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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속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세계 첫 ‘스마트 인공와우’ 공개

  • 고건 기자
  • 입력 2025.11.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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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청취 능력을 회복시키는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 기술이 인공지능을 결합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글로벌 청각기기 기업 코클리어(Cochlear)가 최근 출시한 ‘뉴클리어스 넥사(Nucleus Nexa) 시스템’은 인체 내부에 삽입된 임플란트가 기계학습 알고리즘을 직접 구동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를 더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설계된 세계 최초의 AI 기반 인공와우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인체 속에 들어간 임플란트가 주변 소리를 분석해 어떤 환경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맞춰 전기 자극 패턴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췄다는 점이다. 기존 인공와우는 외부에 착용하는 소리처리기(사운드 프로세서)만 알고리즘을 사용했고 몸 속에 남는 임플란트는 기능이 고정돼 있었다. 

 

넥사 시스템은 이 구조를 바꿔 임플란트 자체를 ‘지능형 장치’로 만든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 신제품의 핵심 알고리즘은 SCAN 2라는 환경 분류 시스템이다. 이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있는 주변 소리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말소리’, ‘말소리+소음’, ‘일반 소음’, ‘조용한 환경’, ‘음악’ 등 다섯 가지 상황 중 하나로 분류한다. 

 

여기서 분류된 정보는 의사결정나무(Decision Tree)라는 기계학습 모델에 입력되고, 모델은 소리 처리 방식을 자동으로 조정해 임플란트가 인지하는 음향 신호를 바꾼다.


의사결정나무는 딥러닝처럼 복잡한 신경망 모델이 아니라 규칙 기반으로 조건을 따져가면서 결과를 내는 간결한 구조의 기계학습 모델이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계산량이 적고 작동 원리가 투명해 안전 검증이 쉽다는 이유로 선호된다. 전력 소모가 매우 적어야 하는 인공와우 특성에도 적합하다.


또 하나의 기술적 진전은 ‘다이내믹 파워 매니지먼트(Dynamic Power Management)’다. 외부 프로세서와 임플란트가 무선 신호(RF 링크)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동시에 전력 사용량까지 조절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조용한 환경에 있다면 임플란트는 전력을 덜 사용하도록 조정하고 복잡한 소음 환경에서는 즉시 처리 능력을 높여 반응한다. 인공와우는 인체 내부에서 30~40년 이상 작동해야 하므로 에너지 절약은 생존 문제에 가깝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재수술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력 관리’는 기계학습 모델만큼 중요한 기술 요소다.


넥사 시스템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공간지능 기능이다. ‘포워드포커스(ForwardFocus)’라는 알고리즘은 두 개의 마이크로 들어오는 소리를 비교해 사용자가 듣고자 하는 방향(주로 정면)의 소리를 강조하고, 옆이나 뒤에서 들어오는 잡음은 줄인다. 

 

이는 공간을 기반으로 소리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직접 기기를 조절할 필요 없이 주변 환경을 분석해 자동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식당이나 거리 같은 장소에서 듣기 어려움을 겪는 청각장애인에게는 필수적인 기능이다.


이번 신제품이 의료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이유는 “업데이트 가능한 인공와우”라는 점이다. 기존 인공와우는 수술로 넣은 임플란트의 기능이 평생 고정됐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미 몸속에 들어간 장치는 개선될 방법이 없었다. 

 

넥사 임플란트는 여기에 처음으로 펌웨어 업데이트 기능을 적용했다. 외부 프로세서를 통해 임플란트에 직접 새 알고리즘을 설치할 수 있어 향후 더 뛰어난 인공지능 모델이 개발되면 기존 환자들도 혜택을 받는다.


업데이트는 일반 블루투스처럼 멀리서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짧은 거리에서만 작동하는 제한된 RF 통신을 사용한다. 이는 보안 때문이다. 의료기기는 외부 신호에 의한 오류나 해킹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므로,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코클리어의 CTO 얀 얀센은 “사용자의 개인 청취 정보(MAP)를 임플란트 내부에 보관하기 때문에 외부 프로세서를 잃어버려도 새 기기에 자동으로 설정을 복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플란트는 최대 네 가지 개별 청취 지도를 저장할 수 있어 사용자 생활환경에 맞는 맞춤형 조정도 가능하다.


회사는 앞으로 더 발전된 AI 모델을 도입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현재는 전력 제한 때문에 결정 트리 기반 알고리즘을 사용하지만 차세대 모델에서는 잡음 속의 사람 목소리를 더 정교하게 구분하는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기반 기술을 임플란트에 적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 기술은 신호 처리뿐 아니라 원격 진료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임플란트 데이터와 연결 기술을 활용해 정기 청력 검사를 자동화하거나 사용자의 청취 상태를 지속 감시해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구상도 나오고 있다. 임플란트가 ‘소리 전달 장치’에서 ‘건강 모니터링 장치’로 확장되는 셈이다.


단, 인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AI 기기는 클라우드나 스마트폰의 AI 모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인 제약을 가진다. 전력 소모는 최소 수준이어야 하고, 소리 입력부터 자극 전달까지 지연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임플란트는 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만큼 오류가 생기면 생활의 질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장치 수명이 40년 가까이 요구되면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안정성도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


넥사 시스템은 향후 블루투스 LE 오디오와 공공장소에서 방송되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오라캐스트(Auracast)’ 기능도 업데이트로 제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항, 공연장, 학교 등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신호를 외부 기기 없이 임플란트로 바로 받아들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외부 착용 장치를 완전히 없애고 마이크·배터리·연산장치를 모두 몸속에 넣은 “완전 이식형 인공와우” 구현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 경우 인체 내부에서 AI가 스스로 환경을 분석하고 작동하는 완전 자율형 시스템이 된다.


전문가들은 넥사 시스템이 향후 AI 의료기기의 전형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해석 가능한 모델부터 시작해 전력 최적화, 장기 업그레이드 지원, 개인정보 보호 등을 모두 고려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코클리어는 이를 “더 스마트한 임플란트로 가는 첫 단계”라고 설명한다.


청각장애 인구가 매우 많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이러한 기술이 의료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AI가 의료기기 내부로 들어가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의료현장에서 인공지능의 역할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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