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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 금에게서 빼앗은 왕좌의 유통기한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01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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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시세가 9월 30일 기준 무섭게 치솟고 있다. 국제 은 가격은 한때 온스당 47달러 선을 돌파하며 2011년 고점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이다. 연초 대비 상승률은 45% 이상으로 올해 들어 가장 가파른 랠리를 기록했다. 시장 전반에 확연히 '은 광풍'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은 값이 뛰는 배경에는 몇 가지 뚜렷한 요인이 있다. 먼저 미국 셧다운 우려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겹치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졌다. 여기에 태양광 패널과 전자 부품에서의 산업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공급 부족이 심화됐다. ETF 자금 유입과 인도 등 신흥국의 실물 매수세도 가격을 밀어올리는 힘으로 작용했다.

 

올해 여름부터 시작된 은의 상승세는 동 기간의 금을 추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연초부터 시장의 모든 관심이 금 상승에 쏠렸지만 은은 오히려 그런 금의 상승을 가볍게 추월한 것이다. 

 

이 때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금/은 비율(Gold/Silver Ratio)이다. 금/은 비율이란 금 1온스를 사기 위해 필요한 은의 양을 의미한다. 더 간단히 말하면 금 가격을 은 가격으로 나눈 값이다. 이 지표는 두 귀금속의 상대적 가치를 보여주는데, 비율이 높게 형성되면 금이 은보다 비싸게 거래된다는 뜻이고 반대로 낮으면 은이 더 비싸게 평가된다는 의미다. 

 

역사적으로는 고정 비율이 적용된 시기도 있었으나 현대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출렁인다. 2011년 은 가격 급등기에는 금/은 비율이 30 수준까지 내려갔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반에는 100을 넘어서며 금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금/은 비율은 100을 웃돌았다가 최근 은의 반등으로 90대 중반까지 낮아진 상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금/은 비율은 글로벌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금/은 비율이 높을 때는 대체로 세계 경제가 불안정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금융위기나 전쟁,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때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을 찾는다. 반대로 은은 태양광, 전자부품, 배터리 등 산업 수요가 훨씬 더 강하게 뒷받침되는 금속으로 경기 상황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따라서 경기가 둔화될 때는 은이 외면받으며 금/은 비율이 가파르게 상승한다.


반대로 비율이 낮을 때는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다. 제조업과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산업활동이 활발해지면 은 가격이 탄력을 받는다. 안전자산으로서의 금보다 산업재 성격의 은이 더 주목을 받으면서 금/은 비율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는 곧 시장이 “경기가 좋고 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은 비율은 같은 귀금속이면서도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두 자산이 만들어내는 교차 신호라고 볼 수 있다. 2025년 여름부터 시작된 금과 은의 동반 폭등 상황에서 금/은 비율에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금이 보여주는 안전자산의 의미와 은이 보여주는 경기 민감성을 함께 읽어내면 글로벌 거시경제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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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의 금/은 비율은 위 차트와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금/은 비율은 오를 때는 천천히 우상향하며 올랐다가 특정 시점에 짧으면 1년, 길면 2~3년의 기간을 두고 폭락한다. 예를 들어 위 차트의 구간 ①에서는 금/은 비율이 80에서 40 초반대로 폭락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금에 비해 은의 상대적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는 뜻이다.

 

이 기사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지금이 지난 30년을 통틀어 다섯 번 정도밖에 보이지 않고 있는 금/은 비율 폭락이 진행되고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과거 네 번의 폭락 시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으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한다면 귀금속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질 것이다.

