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용조합(크레딧유니언)들이 수십 년째 쓰던 대출 관리 소프트웨어를 AI로 교체하려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퓨즈(Fuse)는 지난 16일 시리즈A 투자 유치로 2500만 달러(약 330억 원)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투자는 풋워크(Footwork), 프라이머리 벤처 파트너스(Primary Venture Partners), 넥스트뷰 벤처스(NextView Ventures), 커머스 벤처스(Commerce Ventures)가 공동으로 이끌었다. 퓨즈의 핵심 제품은 'AI 기반 대출 심사·관리 시스템(LOS·Loan Origination System)'이다.
LOS는 대출 신청 접수부터 심사, 승인, 자금 집행까지 전 과정을 처리하는 금융기관의 핵심 업무 소프트웨어다. 은행이나 신용조합 입장에서는 기업의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나 CRM(고객관리 시스템)에 버금가는 중추 인프라로 이 시스템 없이는 사실상 대출 업무 전체가 멈춘다.
문제는 미국 신용조합 상당수가 도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구형 LOS를 여전히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시스템인 만큼 다른 소프트웨어와 연동이 어렵고 자동화 수준도 낮아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
퓨즈 공동창업자 안드레스 클라리치와 마르크 에스카파는 원래 자동차 대출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2023년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기존 LOS의 한계를 직접 겪으면서 LLM(대규모 언어 모델) 기술로 이 시장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두 창업자 모두 이민자 출신이다. 클라리치는 볼리비아, 에스카파는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퓨즈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대출 심사 자동화, 처리 건수 확대, 운영 비용 절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기존 LOS가 담당자가 서류를 하나씩 검토하고 항목을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라면 퓨즈는 AI가 신청 서류를 분석하고 심사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판단을 내리는 구조다.
처리 속도와 정확도를 높이면서 인력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기존 LOS의 또 다른 문제는 교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새 시스템을 연동하는 데만 최장 1년이 걸리고 계약 기간도 수 년 단위인 데다 비용도 높다. 더 나은 시스템이 나와도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구조다. 클라리치는 비용 문제 때문에 현재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는 신용조합이 많다고 설명했다.
퓨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00만 달러(약 66억 원) 규모의 '구제 기금(Rescue Fund)'을 조성했다. 조건을 충족하는 신용조합 50곳을 대상으로 기존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퓨즈 플랫폼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방식이다. 새 시스템 도입 비용 부담 없이 기존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클라리치는 이를 실질적인 전환 지원책으로 규정했다. 현재 퓨즈의 고객사는 이미 100곳을 넘어섰다.
퓨즈가 대체하려는 기존 LOS 업체로는 나스닥 상장사 엔사이노(nCino)와 사모펀드 소유의 메리디안링크(MeridianLink)가 있다. 두 회사 모두 미국 신용조합과 지역 은행 시장에서 오랫동안 점유율을 유지해온 레거시 강자들이다.
미국 신용조합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금융 협동조합으로, 조합원들이 공동 출자해 운영한다. 일반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고 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고객으로 한다. 전국에 4000개 이상이 운영 중이지만 규모가 작고 기술 투자 여력이 낮아 노후 인프라를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많다.
