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야심작 비전 프로에서 인력을 빼내고 있다. 무거운 헤드셋 대신 안경형 기기와 AI에 힘을 싣겠다는 신호다.
블룸버그와 애플인사이더 등은 20일과 21일(현지시간) 애플이 비전 프로 사업부와 음성비서 시리(Siri) 관련 조직에서 감원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 기자에 따르면 이번에 일자리를 잃는 인원은 약 200명이다. 비전 프로를 담당하는 조직에서 약 100명, 시리와 소프트웨어 조직에서 약 100명이 줄어든다.
비전 프로는 애플이 2024년 2월 내놓은 헤드셋이다. 눈앞에 화면을 띄워 현실 위에 가상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기기로, 애플은 이를 아이폰의 뒤를 이을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으로 내세웠다. 가격은 3499달러에 달했다.
이번 감원은 비전 프로 조직 안에서도 게임과 몰입형 영상 부문에 집중됐다. 몰입형 영상은 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전용 영상 콘텐츠를 말한다.
애플은 게임 담당 조직을 사실상 대부분 정리했다. 몰입형 영상 조직도 축소했는데 영상 한 편을 제작하는 데 회당 수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높은 비용이 배경으로 지목됐다. 애플은 앞으로 이런 영상을 자체 제작하기보다 외부 업체에 맡겨 제작 편수를 줄일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이번 조치로 새 역할을 만드는 동시에 일부 기존 자리에는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회사는 떠나는 직원들의 그동안 기여에 감사하며, 사내 다른 자리에 지원할 기회를 포함해 이들의 이직 과정을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감원은 시리와 AI 조직으로도 번졌다. 애플은 새로운 AI 기반 시리인 '시리 AI'를 준비하고 있다. 시리 AI는 기존과 다른 기술 구조 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탓에 팀에 필요한 전문성 자체가 달라졌고 이에 따라 소수의 기존 자리를 없애고 자원을 재배치해 새 시리를 뒷받침할 자리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기에서 AI 기능 일부를 맡는 인텔리전트 시스템 익스피리언스(Intelligent Systems Experience) 조직도 이번 조정의 영향을 받았다.
이번 인력 조정은 최고경영자(CEO) 교체를 앞두고 나왔다. 팀 쿡의 뒤를 이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을 총괄해온 존 터너스가 9월 1일 애플 CEO에 오른다. 쿡은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난다. 애플인사이더는 소식통을 인용해 터너스가 헤드셋 사업을 당분간 보류하려 한다고 전했다.
방향은 안경형 기기로 향하고 있다. 애플은 무거운 헤드셋 대신 일상에서 쓸 수 있는 가벼운 스마트 안경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최소 두 종류의 스마트 안경을 준비 중이며, 그중 첫 모델은 이르면 내년 공개될 수 있다.
'N50'이라는 코드명으로 알려진 이 모델은 화면이 없고 아이폰과 연결해 쓰는 형태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달고 음성 명령과 AI 기능에 크게 의존한다. 화면이 달린 모델도 별도로 개발 중이다. 다만 애플이 준비하는 스마트 안경은 몰입형 영상이나 고사양 게임은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쟁사 메타는 이미 이 시장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레이밴과 손잡은 '레이밴 메타' 안경으로 수백만 대를 팔았고 '오클리 메타'로 제품군을 넓혔다.
비전 프로는 출시 이후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애플이 2024년 판매한 비전 프로가 50만 대에 못 미친 것으로 추정했다. 높은 가격, 무거운 무게, 부족한 앱 생태계가 걸림돌로 꼽힌다. VR 헤드셋 시장 전체도 위축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이 시장은 1년 전보다 14% 줄었다.
다만 애플은 비전 프로 사업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비전 프로와 운영체제 비전OS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애플 채용 사이트에는 여전히 여러 지역에서 비전 프로 관련 자리가 올라와 있다. 블룸버그는 애플이 이르면 2028년 말 새 비전 프로 모델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썸네일 사진 출처: 애플 비전 프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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