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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16조·SK 5조… 재계 1·2위, 자사주 금고 통째로 비운다

  • 임지민 기자
  • 입력 2026.03.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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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가 10일 각각 16조원, 5조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공시했다. 합산 21조원으로 국내 기업 역사상 단일 시점 최대 규모다. 지난 6일부터 시행된 개정 상법이 자사주 소각을 사실상 의무화하면서 재계 1·2위가 동시에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공시한 2025년 사업보고서에서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 1억 543만주 가운데 82.5%인 8,700만주를 올해 상반기 안에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10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15조 6,100억원 규모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에서 이미 소각한 3조원을 뺀 잔여 물량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도 같은 날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1,469만주를 내년 1월까지 소각하기로 결의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로, 금액으로는 5조 1,575억원이다. 

 

㈜SK는 보유 자사주 1,798만주 가운데 임직원 성과 보상용으로 남겨둔 18%를 제외한 82%를 전량 소각한다. 이에 따라 ㈜SK의 자사주 비율은 기존 24.6%에서 사실상 0%가 된다.

 

이번 소각의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달 25일 국회를 통과해 이달 6일 시행된 3차 상법 개정안이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 대상으로 규정한다. 새로 취득하는 자사주는 1년 이내, 법 시행 전부터 갖고 있던 기존 보유분은 법 시행 후 1년 6개월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란 기업이 시장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다시 사들인 것으로 이를 소각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양사가 법적 시한보다 훨씬 앞서 선제적으로 소각에 나선 것은 주가 부양 명분을 선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실제 기업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돌파구로 대규모 소각을 활용한 셈이다. 

 

특히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전쟁이 시작된 이후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주가 방어 필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기술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도 함께 내보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37조 7,000억원을 투입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시설투자에도 52조 7,000억원을 집행했다. 특히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HBM4, 즉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를 앞세워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HBM은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제품으로, 삼성은 이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뒤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임직원 평균 연봉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임직원 평균 연봉은 1억 5,800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자사주 소각에는 그림자도 있다. 기업들이 그간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적대적 인수합병, 즉 상대가 원하지 않는 기업 인수 시도가 발생할 경우 자사주를 자신의 편인 우호 세력에게 넘겨 지분을 방어하는 방식으로 써왔다. 

 

자사주 자체에는 의결권이 없지만 유사시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카드였던 셈이다. 소각이 완료되면 대주주의 지분율은 발행주식 수 감소로 소폭 높아지지만 외부 세력이 경영권을 노릴 때 확보해야 할 지분 비용도 함께 낮아진다는 양면성이 생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5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으로부터 경영권 공격을 받은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SK는 소각을 감당할 재무 체력을 이미 갖췄다는 판단에서 결단을 내렸다. 별도 재무제표 기준 ㈜SK의 부채비율은 2024년 말 86.3%에서 지난해 3분기 77.4%로 낮아졌다. 물리적 방어막 대신 기업 가치 자체를 높여 주주를 우군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두 회사의 공시를 계기로 재계 전반의 소각 릴레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SK증권 집계에 따르면 상법 개정안 통과 후 2주 만에 총 48개 기업이 6조 9,97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공시했다. 

 

KCC는 발행주식의 13.2%인 117만주를, 롯데지주는 524만주를 소각하기로 했다. SK네트웍스도 발행주식 총수의 9.4%인 2,071만주, 약 1,000억원 규모를 소각 대상에 올렸다. 

 

한편 삼성전자 소액주주 수는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1년 전보다 96만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부진이 이어지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이 먼저 발을 뺀 것으로, 이번 대규모 소각 공시가 떠난 주주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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