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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만들지도 못하면서 철강 관세 50%를 외쳤을까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09 0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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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미국과 유럽이 차례대로 철강 관세를 올리면서 우리나라 철강 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은 지난 6월 기존 25%였던 철강 수입 관세를 50%로 인상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제조업 우선’ 기조를 내세워 단행한 조치로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철강 수출국들이 즉각적인 피해를 입게 됐다. 해당 조치는 6월 4일부터 발효됐으며 철강과 알루미늄 전 품목에 일괄 적용된다.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규범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우선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철강 수출의 약 20%가 미국으로 향했으며 미국은 한국 철강의 단일국가 기준 최대 수출처였다.


여기에 8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까지 비슷한 규제를 예고하면서 충격이 배가됐다. EU는 최근 수입 철강 제품의 무관세 할당량을 지난해보다 47% 줄인 1,830만 톤으로 축소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표면상으로는 산업 보호가 이유지만 사실상 미국과 발을 맞춘 보호무역 강화 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방안은 오는 2026년 6월 회원국 투표를 거쳐 본격 시행될 예정이며 그 전까지 국가별 쿼터 협상이 이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한국 철강의 대(對)EU 수출 규모가 이미 미국보다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EU 철강 수출액은 약 6조3천억 원으로 전체 수출의 22%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두 시장의 관세 장벽이 동시에 높아지면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업체들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럽이 “melted & poured”, 즉 실제 제련과 주조가 이뤄진 국가를 기준으로 원산지를 판단하겠다는 조건을 붙이면서 우회 수출도 어려워졌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EU 통상당국에 한국 철강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쿼터 조정 협상을 추진 중이고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통해 피해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급강이나 특수강처럼 유럽이 자체 생산이 어려운 품목에 집중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글로벌 철강 시장이 이미 공급 과잉과 경기 둔화로 위축된 상황에서 이번 관세 인상이 산업 구조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사는 철강 산업의 가장 큰 수출처인 미국과 유럽이 차례로 봉쇄되는 현상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본 기사에서는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 독자들이 더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미국은 그렇다 치고, 갑자기 유럽은 왜 철강 관세를 들고 나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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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럽은 철강 관세를 올리려 하나

 

사실 우리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맞지만 더욱 다급한 것은 유럽이다. 유럽 입장에서 철강 관세는 ‘붕괴 직전인 산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다.


유럽 철강 산업의 첫 번째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이다. 지난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 값싼 철강을 무차별로 수출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균형이 무너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과잉생산이 유럽 산업에 구조적 피해를 주고 있다”며 철강 부문의 설비 가동률이 70%를 밑돌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업체들이 수요보다 많은 물량을 떠안으면서 공장을 돌려도 적자가 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의 제철소는 인력 감축과 감산을 반복하고 있고 일부 지역은 생산 중단까지 검토 중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산업 경쟁력 자체의 약화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높은 기술력으로 고급강과 특수강 중심의 생산 체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몇 년간 에너지 비용 폭등과 환경 규제 강화가 동시에 닥치면서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철강 생산의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고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인해 철강 생산 단가가 크게 올랐다. 탄소 배출권 거래 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유럽산 철강은 아시아산보다 평균 20~30% 비싸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의 친환경 조치가 안 좋은 타이밍에 자승자박, 자기 발등을 찍은 셈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지만 않았어도 유럽 철강업계의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인도, 터키산 저가 철강이 대량 유입되자 유럽 산업계는 붕괴 직전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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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문제는 산업 안보 문제다.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서 지난 20년 간의 군축을 중단하고 사상 전례없는 속도로 재무장을 하고 있다. 과거의 군사 강국이었던 독일, 프랑스, 영국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일제히 무기와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철강은 갑자기 유럽 국가 기간산업의 핵심 자재가 되었다. 자동차, 조선, 건설, 방위산업의 기반을 이루는 소재인 만큼 유럽연합은 이를 전략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는 이번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며 “유럽의 산업 자율성과 공급망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즉 외국산 철강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내 생산 기반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마지막 문제는 올해 6월 미국의 철강 관세 조치가 촉발한 연쇄 반응이다. 미국이 지난 6월 자국 철강 관세를 50%로 올리자 글로벌 공급 흐름이 크게 재편됐다. 미국 시장이 막히면서 물량이 유럽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졌고 유럽이 이 대체 수입 러시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셈이다. 

