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매 경유(디젤)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6.5달러를 넘어섰다. 겨울을 앞두고 중동과 러시아의 정유 시설 가동 차질이 길어지면서 세계 공급이 빠듯해진 결과다. 가격을 잡기 위해 미국산 경유의 수출을 막자는 요구가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자동차협회(AAA) 집계에 따르면 9월 21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갤런당 6.51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 3.695달러의 두 배에 육박한다. 주별로는 캘리포니아가 8.42달러로 가장 비쌌고 워싱턴 7.44달러, 하와이 7.18달러가 뒤를 이었다.
경유는 트럭과 기차, 선박, 농기계를 움직이는 연료여서 가격이 오르면 물류비와 식료품값 등 경제 전반으로 부담이 번진다.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두 개의 전선이 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시설을 겨냥해 벌이는 드론 공습이다. 로이터 분석을 보면 러시아 전체 경유 생산의 절반을 담당하는 6대 정유공장 가운데 절반이 9월 들어 가동을 멈추거나 크게 줄였다.
레닌그라드주 키리시 공장은 완전히 멈췄고 볼고그라드와 니즈니노브고로드의 노르시(NORSI) 공장은 설비 능력의 4분의 1 수준으로만 돌아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1~8월 러시아 정유공장이 평균 사흘에 한 번꼴로 드론에 피격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원유는 뽑아내지만 이를 정제해 경유로 만들 능력이 부족해졌고 결국 7월부터 자국 우선 공급을 위해 경유 수출을 제한했다. 세계 시장에서 러시아산 물량이 사라진 셈이다.
또 다른 축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다. 중동 정세 불안이 원유와 정제 제품 가격을 함께 밀어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유값 급등의 책임을 주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에 돌리고 있다. 그는 이달 1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다른 표적은 몰라도 러시아 경유 시설만은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미국산 경유의 해외 수출을 아예 막자는 주장이 나온다. 아이오와주 공화당 상원의원 척 그래슬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아이오와 주유소 경유값이 갤런당 6.57달러까지 올랐다며 1970년대 대통령들이 식료품값이 치솟자 농산물 수출을 막았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경유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경유도 미국 농민과 트럭 운전자를 위해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은 지난해 약 4억 배럴의 경유를 수출했고 이란 전쟁 이후 세계적 공급난으로 가격이 오르자 수출 유인이 더 커진 상태다.
중서부 지역구를 둔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동조했고 테네시주 하원의원 팀 버쳇은 2027년 1월까지 경유 수출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존 튠 상원 원내대표도 수출 금지를 검토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백악관 내부에서는 아직 이 방안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정유업계는 수출 금지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의 개럿 골딩은 경유 수출을 막으면 처음엔 걸프 연안을 중심으로 미국 내 도매가격이 내려가겠지만 세계 공급 자체가 줄어 국제 가격이 오르면서 오히려 수입에 의존하는 동부 해안 지역엔 역풍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출길이 막힌 정유공장은 저장 공간이 금세 차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휘발유와 항공유 등 다른 정제 제품 생산까지 함께 줄어 결국 가격이 더 오른다는 설명이다. 도리어 미국인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한편 국제 유가는 이날 하락했다.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누그러지고 미국과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유엔총회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시장 심리를 끌어올렸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4.5% 급락한 배럴당 95.78달러로 8월 4일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3.4% 내린 100.34달러에 마감했다.
두 유종 모두 9월 8일 이후 가장 낮은 종가다. 미국 천연가스 선물은 발전 수요를 떠받치던 더위가 물러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난주 상승분을 상당 부분 반납해 2.6% 내린 100만BTU당 2.836달러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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