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I 업계가 2025년 들어 가장 주목하는 이름 중 하나는 양즈린이다. 칭화대 컴퓨터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자연어처리 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 엘리트 연구자이지만 이력을 들여다보면 고등학교 시절 밴드를 만들어 드럼을 치고 직접 곡을 쓰던 이력까지 등장한다.
중국 언론에서는 “전국을 떠도는 록 음악가를 꿈꾼 소년이 중국 장문형 AI 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소개가 붙을 정도다. 양즈린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23년 베이징에 ‘문샷 AI(Moonshot AI)’를 세우면서부터다. 회사 이름은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따왔고 사무실 벽에는 앨범 재킷이 걸려 있다.
창업자가 록밴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상징처럼 내세우는 셈이다. 문샷 AI의 대표 서비스 ‘키미(Kimi)’는 중국 내 생성형 챗봇 3위권에 빠르게 자리 잡았고 무엇보다 ‘장문’에 강하다는 점이 기술적 차별점으로 알려졌다.
키미는 최대 20만 자를 한 번에 입력해도 읽고 처리할 수 있으며 이후 버전에서는 200만 자까지 가능하다는 발표도 나왔다. 일반적인 챗봇은 긴 글을 입력하면 앞부분 맥락을 잃거나 중간 내용을 잊어버리기 쉽다.
반면 키미는 논문, 계약서, 긴 보고서처럼 길고 복잡한 문서를 통째로 집어넣어도 핵심을 요약하거나 구조를 분석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자연어처리 분야에서는 이런 능력을 ‘롱 컨텍스트 처리(long context processing)’라고 부른다.
AI가 긴 글의 앞과 뒤 내용을 모두 기억하면서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 저장 구조, 모델 크기, 메모리 관리 같은 기술이 중요해진다. 양즈린은 이 기술이 향후 AI의 결정적 발전 경로라고 주장한다. 그는 “언젠가 모델이 수십억 자 길이의 문맥을 문제 없이 처리하게 되면 지금 AI가 겪는 많은 오류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문샷 AI는 사실 그의 두 번째 창업이다. 양즈린은 2016년 먼저 ‘리커런트 AI(Recurrent AI)’라는 기업용 영업 지원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장시킨 경험이 있다. 당시 고객 상담 기록을 분석해 판매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기업가치 수백억 원대까지 성장시켰다.
다만 지분 정리 과정에서 일부 초기 투자자들과 소송이 이어졌고 이 분쟁은 문샷 AI 초기까지 영향을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샷 AI는 빠르게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2024년 기준 알리바바, 텐센트, 홍산(옛 세쿼이아 차이나) 등 중국 최상위 투자사들이 연이어 참여했고 설립 1년 만에 기업가치는 약 30억 달러, 우리 돈 4조 원 규모까지 치솟았다.
이런 성장 속도는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이다. 2025년 들어 중국 언론은 양즈린을 ‘차세대 AI 호랑이’ ‘90년대생 AI 3인방의 중심축’ 등으로 소개했다. 같은 세대의 랑원펑(딥시크 창업자) 등과 함께 중국 AI 혁신을 주도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붙고 있다.
기술적 방향도 확실하다. 문샷 AI는 첫째로 ‘롱 컨텍스트’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키미는 방대한 텍스트를 한 번에 입력해도 앞뒤 맥락을 읽은 뒤 요약, 번역, 코드 수정 제안 등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논문 분석, 계약서 검토, 코드 저장소 이해 등에서 사용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둘째로는 중국 내수 시장에 확실히 자리 잡은 뒤 글로벌 확장을 노리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 영어·한국어 등 다국어 모델 실험을 시작했고 일부 모델 가중치를 공개해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와도 접점을 넓히는 중이다.
장문 처리 능력을 기반으로 ‘중국발 글로벌 챗봇’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양즈린은 지금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성장 신호를 보여주는 젊은 AI 창업자로 평가받고 있다. 록밴드 드러머로 출발해 연구자, 창업자, 유니콘 대표까지 다다른 그의 이력은 중국 AI 업계에서도 흔치 않다.
장문 특화 AI가 실제로 범용 인공지능 발전의 지름길이 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술적 잠재력과 투자 열기만 놓고 보면 양즈린의 이름은 앞으로 더 자주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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