 

유럽철강협회(EUROFER)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결정 이후 유럽 시장이 세계 철강의 ‘쓰레기통’이 될 위험이 커졌다”며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신속한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EU 조치는 보호무역이라기보다 일이 더 늦어지기 전에 빠르게 불씨를 끄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유럽이 스스로 철강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저 먼 동방의 나라 한국에서까지 철강을 수입해와야 할 정도라면 유럽은 철강 생산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일까? 우선 가장 큰 원인은 비용과 단가 문제다. 관세 없이는 아시아산 철강과 단가 싸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외로 유럽연합(EU) 내부의 철강 생산 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등 7개국이 전체 생산의 80%를 차지하며 연간 약 1억 3천만 톤의 철강을 만들어낸다. 독일만 해도 약 3천만 톤을 생산해 유럽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이 연간 6천만 톤 정도이므로 유럽 전체는 여전히 꽤 큰 생산국이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만드느냐’다. 유럽은 오랜 세월 고로(용광로) 중심의 생산 체제를 유지해 왔지만 탄소 배출 규제와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인해 점점 전기로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고로는 석탄(코크스)을 써서 철광석을 녹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량 생산에는 유리하지만 탄소 배출량이 많다. 반면 전기로는 고철(스크랩)을 녹여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그린 철강’으로 불리지만 전력 비용이 많이 들고 균질한 품질 확보가 어렵다. 

 

유럽은 현재 전체 생산의 약 45%를 전기로로 돌리고 있으며 2030년까지 절반 이상을 이 방식으로 바꿀 계획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이 막히면서 치솟은 전기요금과 에너지 공급 불안으로 계획이 대부분 어그러져 버렸다.


또한 유럽은 원료에서부터 한계가 뚜렷하다. 철광석을 자체적으로 채굴할 수 있는 지역은 스웨덴 북부의 키루나 광산이 사실상 유일하며 이 광산이 유럽 전체 수요의 약 25% 정도만 감당할 수 있다.

 

나머지 75%는 브라질,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지에서 전량 수입해야 한다. 석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일본·중국 또한 똑같은 곳에서 철광석을 수입해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항만 인프라를 기반으로 원료를 대규모로 들여와 공장 단지 단위로 효율을 극대화해 단가를 낮췄다.

 

따라서 이 철광석을 수입해서 철강으로 가공하는 데 드는 부대 비용 측면에서는 유럽이 한국이나 중국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유럽은 철강을 만드는 기술은 있지만 싸게 대량으로 만드는 구조에서는 근본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유럽은 필요한 철강의 일부를 외부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산 철강은 유럽 산업의 핵심 영역인 자동차, 조선, 기계, 에너지 설비 분야에서 대체가 어렵다. 

 

대표적인 품목이 자동차용 초고장력강(AHSS)과 전기차 모터코어용 무방향성 전기강판(NGO), 조선·플랜트용 극후판, 그리고 LNG 운반선용 극저온강이다. 이런 제품들은 기술 장벽이 높고 생산 효율이 낮아 유럽 내에서도 만들 수는 있어도 단가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의 완성차 기업들은 한국산 고급 강재 의존도가 높다. 품질이 균질하고 납기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똑같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 품질에 그 가격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이유는 위험 분산이다. 유럽의 산업계는 자국 철강에만 의존할 경우 언제든 공급 병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고로 점검, 전력난, 환경 규제 강화, 노동 파업 등이 반복되면서 실제 조달 차질이 여러 번 발생했다. 

