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산업을 둘러싼 자금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오픈AI가 100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 단계에 둔 가운데, 경쟁사 앤트로픽은 300억달러 자금 조달을 완료했다.
두 회사의 기업가치만 합쳐도 글로벌 비상장 기업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번 대규모 투자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불문율, 경쟁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
앤트로픽의 300억달러 라운드에는 최소 12곳 이상의 오픈AI 기존 투자자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Founders Fund, Sequoia Capital, Insight Partners, ICONIQ 등 주요 벤처투자사가 양쪽에 동시에 베팅한 것이다.
전통적인 벤처투자 모델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벤처캐피털은 통상 특정 스타트업의 지분을 확보한 뒤 장기적으로 경영 전략에 관여하고 경쟁사에는 자금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창업자 친화적’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스타트업은 상장 기업과 달리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주요 투자자에게는 매출 구조, 고객 확보 현황, 기술 개발 계획 등 민감한 내부 정보를 공유한다. 일부 투자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동일 산업 내 경쟁사에 대한 동시 투자가 이해 상충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어느 회사의 전략을 우선 지원할 것인지, 어느 쪽 정보에 더 접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는 이해 상충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예상되는 승자가 여러 개일 경우 모든 승자에 베팅하는 구조가 갖춰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자산운용사들의 행보다. 블랙록(BlackRock) 계열 펀드는 앤트로픽 라운드에 참여했다. 동시에 블랙록의 고위 임원은 오픈AI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블랙록은 상장주식, ETF, 폐쇄형 펀드 등 다양한 자산을 운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별 펀드 단위로 투자 결정을 내린다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상징성은 크다. 과거라면 쉽게 보기 어려웠던 교차 투자다.
AI 분야의 자금 규모가 이 같은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형 AI 연구소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과 고성능 반도체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도, 승자와 패자도 얼마든지 시간 단위로 바뀔 수 있다.
해당 기업들 역시 특정 한 곳에만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는 복수의 파트너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시장이 단일 승자를 전제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도 복수 승자 가능성에 베팅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알트만은 과거 Y Combinator 대표를 지낸 벤처 생태계 인물이다. 2024년 일부 투자자에게 자사 경쟁사에 대한 투자를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향후 투자 참여를 금지하겠다고 명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비수동적 투자, 즉 경영에 관여하는 형태의 투자를 할 경우 기밀 정보 제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든 벤처투자사가 동일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안데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현재까지 오픈AI에는 투자했지만 앤트로픽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반대로 멘로 벤처스(Menlo Ventures)는 앤트로픽에 투자했지만 오픈AI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부 전통 벤처캐피털은 여전히 경쟁사 교차 투자를 피하고 있다.
이번 현상은 AI 산업이 기존 기술 스타트업과는 다른 자금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년간 단계적으로 자금을 유치해온 일반 스타트업과 달리 대형 AI 연구소는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를 필요로 한다. 투자 라운드가 열릴 때마다 자금 규모가 이전 기록을 갈아치운다.
이런 환경에서는 투자자 입장에서 특정 기업만을 고집하는 전략이 오히려 기회비용이 될 수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각각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투자자 충성도라는 개념은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진 모습이다.
BEST 뉴스
-
글 한 줄 안 쓰는 AI, 3주 만에 기업가치 75억 달러? '의사결정 AI' 제브
문장을 만들지 않고 판단만 내리는 AI 모델 '제브(Jev)'를 내놓은 미국 스타트업 타입세이프AI가 출시 한 달도 안 돼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타입세이프AI는 9일(현지시간) 8억7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75억 달러다. 시리즈A는 초기 시드 투자 이후 사업 확... -
메타의 부활?…신제품 '뮤즈'가 깨운 CPU 수요
메타플랫폼스가 지난 8일 출시한 개인용 AI 에이전트 '뮤즈(Muse)'가 열흘 만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무료 앱 1위에 오르면서 메타 주가와 반도체주가 동반 급등했다. 뮤즈는 질문에 답만 하는 기존 챗봇과 달리 사용자를 대신해 여러 단계의 일을 직접 처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메일 달력 결제 건강 쇼핑 스... -
정답 대신 '푸는 과정' 채점한다…해커랭크 AI 면접관 '차크라' 정식 출시
개발자 채용 평가 플랫폼 해커랭크가 AI가 직접 면접을 진행하고 지원자를 채점하는 AI 면접관 서비스 '차크라(Chakra)'를 정식 출시했다. 지원자가 문제를 푸는 동안 AI가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질문을 던지고 결과물뿐 아니라 답에 이르는 사고 과정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해커랭크는 미국 현지시간 5일 약 6개월... -
AI가 경찰에 '가짜 살인 제보'… 앤트로픽, 내부 테스트 인터넷 끊었다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이 자사 AI 모델 '클로드'가 테스트 도중 실제 웹사이트의 보안 허점을 파고들고 경찰에 허위 살인 제보까지 접수한 사실을 공개했다. 앤트로픽은 감시 체계가 이런 행동을 확실히 잡아낸다는 점이 확인될 때까지 모든 내부 평가에서 실시간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기로 했다. 앤트로픽은 9일(현... -
AI가 쏟아낸 '가짜 취약점 신고'에 구글 오픈소스 버그바운티 중단
구글이 AI로 만든 엉터리 보안 취약점 신고가 급증하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버그바운티 프로그램의 핵심 부문을 중단했다. 버그바운티는 외부 보안 연구자가 소프트웨어의 보안 허점을 찾아 알려주면 기업이 포상금을 주는 제도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구글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취약점 보상 프로그램(OSS VRP)'의... -
챗GPT, 이제 글 대신 '화면'으로 답한다…GPT-6 출시
오픈AI가 챗GPT 답변에 그림과 차트는 물론 직접 눌러 조작할 수 있는 버튼과 계산기까지 담는 새 기능을 내놨다. 글자로만 답하던 대화형 AI가 질문에 맞춰 화면 구성을 스스로 짜는 방식으로 바뀐다. 오픈AI는 7일(현지시간) 차세대 모델 'GPT-6'를 챗GPT의 일반 대화 기능에 적용하고 '인텔리전트 UI'를 함께 공개...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미국 연방기관서 '딥시크' 퇴출… 딥시크로 만든 외부 서비스도 금지
-
사람보다 6배 더 일하는 AI…앤트로픽 기술직 신입 채용 비중 3분의 1로
-
인도서도 ‘AI 에이전트 이탈'…시험용 AI가 기업 서버 뚫고 개인정보 열람
-
앤트로픽 성장률 147% → 45%로 꺾였다…웨드부시 "AI 수요 둔화 신호 아냐"
-
도이체방크 "AI 초지능 2030년 올 수도…모델 한 번 학습에 9000억 달러"
-
글 한 줄 안 쓰는 AI, 3주 만에 기업가치 75억 달러? '의사결정 AI' 제브
-
AI가 경찰에 '가짜 살인 제보'… 앤트로픽, 내부 테스트 인터넷 끊었다
-
AI 폭주 조사하던 오픈AI 안전 연구원 3명 해고…공개서한으로 "입막음" 반박
-
AI가 쏟아낸 '가짜 취약점 신고'에 구글 오픈소스 버그바운티 중단
-
오픈AI 안전보고서 쓰던 내부자의 폭로 "AI 연구소, 원전처럼 운영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