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AI 데이터센터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있다. 구글은 안드라프라데시 주에 1GW급 데이터센터를 검토 중이고 오픈AI의 샘 올트먼도 비슷한 규모의 허브 설립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 규모는 전 세계 반도체와 IT 기업들이 총동원되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이다.
일본 NTT, 미국의 Equinix, 싱가포르 STT GDC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뿐 아니라 릴라이언스, 아다니 같은 인도 재벌까지 몰려들고 있으며 심지어 고급 주거단지를 짓던 부동산 개발사들까지 뛰어든 상황이다. 아직 1.2GW 수준인 인도의 데이터센터 용량은 향후 5년 안에 3GW를 넘어설 전망이며 인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차세대 디지털 인프라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인도가 이 자리에 도달한 산업 발전의 경로다. 한국과 일본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정형화된 코스를 따랐다. 전후 한국과 일본은 먼저 경공업을 키워 수출산업의 기반을 만들었고 이어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고도화를 진행했다.
1970~80년대에는 자동차 산업이 성장했고 1990년대 이후 첨단 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 IT와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로 확장해 오늘날의 산업 구조를 완성했다. 경공업에서 시작해 중화학, 제조업, 첨단 전자, 그 위에 IT가 얹힌 계단식 성장 모델이었다.
반면 인도는 이 사다리를 중간부터 통째로 건너뛰었다. 전통적인 제조업, 특히 중화학과 자동차, 반도체 같은 분야에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압도적인 경쟁력을 쌓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곧장 직행했다.
인도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하지도 못했고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지도 못했지만 대신 ‘세계의 오피스’로 불리며 소프트웨어 개발, IT 아웃소싱, 컨설팅과 서비스 산업을 전 세계 기업들로부터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인도의 산업 구조는 독특한 모양새가 되었다. 농업과 경공업 비중이 여전히 높은 한쪽 끝과 글로벌 수준의 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산업이 자리 잡은 다른 한쪽 끝이 공존하는 극단적인 ‘양극단 구조’다. 이 사이를 메워주는 중화학공업, 첨단 제조업의 체계적인 도약 과정이 비어 있다는 점이 한국이나 일본과 가장 큰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세계 경제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위해 IT 아웃소싱을 본격화하면서 방갈로르, 하이데라바드, 푸네 같은 도시들이 세계적인 기술 허브로 부상했다.
지금 인도 데이터센터 붐 역시 이런 산업 구조와 궤를 같이한다. 제조업 기반이 아니라 IT 수요에서 비롯된 성장 동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굳이 인도에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외국 기업들이 돈과 원자재를 싸들고 와서 알아서 지어준다고 하니 인도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다.
이제 질문은 두 가지다. 어떻게 인도는 중화학, 전자, 자동차 같은 단계를 건너뛰고도 IT라는 고지에 성공적으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데이터센터는 인도에 지어져야 할까. 이번 기사에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인도 경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인도가 제조업 단계를 건너뛰고 IT 강국으로 직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뚜렷한 요인이 있다. 우선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값싼 인력이 대규모로 공급됐다는 점이 컸다. 매년 수백만 명의 엔지니어가 쏟아져 나오는 교육 시스템은 글로벌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인력 풀을 제공했다.
마침 1990년대 세계적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IT 아웃소싱이 급증하면서 인도는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타고 오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제조업에 필요한 도로·항만·물류망 같은 인프라가 부족했던 것은 오히려 서비스업 중심 성장을 부추겼다. 하드웨어 생산은 힘들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과 유지보수는 인터넷과 통신망만 있으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IT 업계 곳곳에 퍼져 있던 인도 출신 인재들의 네트워크가 본국 산업과 글로벌 기업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결국 인도는 ‘세계의 공장’ 대신 ‘세계의 오피스’라는 자리를 차지하며 성장 경로를 바꿨다. 제조업 기반이 약해도 인적 자원과 글로벌 연결성을 무기로 삼아 IT 서비스와 소프트웨어에서 세계적 입지를 확보했고, 지금의 데이터센터 붐은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Q. 인도의 IT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은 잘 알겠지만 굳이 인도에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아시아에 데이터센터를 지어야 44억 명의 아시아 소비자들에게 1밀리초(ms)라도 빨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는 의외로(?) 느리다. 1밀리초는 인터넷 시장에서 상당히 큰 시간 단위인데, 1밀리초 동안 빛과 통신이 전달될 수 있는 거리는 300km에 불과(?)하다. 데이터를 쓰는 사람과 가까울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줄어든다.
미국이나 유럽 서버에서 아시아 이용자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면 제한된 해저 케이블을 거쳐야 하니 지연(latency)이 생기고 네트워크 비용도 훨씬 커진다. 반면 아시아 안에 대규모 허브를 두면 인근 국가 수억 명의 사용자를 빠르게 커버할 수 있다.
