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의 확산과 함께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지만 새로운 칩이 실제 시장에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여전히 길다. AI 모델과 서비스는 수개월 단위로 고도화되지만 이를 뒷받침할 반도체는 수년의 개발 기간과 막대한 비용을 요구한다.
이런 불균형 속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코그니칩(Cognichip)이 AI를 활용해 반도체 개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모습을 드러냈다. 코그니칩은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해 칩 개발 속도를 크게 단축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시드 투자 유치 사실을 공개했다.
코그니칩이 내세운 핵심 개념은 ‘인공 칩 인텔리전스’로 불리는 AI 기반 설계 모델이다. 회사는 이를 물리 법칙을 이해하도록 학습된 기초 AI 모델이라고 설명한다.
반도체 설계는 회로를 그리는 수준을 넘어 전력 소모 열 발생 신호 간섭 같은 물리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코그니칩은 이런 복잡한 조건을 AI 모델에 반영해 인간 엔지니어가 하던 판단과 반복 작업을 상당 부분 대체하거나 보조하겠다는 구상이다. 목표는 칩 개발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비용도 크게 낮추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반도체 업계의 구조적 침체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파라지 알라이는 2015년 실리콘밸리 리더십 그룹 활동 당시 반도체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 투자 급감 현상을 지적했다.
2000년대 초반 연간 200건에 달하던 반도체 관련 투자 거래가 2015년에는 한두 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반도체 개발에 너무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는 구조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그는 벤처펀드 캔두 벤처스를 설립해 AI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지켜봤고 생성형 AI 기술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자 이를 반도체 설계에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2024년 코그니칩을 창업했다.
코그니칩은 창업 이후 스텔스 상태로 연구와 인력 확보에 집중해 왔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팀에는 스탠퍼드대 구글 MIT 등에서 활동한 AI 연구자들과 반도체 설계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들이 참여하고 있다.
AI 모델이 반도체 설계 전반을 이해하려면 방대한 설계 데이터와 물리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모델을 만드는 데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회사는 보고 있다.
다만 최종 단계에 도달하기 전에도 일부 기능은 반도체 기업의 개발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숙련된 설계 엔지니어처럼 판단하고 제안하는 AI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다.
투자자들의 평가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코그니칩은 스텔스 해제와 함께 총 330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라운드는 럭스 캐피탈과 메이필드가 공동으로 이끌었고 FPV 벤처스와 캔두 벤처스도 참여했다.
메이필드의 매니징 파트너 나빈 차다는 반도체 산업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핵심 작업이 인간 엔지니어의 손에 의존하고 있으며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AI가 실질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코그니칩이 제시하는 또 하나의 목표는 반도체 설계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현재 반도체 설계는 대기업이나 자본력이 충분한 팹리스 기업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돼 있다. 개발 기간이 길고 실패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회사는 AI 기반 설계 모델이 보편화되면 소규모 기업이나 특정 용도에 특화된 칩을 만들고 싶어하는 스타트업도 보다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소형 모델이나 특수 목적 AI를 위한 맞춤형 칩 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코그니칩의 계획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회사 스스로도 현재 개발 중인 모델이 완전한 형태의 인공 칩 인텔리전스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또한 반도체 산업은 신뢰성과 검증을 중시하는 특성상 새로운 설계 방식이 실제 양산 단계까지 적용되기까지 높은 문턱을 넘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AI가 소프트웨어 개발, 콘텐츠 제작, 연구 분석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생산성을 끌어올린 전례를 고려할 때 반도체 설계 역시 변화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그니칩은 자신들의 시도가 설계 자체를 이해하고 주도하는 AI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비전이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 산업은 개발 속도나 비용 구조, 인력 구성 측면에서 큰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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