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 원자력 발전 스타트업 퍼미(Fermi)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이틀 간격으로 연이어 사임하며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회사는 이를 '퍼미 2.0'이라는 전략적 전환으로 포장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퍼미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토비 노이게바우어(Toby Neugebauer)는 4월 17일 CEO직에서 물러났고 CFO 마일스 에버슨(Miles Everson)은 이틀 뒤인 19일 '정당한 이유 없이' 사임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공시 문서에 따르면 에버슨의 사임은 일요일에 효력이 발생했으며 현재 회사 및 자회사와 아무런 고용 관계가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이사회 이사직은 유지한다.
이사회 의장을 겸하던 노이게바우어도 의장직에서 내려왔다. 사외이사 대표 마리우스 하스(Marius Haas)가 의장직을 승계했다. 에버슨은 '멜리사 A. 노이게바우어 2020 트러스트'가 보유한 이사 지명권 행사를 통해 이사로 선임됐다.
퍼미는 2025년 초 전 미국 에너지부 장관 릭 페리(Rick Perry)와 노이게바우어가 공동 설립한 회사다. 텍사스주 아마릴로에 약 5800에이커(약 23㎢)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짓는 '프로젝트 마타도르(Project Matador)'를 핵심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캠퍼스는 천연가스 11GW, 원자력 발전 4.4GW, 태양광과 배터리 저장을 합쳐 최대 17GW의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1GW는 약 8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회사 측은 이 캠퍼스를 '도널드 J. 트럼프 첨단에너지·인공지능 캠퍼스'로 공식 명명했다. 부지 대부분은 텍사스공과대학교 시스템 소유 토지를 임차한 것이며 미국 에너지부도 공개적으로 사업을 지지하고 있다.
퍼미는 지난해 9월 IPO(기업공개)를 통해 주당 18~22달러 사이에 2500만 주를 공모하며 약 5억 5000만 달러 조달을 목표로 상장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130억 달러에 달했고 시장의 관심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상장 직후부터 주가는 꾸준히 하락했고 이번 사태 당일 기준 시가총액은 34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IPO 이후 주가 낙폭은 69%에 이른다.
추락의 배경에는 주력 고객 이탈과 신규 고객 확보 실패가 있다. 지난해 12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임차 예정 기업이 데이터센터 캠퍼스에 대한 1억 5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 의향서를 철회했다. 회사는 올해 3월까지 새로운 핵심 임차인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퍼미는 확정된 매출이 없다.
이번 CEO 사임을 둘러싼 배경에는 노이게바우어 개인을 향한 각종 잡음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 스티펠(Stifel)의 애널리스트 스티븐 젠가로(Stephen Gengaro)는 회사 측이 "최근 며칠간 고객 대화가 가속되고 있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떠난 CEO와 잠재 고객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향후 협상이 더 원활해질 수 있다"며 주가 약세에도 불구하고 이번 변화가 회사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노이게바우어는 이전에 운영하다 파산한 '반(反)진보' 성향의 대출 앱 사업과 관련해 다수의 소송에 휘말려 있다. 소송 중 하나는 그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이게바우어는 반대로 오하이오 주지사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 페이팔과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과 그의 벤처 투자사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 등 전 투자자들을 미국 조직범죄 처벌법(RICO)을 근거로 역소송한 상태다.
지난 3월에는 노이게바우어가 엔비디아 GTC 콘퍼런스에서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미국 상무장관과 공개 충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노이게바우어가 미국의 한국 무역 협상 방향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한국의 퍼미 직접 투자를 막거나 지연시키고 있다며 루트닉에게 항의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당시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공격적이지는 않았다"며 루트닉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인정했다.
퍼미는 이번 리더십 교체 후 임시 CEO 체제로 전환했다. 최고운영책임자(COO) 하코보 오르티스(Jacobo Ortiz)와 이사회 옵서버(의결권 없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외부 인사) 출신 안나 보파(Anna Bofa)가 공동으로 'CEO 직무대행실'을 구성해 경영을 맡는다.
정식 CEO는 글로벌 임원 채용 전문 기업 하이드릭앤스트러글스(Heidrick & Struggles)를 통해 공개 채용 중이다. CFO도 협상 중인 후보가 있으며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퍼미는 이번 일련의 변화를 달라스 본사 이전 계획과 묶어 '퍼미 2.0'으로 명명하고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진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원자력 발전 설비는 2032년께나 가동될 수 있다. 현재 캠퍼스는 원자력 설비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완성될 경우 지구상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된다.
(썸네일 사진 출처: Fermi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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