 

그래서 유럽 완성차 기업들은 한국, 일본, 인도, 터키 등지의 철강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어 리스크를 분산시킨다. 특히 한국산은 품질이 일정하고 기술 지원 대응이 빠르다는 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아시아 공급원”으로 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이 탈탄소 정책을 강화할수록 한국산 ‘친환경 철강’ 수입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이미 수소환원제철(Hydrogen DRI), 저탄소 고로 전환, 탄소배출량 모니터링 시스템 등 ESG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유럽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국에서 고탄소 철강을 만들기보다는 탄소 인증이 완료된 한국산 강재를 들여오는 편이 규제 대응에 유리하다. 유럽연합이 도입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이런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결국 유럽이 철강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경제성의 문제다. 유럽은 철강 생산 기술과 역사적 기반을 모두 갖고 있지만 에너지 비용·환경 규제·노동비용이라는 3중 부담 때문에 “모든 종류의 철을 싸게 만들 수는 없는” 구조에 갇혀 있다. 

 

한국산 철강은 고부가가치 강재, 가격 경쟁력, 공급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공급원으로서 유럽 시장에서 완전한 대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유럽의 50% 관세 인상 조치도 모든 수입을 막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실상 중국산 저가 철강의 덤핑은 차단하고 고급강은 협상을 통해서 손해보지 않는 구조를 잘 만들어 들여오겠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철강업계의 전략은

 

이번 철강 관세에 대해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 철강을 소비하는 부문의 산업계가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국으로서는 협상 테이블을 다시 열 수 있는 실마리가 생겼다.


현재 유럽의 자동차, 기계, 건설업계는 철강 수입 제한이 지나치게 급격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최근 성명을 통해 “무관세 할당량 축소는 유럽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고급 강재의 상당 부분은 역내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스위스 철강수입협회와 기계산업연맹 역시 “50% 관세는 사실상 수입 차단과 같다”며 유럽집행위원회(EC)에 재검토를 공식 요청했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럽 단일시장 체제 아래 공급망이 긴밀히 연결돼 있어 이번 조치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 중 하나다.

 

이 조치로 가만히 있다 가장 강한 충격을 받은 스위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스위스 철강수입협회는 이번 조치가 자국 제조업의 원자재 비용을 급등시킬 것이라며 “EU가 전략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시장 접근권을 왜곡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정부는 스위스와 함께 공동 서한을 EU 집행위원회에 전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교 채널을 통한 ‘다자 공동 이의제기’ 형식으로 WTO 규정상 합법적인 협상 루트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기류를 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이번 주부터 EU 통상총국(DG Trade)과 실무협의를 시작해 ‘특정 품목 예외 조항’ 또는 ‘국가별 추가 쿼터 배정’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유럽 내 사용자 산업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동 대응 논리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며 “유럽 내부의 반대 여론이 커질수록 협상력은 커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철강협회와 주요 철강사들도 자체적인 로비 네트워크를 가동 중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독일 완성차 업체들과 기존 공급 계약을 기반으로 한국산 철강이 대체 불가능한 품목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준비하고 있으며 유럽 자동차부품업체 연합회(CLEPA), 기계공업협회(CECIMO) 등과 공동 의견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유럽 내부에서도 국산 철강만으로는 고급 제품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주장이 늘어나면서 한국-유럽 사용자 산업 중심의 ‘역내 반(反)관세 연합’이 형성되는 모양새다.

 

현실적으로 유럽이 한국산 철강을 전면 차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한 대비는 필요하다. 대비가 부족하다면 산업이 어떤 충격을 받게 되는지는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사태를 통해 이미 충분히 확인됐다. 

 

한국이 단독으로 유럽에 관세 인하를 요구하기보다는 유럽 내부 산업계와 손잡고 수입 제한이 결국 그들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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