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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위기의 미국,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고건 기자
  • 입력 2025.10.1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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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2024년에 개봉한 디스토피아 스릴러로 정치적 극단화로 분열된 미국이 결국 내전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속에서 언론인들은 총성이 울리는 미국을 기록하기 위해 폐허가 된 워싱턴 D.C.로 향하고 각 주는 연방정부와 맞서 싸우며 혼란에 빠진다. 그 설정은 허구였지만 지금의 미국을 보면 묘하게 현실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동원하며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과 주 정부를 압박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총격과 폭력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내전”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과장이 아닌 현실의 경계로 다가온 셈이다. 

 

민주주의의 심장이라 불리던 나라에서 총구가 시민을 향해 돌아가는 장면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0월 들어 이러한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와 본질을 살펴본다.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미국 연방정부가 최근 민주당이 장악한 주요 도시들에 주방위군을 포함한 군 병력을 투입하려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에서 약 700명의 주방위군을 투입하기 위한 신청서를 미 대법원에 제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카고 지역 연방국경·이민단속국(ICE) 시설에 대한 시위와 충돌 가능성을 이유로 들고 있는데, 연방 항소법원과 지방법원은 “반란이나 내란의 위협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해당 투입을 차단했다. 주 정부 또한 이에 대해 “미국의 연방주의 원칙과 주권이 훼손되고 있다”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는 이 문제의 법적 근거로 1807년 내란법(Insurrection Act) 운용 가능성까지 언급 중이다. 이 법은 연방정부가 주(州)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있게 하는 고전적 조항이다.

 

1807년 내란법

○ 미국 대통령이 ‘반란, 폭동, 혹은 법 질서 붕괴 상황’이라 판단하면 연방군 또는 주방위군을 국내에 투입할 수 있게 한 법

○ 원래는 남북전쟁 이전에 만들어진 오래된 법으로 주 정부가 법 집행을 거부하거나 통제 불능일 때 연방이 개입하도록 설계됨

○ 대통령이 주지사의 동의 없이도 해당 주에 군 투입을 명령할 수 있음

○ 의회의 사전 승인이 불필요하며 대통령 단독 판단으로 가능

○ 과거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대통령 등이 인종통합을 위해 사용한 적 있음. 대부분 헌법 질서 수호가 명분이었음

○ 하지만 적용 기준이 모호해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악용될 위험이 높음

 

이미 현 정부가 “미국 내의 적”이라는 언어를 쓰며 군 병력 투입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군 병력의 국내 투입이 사실상 보통의 경찰력·치안력 확대 차원을 넘어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와 병행해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오리건 포틀랜드 같은 도시들에서도 이미 연방화된 병력의 투입이 시도되었고 주 정부·지방정부와의 충돌이 잇따랐다. 지역 사법부는 “현 상황이 군 투입을 정당화할 만큼 비상 상태가 아니며 일반 치안당국이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트럼프 임기 하에서 미국 연방과 주정부 간 권력구조, 군·치안기관의 역할, 시민의 자유라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군 병력의 도시 배치가 현실화 직전에 와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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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있었던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미국 내에서 미군이 누군가에게 총부리를 돌리는 사건은 딱 한 번 있었다. 1957년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벌어진 ‘리틀록 위기(Little Rock Crisis)’는 미국 내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당시 연방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을 통해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를 위헌으로 결정한 뒤 흑인 학생 9명이 백인 학교인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에 입학하려 했다. 

 

그러나 아칸소 주지사 올버스 포버스는 주방위군을 동원해 이들의 등교를 물리적으로 막았다. 학교 정문 앞에는 무장한 주방위군이 버티고 서 있었고, 수백 명의 백인 시민이 모여 흑인 학생들을 향해 욕설과 위협을 퍼부었다. 연방정부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거부한 셈이었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주정부의 반발을 ‘헌법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연방군 투입을 명령했다. 그는 1807년 내란법(Insurrection Act)을 발동해 아칸소 주방위군을 연방 통제 아래 두고 제101공수사단 병력을 직접 리틀록에 파견했다. 

 

그 결과 연방군은 주방위군을 해산시키고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호위했다. 학생들은 총을 든 병사들의 보호 속에서 겨우 교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연방정부의 연방권력이 주권을 초월할 수 있음을 실질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시에 연방군이 시민의 일상 영역에 개입한 극히 드문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미국 사회에서는 ‘군의 국내 투입’이 민주주의 질서와 시민 자유를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1807년 내란법이다. 다만 1957년에는 연방정부가 주방위군을 제압했지만 지금은 연방정부가 오히려 주방위군을 앞세워 다른 주에 파견하여, 각 주 정부의 승인 없이 타 주의 병력이 들어오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시카고와 포틀랜드 등에서는 자국 군대가 자국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 투입되는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으며 이는 과거 연방정부가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했던 리틀록 사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맥락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트럼프 행정부가 시카고 등 일부 도시에 주방위군 투입을 시도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2025년 하반기부터 연방 이민단속국(ICE)이 주도한 강경 단속 작전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지역 사회의 반발이 격화된 데서 비롯됐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일대에서는 지난 9월 초 ‘Operation Midway Blitz’라는 이름의 대규모 이민 단속이 실시되어 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를 중심으로 체포 작전이 진행됐다. 