사진과 같이, 인도에 데이터센터를 둔다면 중동과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 아시아의 거의 대부분에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아시아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터넷 트래픽이 늘어나는 지역이다.
인도, 동남아, 중국을 포함해 전자상거래, 모바일 결제, 스트리밍, 게임 수요가 폭발하고 있어 글로벌 기업 입장에선 인프라를 현지에 깔아야만 제 때 대응이 가능하다. 게다가 규제까지 고려하면 더 확실하다. 각국 정부가 금융 데이터, 개인정보를 국경 밖으로 빼내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 결국 아시아 내에 서버를 두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고 있다.
아시아 허브는 지역 분산의 목적은 물론이고 속도·비용·수요·규제라는 네 가지 이유 때문에 글로벌 IT 기업들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거점인데, 마침 인도의 IT 인프라가 모든 면에서 그 조건에 부합하는데다가 데이터센터를 지을 부지도 남아돌기 때문에 인도가 글로벌 빅테크들의 최우선 입지로 등극한 것이다.
Q. 그러면 중국이 훨씬 낫지 않나? AI 산업의 수준과 IT 인프라가 인도보다는 좋을 텐데.
중국이 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로 기능하기 어려운 이유는 뚜렷하다. 가장 큰 건 규제다. 중국은 해외 기업이 자국 내에서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하기 어렵고 반드시 현지 기업과 합작해야 한다. 게다가 방화벽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검열이 강력해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와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 기업 입장에서 투자 매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당연히 지정학적 리스크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서방 기업들이 중국 내 데이터센터를 전략적으로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런 환경에서 핵심 인프라를 정치적 불확실성이 큰 나라에 건설하는 선택을 할 기업들은 없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에너지 공급의 불안정성이다. 중국은 여전히 석탄 의존도가 높아 지역별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고 실제로 2021년에는 대규모 전력난으로 산업 전반이 흔들린 사례가 있었다.
데이터센터처럼 24시간 안정적인 가동이 필수적인 인프라에겐 치명적인 리스크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도 지역별 격차가 커 글로벌 기업들이 요구하는 ESG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인도 역시 에너지 위기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전력 수요가 워낙 가파르게 늘다 보니 여름철 냉방 수요가 겹치면 블랙아웃 위기가 매년 반복된다. 석탄 의존도가 여전히 70% 안팎이라 공급망이 흔들리면 곧바로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2022년 봄에는 10년 만의 최악의 전력난으로 수십 개 발전소가 가동 중단 위기에 몰렸고 전국 곳곳에서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다만 차이는 방향성이다. 중국이 여전히 석탄 중심 구조에 묶여 있는 반면 인도는 태양광과 풍력 확대를 국가 전략으로 삼고 신규 발전소 투자를 대규모로 이어가고 있다. 전력난이 반복되지만 동시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어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개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또한 엄청나게 저렴한 전력 비용도 한몫 하고 있다. 유럽이나 기타 아시아 선진국의 데이터센터 허브와 비교했을 때 인도의 전력 비용은 상대적으로 낮다. 데이터센터 투자가 몰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인도가 에너지와 규제의 난제를 돌파하고 데이터센터 허브로 자리 잡는다면 이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개발도상국 발전 경로는 거의 교과서처럼 정해져 있었다.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경공업을 먼저 키우고 철강과 조선 같은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기반을 다진 뒤 자동차나 전자 같은 제조업으로 올라서야 했다.
그 위에서야 비로소 IT 서비스나 금융, 첨단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인도는 이 사다리를 통째로 건너뛰고 IT와 디지털 인프라를 중심으로 고지를 점령했다.
이 모델이 만약 유효하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다른 개도국들이 한국, 일본, 중국식의 제조업 기반 성장 경로를 더 이상 따를 이유가 없어진다. 굳이 도로와 항만, 공장을 대규모로 짓지 않고도 인적 자원과 디지털 인프라에 집중해 글로벌 경쟁에 뛰어드는 방식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길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어차피 인프라는 그 나라를 원하는 외국 투자자들이 알아서 깔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글로벌 경쟁은 제조업 강국들의 리그가 아니라 ‘인도식 모델’을 따르는 나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불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그 위치에 안주할 수는 없다. 다행히도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산업을 보유하고 있고 안정적이고 촘촘한 IT 인프라 관리 능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앞의 두 가지는 AI와 데이터센터 시대의 핵심 자산이다. 인도가 서버를 짓고 글로벌 기업이 AI 기술을 투입한다면 반도체와 네트워크, 운영 인프라를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역량은 한국이 가장 빠르게 숟가락을 얹을 수 있는 영역이다.
결국 지금이 가장 큰 기회다. 인도식 모델이 확산되면 글로벌 경쟁의 트렌드 자체가 바뀔 것이고 그 경쟁의 무대는 제조업 공장이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가진 반도체·네트워크 기술력은 바로 그 무대에서 통할 무기다. 과연 AI 시대의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이 한 발 앞서서 제 때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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