 

① 1996년 11월~1998년 3월

 

이 시기, 불과 1년 반 사이에 비율은 80선에서 40대 초반까지 급락했는데 이는 '워런 버핏 효과’ 때문이었다.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1997년 여름부터 1998년 초까지 약 1억 3,000만 온스에 달하는 은을 매입하면서 시장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당시 글로벌 은 시장의 연간 생산량이 5억 온스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체 공급의 4분의 1 가까이를 단일 투자자가 흡수한 셈이다. 이로 인해 숏 포지션에 몰려 있던 투자자들이 일제히 손절에 나섰고 은 가격은 폭등세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시기 금은 아시아 외환위기로 신흥국들이 보유 금을 매각하는 상황이 겹치며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IMF 외환위기 국면에서 ‘금 모으기 운동’이 전개되며 민간 보유 금이 쏟아져 나온 것도 가격 압박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금은 상대적 약세를 면치 못했고 은은 초대형 매수세와 산업 수요에 힘입어 폭등하면서 두 자산 간의 격차가 극적으로 좁혀졌다. 

 

② 2003년 4월~2006년 4월 

 

2003년 봄부터 2006년 봄까지 약 3년에 걸친 금/은 비율 하락은 ‘슈퍼사이클’의 서막을 알린 사건으로 기록된다. 당시 국제 원자재 시장은 중국발 수요 폭증과 미국 달러 약세가 맞물리며 전례 없는 랠리를 구가했다. 금 역시 달러 가치 하락과 중동발 지정학적 불안으로 꾸준히 올랐지만 은의 상승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산업재 성격이 강한 은은 전자부품, 화학, 합금 수요 증가에 힘입어 폭발적인 수요 확대를 맞이했고 공급 측에서는 광산 개발이 아직 뒤따르지 못해 가격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시기 달러화는 2002년부터 2004년 사이에 15% 넘게 약세를 보였고 글로벌 유동성은 신흥국과 원자재로 몰려들었다. 

 

2006년 4월에는 은 ETF인 SLV가 뉴욕 증시에 상장되면서 개인과 기관 모두가 쉽게 은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상장은 유입 자금을 폭발적으로 늘리며 은 가격을 한층 끌어올린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금/은 비율은 7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으로 빠르게 낮아졌고 은이 귀금속군 내에서 ‘고베타 자산(변동성이 화려한 자산)’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무대가 됐다. 금이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는 동안 은은 산업 수요와 유동성이라는 이중의 바람을 타고 금을 가볍게 추월하며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③ 2008년 12월~2011년 4월

 

미국의 부동산 대출 부실로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를 휩쓸던 2008년,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사상 초유의 경기침체를 맞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양적완화(QE)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달러 약세와 실질금리 하락, 안전자산 선호가 귀금속 전반을 끌어올렸다.

 

그 중에서도 은이 보여준 탄력은 압도적이었다. 금융위기 직후 80을 넘던 금/은 비율은 2011년 4월 30선까지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금이 안전자산으로서 꾸준히 상승했지만 은은 2009년부터 경기침체로부터 급격히 회복되는 산업재 수요 회복과 투자 자금 유입이 겹치며 금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특히 부동산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주식 및 은 ETF를 포함한 새로운 영역으로 대거 흘러든 것이 결정타였다. 게다가 2010년 이후 전자·화학·태양광 산업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은의 실수요가 크게 늘었고 동시에 ETF와 실물 매수세가 유례없이 집중됐다. 

 

이른바 ‘은 광풍’이라 불린 2011년 초반 랠리에서 은 가격은 온스당 50달러에 근접하며 30년 만의 고점을 재현했다. 반면 금은 안정적인 상승에 그쳤고 결과적으로 두 자산 간 격차는 극적으로 좁혀졌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두고 “돈이 풀리고 실물이 살아날 때 은은 귀금속이 아니라 경기민감 자산처럼 반응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 교과서적 사례로 평가한다. 고베타 자산으로서의 은의 포지션이 다시 한 번 확고해진 셈이다.


④ 2020년 4월~2021년 2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공포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금을 막을 수 있는 자산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금/은 비율은 사상 최고치인 120을 넘어섰다. 시장은 은을 철저히 외면했고 금만이 절대적인 매수세를 받아내며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러나 봉쇄 해제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시작된 4월부터 상황은 반전됐다. 전 세계 제조업에 엄청난 국가 보조금과 양적 완화가 흘러들면서 가동률이 회복되자 역시 산업재 성격이 강한 은이 폭발적인 반등을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금/은 비율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60선까지 직행했다. 