 

하지만 단속 과정에서 과잉 진압과 불법 체포 의혹이 제기되며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이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시카고 근교 브로드뷰(Broadview)의 ICE 시설 주변에서는 연일 시위가 이어졌고 연방 요원이 최루탄과 연막탄을 사용했다는 목격담과 함께 취재진이 접근을 제지당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요원 보호와 연방 자산 방어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병력 투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부는 주방위군을 연방화해 시카고 지역에 배치하려 했지만 일리노이주 법원과 연방 항소법원이 “폭력 사태나 반란 수준의 위협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를 막았다. 이에 백악관은 대법원에 긴급 요청을 제출하며 사태가 급격히 정치화됐다.

 

주방위군의 연방화

○ 주방위군(National Guard)은 평시엔 주지사 통제 아래 있지만 대통령 명령으로 ‘연방화(Federalization)’가 가능

○ 미국 헌법 제1조 8항과 미 연방법 10 U.S. Code §12406에는 반란, 침입, 법 질서 붕괴 시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소집하여 연방화할 수 있다는 근거가 있음

○ 대통령이 연방 법 집행에 방해물이 있다고 판단하면 국방부 명령으로 주방위군을 연방군 체계로 전환할 수 있음

○ 이때 주지사의 주방위군 통제 권한은 자동으로 정지되고 병력은 국방부 및 대통령 지휘 아래 편입됨

○ 연방화된 주방위군은 미군과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지며 다른 주나 연방 시설 보호 임무에 투입될 수 있음

○ 결국 주 정부의 동의 없이 타 주에 병력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핵심 쟁점


비슷한 움직임은 텍사스에서도 나타났다.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에서는 전국적인 반(反)정부 시위인 ‘No Kings’ 집회를 앞두고 주지사 그렉 애보트가 “범죄 연계 단체의 폭력 가능성”을 언급하며 주방위군과 주 경찰의 동원을 승인했다. 

 

반면 시위 주최 측은 평화 시위임을 강조하며 정부의 위기 조성 프레임을 비판하고 있다. 불법 이민 단속 강화, 연방 권한 확대, 연방정부 대 주 정부의 권력 충돌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연방 항소법원은 이 모든 일을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연방정부는 1807년 내란법을 내세우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법적 근거로 내세우는 이 법은 대통령이 주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그 적용 범위가 모호해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크다. 미군의 국내 치안 개입을 제한해온 포세 코미타투스 법(Posse Comitatus Act) 같은 안전장치들도 사실상 무력화되는 분위기다.

 

미국 민주당이 이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허술한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과 주 정부들은 당연히 트럼프 행정부의 주방위군 투입 시도를 막기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제도적으로 즉각적인 제동을 걸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설명한 1807년 내란법은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단독으로 발동할 수 있는 법으로 ‘반란이나 법 질서의 붕괴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라는 단서 조항 하나로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대통령의 해석 여하에 따라 연방군과 주방위군을 국내에 투입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회가 이를 중단시키려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지만 상·하원 모두 통과한 뒤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무효화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간 싸움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아무리 강하게 반대하더라도 병력 이동이 먼저 이루어진 뒤에야 정치적 대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주방위군의 성격도 문제다. 평시에는 각 주지사의 통제를 받지만 일단 ‘연방화’가 이뤄지는 순간부터 병력은 국방부와 대통령 지휘 체계 아래 편입된다. 

 

주 정부가 연방법원에 긴급 가처분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그 결정이 내려질 때쯤이면 이미 병력이 현장에 배치된 뒤일 가능성이 높다.


의회 차원의 견제 장치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군사력 남용을 제한하는 ‘전쟁권 제한법(War Powers Resolution)’이 존재하지만 내란법은 전쟁이 아닌 국내 치안 목적의 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조항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결국 남은 길은 사법부의 판단뿐이다. 실제로 일리노이주 사건에서도 연방 항소법원이 빠르게 병력 투입을 차단했으며 대법원이 이 판단을 유지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내란법 발동 시도도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이 언제 내려질지는 불투명하고 그 사이 군이 움직인다면 사후 대응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의 문제는 미국 민주주의의 허술함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모든 권한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쏠리도록 설계된 헌정 구조에 있다.

 

민주당은 여론전과 의회 압박, 그리고 법적 대응으로 트럼프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려 하고 있지만 제도상 항상 한발 늦은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실히 드러난 미국 정치 구조의 문제

 

세계적인 선진국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는 나라가 미국이지만 트럼프 2기가 시작된 이후로 트럼프의 각종 기행 때문에 의도치 않게도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의 관세 명령과 이번 주방위군 연방화 시도는 성격은 다르지만 본질은 닮아 있다. 두 조치 모두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는 ‘행정 명령형 권한’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관세는 대통령령을 통해, 주방위군 연방화는 1807년 내란법을 통해 실행할 수 있으며 둘 다 ‘국가 비상 상황’이라는 명분 아래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특징이 있다. 문제는 이런 권한이 실제 위기 대응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이 모든 것을 곧바로 발동할 수 있고, 의회는 반드시 일정한 기간을 허비한 후 사후적으로 법안이나 소송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어 제도적 견제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트럼프가 함께 보여준 이 두 사례는 미국 헌정 구조가 가진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경제든 치안이든 대통령의 판단 하나로 정책이 움직이는 구조가 위기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다른 대통령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들에게도 큰 교훈을 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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