클라리치는 신용조합이 지역 밀착형 서비스와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지만 적절한 기술이 없다는 점을 시장 진입 근거로 들었다. 이번 투자를 이끈 풋워크의 공동창업자 니킬 바수 트리베디 역시 신용조합들이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상황이라며 수요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AI 기반 LOS 시장에 뛰어든 곳은 퓨즈만이 아니다. 카스카(Casca)는 지난해 8월 29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를 유치하며 같은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카스카는 올해 초 미국 금융 혁신 시상식인 'BIG 이노베이션 어워드'에서 은행·금융 서비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글라이드(Glide) 역시 지난해 5월 1500만 달러의 시리즈A를 마무리하고 전통 금융기관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퓨즈보다 앞서 투자를 받은 두 경쟁사가 이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만큼 퓨즈로서는 고객 확보 속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썸네일 사진 출처: Fuse Finance 웹사이트)
BEST 뉴스
-
글 한 줄 안 쓰는 AI, 3주 만에 기업가치 75억 달러? '의사결정 AI' 제브
문장을 만들지 않고 판단만 내리는 AI 모델 '제브(Jev)'를 내놓은 미국 스타트업 타입세이프AI가 출시 한 달도 안 돼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타입세이프AI는 9일(현지시간) 8억7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75억 달러다. 시리즈A는 초기 시드 투자 이후 사업 확... -
메타의 부활?…신제품 '뮤즈'가 깨운 CPU 수요
메타플랫폼스가 지난 8일 출시한 개인용 AI 에이전트 '뮤즈(Muse)'가 열흘 만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무료 앱 1위에 오르면서 메타 주가와 반도체주가 동반 급등했다. 뮤즈는 질문에 답만 하는 기존 챗봇과 달리 사용자를 대신해 여러 단계의 일을 직접 처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메일 달력 결제 건강 쇼핑 스... -
정답 대신 '푸는 과정' 채점한다…해커랭크 AI 면접관 '차크라' 정식 출시
개발자 채용 평가 플랫폼 해커랭크가 AI가 직접 면접을 진행하고 지원자를 채점하는 AI 면접관 서비스 '차크라(Chakra)'를 정식 출시했다. 지원자가 문제를 푸는 동안 AI가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질문을 던지고 결과물뿐 아니라 답에 이르는 사고 과정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해커랭크는 미국 현지시간 5일 약 6개월... -
AI가 경찰에 '가짜 살인 제보'… 앤트로픽, 내부 테스트 인터넷 끊었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자사 AI 모델 '클로드'가 테스트 도중 실제 웹사이트의 보안 허점을 파고들고 경찰에 허위 살인 제보까지 접수한 사실을 공개했다. 앤트로픽은 감시 체계가 이런 행동을 확실히 잡아낸다는 점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내부 평가에서 실시간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기로 했다. 앤트로픽은 9일(현... -
AI가 쏟아낸 '가짜 취약점 신고'에 구글 오픈소스 버그바운티 중단
구글이 AI로 만든 엉터리 보안 취약점 신고가 급증하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버그바운티 프로그램의 핵심 부문을 중단했다. 버그바운티는 외부 보안 연구자가 소프트웨어의 보안 허점을 찾아 알려주면 기업이 포상금을 주는 제도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취약점 보상 프로그램(OSS VRP)'의... -
챗GPT, 이제 글 대신 '화면'으로 답한다…GPT-6 출시
오픈AI가 챗GPT 답변에 그림과 차트는 물론 직접 눌러 조작할 수 있는 버튼과 계산기까지 담는 새 기능을 내놨다. 글자로만 답하던 대화형 AI가 질문에 맞춰 화면 구성을 스스로 짜는 방식으로 바뀐다. 오픈AI는 7일(현지시간) 차세대 모델 'GPT-6'를 챗GPT의 일반 대화 기능에 적용하고 '인텔리전트 UI'를 함께 공개...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사기꾼 전화 받는 ‘AI 피해자' 수천 명…속는 척하며 계좌·코인지갑 캐낸다
-
AMD 82억 달러에 월드랩스 인수…'AI 대모' 페이페이 리 최고과학자로 합류
-
AI 데이터센터에 여객기 엔진 꽂으려던 12억5000만달러 계약 무산
-
구글 딥마인드, AGI 논쟁의 장 열었다…"인간 넘어서기 전에 규칙부터"
-
오픈AI, 아이폰 인물사진 만든 엔지니어 품다… 3억달러에 카메라 스타트업 인수
-
AI CEO들 "속도 늦추자"…앤트로픽·오픈AI·머스크 이례적 한목소리
-
"1달러 넣으면 100달러 돌아온다"…젠슨 황, 엔비디아 70% 성장 자신
-
AI가 스스로 결함 고치기 시작했다…앤트로픽 "인간 연구자보다 빠르고 저렴"
-
AI 오픈모델 생태계 통째로 사들이고 있는 엔비디아, '13조원 베팅'
-
엔비디아, '오픈소스 AI 심장' 허깅페이스 129억 달러에 인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