 

이와 더불어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태양광, 전기차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은의 특징은 이 세 가지 산업군 모두에서 비중이 높은 원자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자부품, 배터리 등에 투입되는 은의 실수요가 빠르게 살아났다. 여기에 뒤늦게 태양광을 도입하는 유럽의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은 가격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ETF를 통한 자금 유입이 가속화되며 투자 수요까지 겹쳤다. 2021년 2월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액 투자자들 사이에서 ‘실버 스퀴즈(Silver Squeeze)’ 열풍이 불며 은 ETF에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가 유입되기도 했다. 

 

은 가격은 연초 대비 두 배 가까이 치솟으며 금보다 훨씬 가파른 랠리를 연출했고 금/은 비율은 지난 30년 사이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폭락을 기록했다. 

 

앞선 네 번의 금/은 비율 폭락을 살펴보면 워런 버핏의 매수라는 개별적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세 번의 폭락에는 공통점이 있다. 항상 글로벌 시장 전반에 어떤 중대한 불안 요소가 있었고, 이것이 해소되며 글로벌 산업이 다시 회복되는 시점에 은이 귀금속군 안에서 경기 회복에 따른 상승 동력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⑤ 그리고 지금

 

2025년 들어 금/은 비율이 급격히 하락하는 모습은 과거와 똑같이 설명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 중대한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 그리고 산업 수요가 은 가격을 강하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네 번의 폭락과 구조가 동일하다. 

 

미국 셧다운 우려,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중동과 러시아 등 지정학적 불안이 겹치며 금의 상승세를 이끈 것과 동시에 산업 수요의 폭발적 증가가 은의 상승세를 견인했다. 현재 은 시장의 핵심 변수는 AI라는 메가트렌드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를 학습시키고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AI 데이터센터 확장은 전력 소비 급증을 불러왔고 이는 태양광과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를 견인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은이 대량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AI 붐이 간접적으로 은 수요를 밀어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태양광·전기차가 금/은 비율 폭락을 불러왔다면 지금은 AI 인프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AI 성장 서사가 에너지 전환과 맞물리며 은의 산업적 위치를 강화시킨 셈이다. 여기에 더욱 활성화된 귀금속 ETF 자금 유입과 인도 등 신흥국의 실물 매수세까지 더해지며 은 가격은 금을 압도하는 랠리를 이어갔다. 그 결과 금/은 비율은 다시 한 번 역사적 폭락 패턴을 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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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비율의 장기 흐름을 보면 간간이 폭락이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동평균선 자체는 꾸준히 높아져 왔다. 이는 단기적으로 은이 금을 압도하는 구간이 나타나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금의 우위가 더 강하게 유지된다는 의미다. 

 

금은 순수한 안전자산으로서 위기 때마다 꾸준히 수요가 확인되고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흐름 속 세계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하는 외환 준비자산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있다. 반면 은은 산업재 성격이 강해 경기 사이클에 따라 들쭉날쭉한 수요 구조를 보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안정성이 떨어진다. 

 

공급 측면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은은 구리와 아연, 납 광산의 부산물로 생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요가 늘면 공급도 상대적으로 빨리 늘어나 가격 상승세가 제한되는 구조다. 반대로 금은 채굴이 극히 어렵고 공급이 경직적이어서 수요가 몰릴 때마다 가격 지지력이 더 단단하다. 

 

여기에 투자자 저변의 차이도 영향을 준다. 금은 ETF와 선물 시장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완전히 뿌리내렸지만 은은 여전히 투기적 성격이 강하고 투자 수요의 변동성이 크다는 인식이 있다. 그 결과 은은 랠리 때는 강렬하게 튀어오르지만 지속성이 짧고 금은 느리더라도 꾸준히 가격을 지켜내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런 요인들이 겹치면서 장기적으로 금/은 비율은 상승하는 추세선을 그려왔고 이는 결국 귀금속 시장에서 금이 체급 차이로 은을 앞서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금/은 비율이 하락을 멈추고 다시 상승할지, 앞으로의 동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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