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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때문에 1조달러 증발…‘SaaSpocalypse’에 갇힌 소프트웨어 공룡들

  • 고건 기자
  • 입력 2026.03.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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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코딩 에이전트가 기업의 내부 시스템을 대신 구축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산업이 정면으로 도전에 직면했다. 최근에는 한 스타트업 창업자가 최근 투자자에게 고객지원팀 전체를 AI 코딩 도구 ‘클로드 코드’로 대체하겠다고 알린 사례도 있다. 

 

AI가 코드를 직접 작성하고 배포하면서 기업이 기존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는 대신 직접 만들어 쓰는 선택지를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SaaSpocalypse’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SaaS와 아포칼립스의 합성어로 AI 확산이 기존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모델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일부 분석가는 이를 ‘FOBO 투자’라고 불렀다. 

 

뒤처질 것에 대한 공포, 즉 기술 변화 속에서 기존 기업이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는 의미다.


SaaS 기업은 그동안 사용자 수, 즉 좌석 수에 따라 요금을 받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직원이 많을수록 소프트웨어 이용 계정이 늘어나고 매출도 증가하는 구조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독 매출과 70~90%에 이르는 높은 매출총이익률 덕분에 가장 매력적인 사업 모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AI 에이전트가 사람 대신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직원 여러 명이 하던 업무를 하나의 AI가 처리할 경우 좌석 기반 요금 체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AI 발전 속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클로드 코드나 오픈AI의 코덱스 같은 도구는 자동화는 물론이고 기존 SaaS 제품의 핵심 기능을 재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SaaS 업체가 추가 수익을 위해 판매하던 부가 기능까지 구현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개발 인력을 확보한 고객은 이제 가격 협상에서 강력한 카드를 가지게 됐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선택지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말 스웨덴의 결제기업 클라르나는 세일즈포스의 대표 CRM 제품을 중단하고 자체 AI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 증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월 초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며 약 1조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후에도 추가 하락이 이어지며 세일즈포스와 워크데이 등 대표 SaaS 기업의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 

 

AI 신제품이 발표될 때마다 관련 업종 지수는 출렁였다. 앤트로픽이 보안 분야용 클로드 코드를 공개했을 때는 사이버보안 종목이 줄줄이 하락했고 법률 업무용 AI 기능을 발표하자 소프트웨어 기업을 묶은 ETF가 다시 한 번 약세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종말 가치’가 처음으로 근본적 의문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SaaS 기업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매출이 유지된다는 가정 위에 형성돼 왔다. 그러나 1년 뒤, 5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사용할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과거 저금리 환경에서 고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았던 기업들은 금리 상승과 AI 충격이 겹치며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물론 벤처투자자들 모두가 종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이번 조정을 구조적 변화와 과도한 공포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본다. AI 기능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기업 고객은 여전히 규제 준수, 감사 대응, 업무 흐름 관리 등 안정적인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AI 기업들 역시 새로운 과금 모델을 실험 중이다. 사용량 기반 요금 체계는 고객이 사용한 연산량이나 토큰 수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일부는 성과 기반 과금 모델을 도입해 AI가 실제로 달성한 결과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세일즈포스 전 최고경영자가 설립한 AI 스타트업 시에라는 고객지원 에이전트를 성과 기반으로 판매하며 설립 2년이 채 되지 않아 연간 반복매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공개시장뿐 아니라 비상장 시장도 냉각 조짐을 보인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벤처 투자 기반 SaaS 기업의 기업공개(IPO) 신청은 사실상 멈춰 있다. 이미 상장한 SaaS 기업들의 주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신규 상장은 부담이 크다는 판단이다. 

 

캔바, 리플링 등 대형 비상장 SaaS 기업도 IPO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중견 SaaS 기업 중에는 추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나온다. SaaS 기업이 누려온 예측 가능한 매출과 높은 수익성이 더 이상 자동으로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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