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인공지능과 로보틱스 전략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인사를 단행했다. 테슬라에서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이끌었던 밀란 코박을 그룹 자문역으로 선임하고 동시에 보스턴다이내믹스 사외이사로 임명하기로 한 것이다.
자동차 제조사로 알려진 현대차그룹이 로봇과 AI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인사로 드러낸 셈이다.
밀란 코박은 AI와 로봇 분야에서 20년 넘게 활동해 온 엔지니어다. 2016년 테슬라에 합류해 자율주행 시스템 ‘오토파일럿’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오토파일럿 2세대 개발 책임자로 활동하며 차량용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이끌었다.
이 시기 테슬라는 자체 설계한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자동차가 수집한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빠르게 학습에 반영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쉽게 말해 차가 달리면서 얻은 경험을 곧바로 두뇌에 학습시키는 구조다.
자율주행 기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인식’이다. 차량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테슬라는 레이더나 라이다 대신 카메라 기반 인식을 핵심으로 삼았다. 사람처럼 눈으로 보고 판단하겠다는 접근이다.
코박은 이 체계 구축에 깊이 관여했다. 이후 2022년부터는 옵티머스 엔지니어링 디렉터로 자리를 옮겨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맡았다. 여기서 그가 한 일은 차량에 쓰이던 AI 학습 방식을 로봇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로봇이 카메라로 주변을 보고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이 과정에서 로봇은 미리 모든 상황을 입력받는 대신 실제 움직임과 실패를 반복하며 학습한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옵티머스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코박의 퇴사 당시 공개적으로 감사 메시지를 남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코박을 영입한 이유는 그룹이 보유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기술을 연구 수준에 머물게 두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돈을 버는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사진 출처: 보스턴 다이내믹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네 발로 이동하며 시설을 점검하는 ‘스팟’, 물류창고에서 박스를 옮기는 ‘스트레치’, 사람과 비슷한 형태로 작업을 수행하는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여러 대의 로봇을 원격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오빗’도 갖추고 있다.
로봇을 한두 대 시연하는 것과 공장이나 물류센터에 수십 대를 깔아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오빗은 로봇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작업 데이터를 기존 공장 시스템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코박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사외이사로서 이런 제품군의 중장기 상용화 전략을 점검하게 된다.
어떤 로봇을 어느 산업에 먼저 투입해야 수익이 나는지, 로봇이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어떻게 다시 학습에 활용할지, 현대차그룹의 제조 역량을 활용해 로봇 단가와 품질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핵심 과제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를 연간 수백만 대 생산하며 쌓아온 품질 관리와 공급망 운영 경험을 갖고 있다. 이는 로봇을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데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룹은 이미 로봇 양산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한 바 있다. 2028년을 전후해 연간 수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실제 공장과 물류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로봇을 사람의 일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노동력으로 쓰겠다는 의미다. 로봇이 공장에서 단순 반복 작업을 맡으면 사람은 품질 관리나 복잡한 판단이 필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물류 현장에서는 야간 작업이나 무거운 하역 작업을 대신할 수 있다.
이번 인사는 최근 현대차그룹의 인재 영입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그룹은 앞서 엔비디아와 테슬라 출신 자율주행 전문가 박민우 박사를 첨단차플랫폼 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로 영입했다.
차량 쪽에서는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로봇 쪽에서는 휴머노이드와 AI 학습을 각각 강화하는 그림이다. 두 영역의 공통점은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며 데이터를 쌓고 학습하는 ‘물리적 AI’라는 점이다.
자동차와 로봇의 모습은 다르지만 기술적 뿌리는 비슷하다. 센서로 주변을 인식하고 AI가 판단을 내리며 모터와 구동계를 통해 움직인다. 현대차그룹은 이 공통분모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으려 하고 있다. 밀란 코박의 합류는 그 전략을 실행 단계로 옮기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썸네일 사진 출처: 밀란 코박 링크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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