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문 헤지펀드 '밸류얼라인드리서치어드바이저스(VARA)'의 파산설이 글로벌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헤지펀드는 소수 거액 투자자의 돈을 모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다. 실제 청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VARA가 대량 보유한 종목들이 이번 주 매도세의 한가운데 있었다.
15일(미국 동부시간) 미국 소셜미디어와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VARA가 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보유 주식을 대거 처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산은 펀드가 보유 자산을 모두 팔아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같은 날 금융정보 서비스 고델 터미널은 사정에 밝은 인물을 인용해 VARA가 정상 운용 중이며 폐쇄되거나 파산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청산 여부나 규모를 뒷받침하는 공식 보도는 아직 없다.
VARA는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있는 운용사로 블랙록 출신 벤 호스킨과 초고속 매매 회사 허드슨리버트레이딩 출신 데이비드 필드가 세웠다. 2025년 3월 헤지펀드 운용을 시작해 16개월 만인 올해 6월 말 운용자산을 264억 달러까지 불렸다. 직원은 9명 안팎이다.
시장이 이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VARA의 투자 구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분기마다 내는 보유 주식 보고서(13F)를 보면 VARA는 6월 말 기준 123개 종목에 401억 달러 규모의 보통주와 옵션을 담았다. 이 중 233억8000만 달러가 옵션이었다.
대부분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으로 구글·아마존·엔비디아 등이 대상이다. 옵션은 적은 돈으로 큰 규모의 주식에 투자하는 효과를 내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도 그만큼 커진다.
보통주 최대 보유 종목은 연료전지 기업 블룸에너지(16억9100만 달러)와 AI 클라우드 기업 네비우스(16억8600만 달러)다. AI 데이터센터 임대 기업 코어위브(10억8400만 달러)와 인텔·마이크론·샌디스크가 뒤를 이었다. 씨게이트·웨스턴디지털·루멘텀 등 메모리와 저장장치 광통신 종목도 다수 담았다.
VARA는 지난 7월 한 달 만에 44% 손실을 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초 이후 수익률은 6월 말 200%에 가까웠으나 7월 말 65%로 떨어졌다.
당시 오픈AI 연구원 출신 레오폴드 아셴브레너의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A)'는 원금의 4배 넘는 돈을 빌려 AI 주식에 투자했다가 청산 위기에 몰렸고 결국 포트폴리오를 시타델에 넘겼다. 두 펀드는 보유 종목이 상당 부분 겹친다.
빌린 돈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는 레버리지 거래에서는 주가가 떨어지면 담보가치가 줄어 증권사가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이 발생한다. 이 돈을 마련하려 주식을 팔면 같은 종목을 가진 다른 투자자들까지 손실을 입는다. 시장에서는 VARA의 실제 청산 여부와 별개로 7월의 기억이 투자자들의 선제 매도를 불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헤지펀드 전반의 AI 주식 매도는 수치로 확인된다. 골드만삭스 헤지펀드 트레이딩 데스크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8일부터 14일까지 반도체·데이터센터·클라우드·전력 인프라 등 AI 관련주 100여 개로 구성된 종목 묶음을 연일 순매도했다.
지난해 초부터 쌓은 순매수분을 모두 되돌렸고 순매도 규모는 최근 1년 새 두 번째로 컸다. 주가 하락에 새로 베팅하는 공매도보다 기존에 사둔 주식을 정리하는 매도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반도체 대표 기업 주가를 묶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6일 3.8% 내려 2008년 이후 가장 긴 연속 하락 기록을 세웠다. 이날 씨게이트(-7.50%)·웨스턴디지털(-6.86%)·샌디스크(-6.85%)·마이크론(-5.63%)이 급락했고 코어위브는 12% 떨어져 일주일 새 시가총액의 25%가 사라졌다. 나스닥지수는 주간 기준 4.5% 하락했다.
국내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15일 코스피는 7.57% 내린 5554.22에 장을 마쳤고 주가 급락 시 거래를 일시 멈추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삼성전자는 9.5% SK하이닉스는 11.1% 떨어졌고 외국인은 4조819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피는 16일 2.05% 반등했지만 외국인 순매수는 3000억원대에 그쳤다.
다른 악재도 겹쳤다. 9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7% 오르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관측이 커졌다. 중국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의 기술 진전 소식이 메모리주를 압박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 피격 보도에 브렌트유는 배럴당 110달러에 육박했다.
리치 프리보로츠키 골드만삭스 총괄은 높은 자금 조달 비용 탓에 AI 수요가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면 2027~2028년 반도체 공급망에 주문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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