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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엔 돈 안 넣는다”는 벤처 불문율 붕괴…AI가 바꾼 투자 규칙

  • 임지민 기자
  • 입력 2026.02.2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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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을 둘러싼 자금 전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오픈AI가 1000억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라운드를 마무리 단계에 둔 가운데, 경쟁사 앤트로픽은 300억달러 자금 조달을 완료했다. 

 

두 회사의 기업가치만 합쳐도 글로벌 비상장 기업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번 대규모 투자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오래된 불문율, 경쟁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사실상 무너졌다. 


앤트로픽의 300억달러 라운드에는 최소 12곳 이상의 오픈AI 기존 투자자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Founders Fund, Sequoia Capital, Insight Partners, ICONIQ 등 주요 벤처투자사가 양쪽에 동시에 베팅한 것이다. 

 

전통적인 벤처투자 모델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벤처캐피털은 통상 특정 스타트업의 지분을 확보한 뒤 장기적으로 경영 전략에 관여하고 경쟁사에는 자금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창업자 친화적’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스타트업은 상장 기업과 달리 분기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주요 투자자에게는 매출 구조, 고객 확보 현황, 기술 개발 계획 등 민감한 내부 정보를 공유한다. 일부 투자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동일 산업 내 경쟁사에 대한 동시 투자가 이해 상충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어느 회사의 전략을 우선 지원할 것인지, 어느 쪽 정보에 더 접근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는 이해 상충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예상되는 승자가 여러 개일 경우 모든 승자에 베팅하는 구조가 갖춰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자산운용사들의 행보다. 블랙록(BlackRock) 계열 펀드는 앤트로픽 라운드에 참여했다. 동시에 블랙록의 고위 임원은 오픈AI 이사회 멤버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블랙록은 상장주식, ETF, 폐쇄형 펀드 등 다양한 자산을 운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개별 펀드 단위로 투자 결정을 내린다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상징성은 크다. 과거라면 쉽게 보기 어려웠던 교차 투자다.


AI 분야의 자금 규모가 이 같은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형 AI 연구소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과 고성능 반도체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도, 승자와 패자도 얼마든지 시간 단위로 바뀔 수 있다. 

 

해당 기업들 역시 특정 한 곳에만 전면적으로 의존하는 것보다는 복수의 파트너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시장이 단일 승자를 전제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자도 복수 승자 가능성에 베팅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알트만은 과거 Y Combinator 대표를 지낸 벤처 생태계 인물이다. 2024년 일부 투자자에게 자사 경쟁사에 대한 투자를 자제해달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향후 투자 참여를 금지하겠다고 명시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비수동적 투자, 즉 경영에 관여하는 형태의 투자를 할 경우 기밀 정보 제공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든 벤처투자사가 동일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안데르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현재까지 오픈AI에는 투자했지만 앤트로픽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반대로 멘로 벤처스(Menlo Ventures)는 앤트로픽에 투자했지만 오픈AI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일부 전통 벤처캐피털은 여전히 경쟁사 교차 투자를 피하고 있다.


이번 현상은 AI 산업이 기존 기술 스타트업과는 다른 자금 구조 위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년간 단계적으로 자금을 유치해온 일반 스타트업과 달리 대형 AI 연구소는 단기간에 수십억 달러를 필요로 한다. 투자 라운드가 열릴 때마다 자금 규모가 이전 기록을 갈아치운다. 

 

이런 환경에서는 투자자 입장에서 특정 기업만을 고집하는 전략이 오히려 기회비용이 될 수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각각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투자자 충성도라는 개념은 과거보다 훨씬 느슨해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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