업체들조차 상선 수주에 집중하느라 군함 건조 같은 특수 선박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와 해군은 선택지를 좁혔다. 

 

군함 건조를 전담하는 회사에 안정적인 발주를 몰아주고 장기 계약과 보조금을 통해 이들이 숙련 인력과 설비를 유지하도록 만든 것이다. 헌팅턴 잉걸스나 일렉트릭 보트 같은 회사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 구조였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보안 우려와 민간 시장 붕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민·군 겸용 모델을 포기하고 군함 전용 체제를 택했다. 단기적으로는 기술 유출을 막고 조선소 생존을 보장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수 기술과의 교류가 끊기면서 시장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효율 혁신이 사라졌고 산업 전체가 폐쇄적인 고비용 체질에 갇혔다.


비용 구조도 치명적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민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블록 건조, 자동화, 저비용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과 달리 미국은 강력한 노동조합, 까다로운 환경 규제, 높은 인건비로 인해 상선 건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민군 겸용 모델은 민수 발주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군수 기술을 보완하는 선순환이 핵심인데 미국은 이 고리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미국은 군함만 짓는 고비용 전용 조선소에 산업을 가둔 반면 한국과 일본은 민수와 군수를 넘나드는 조선사 구조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군함 정비조차 해외 동맹국에 의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바로 이런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 뉴스가 굳이 건드리지 않는 지하를 파고듭니다. 다른 기사를 읽고 "근데 그건 왜 그런 거야?" 하고 궁금했는데 정작 아무도 알려주지는 않았던 배경을 설명합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은 정보부터 오래 써먹을 수 있는 지식까지, 알짜만 모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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