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미국 재무부의 국채 매입 확대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재무부를 이끄는 스콧 베센트 장관은 그가 헤지펀드 트레이더 시절 가르침을 준 제자다.
두 사람은 과거 조지 소로스가 운용하던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에서 함께 일했고 이후에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드러켄밀러는 2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채권시장이 말하게 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문제가 된 것은 재무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국채 바이백(buyback) 확대다. 바이백은 정부가 이미 발행한 국채를 시장에서 되사들이는 조치다. 만기가 10~30년으로 긴 장기 국채를 대상으로 한 회당 매입 규모를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 배로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발표는 3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직후에 나왔다. 국채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가 돈을 빌리는 비용이 커진다는 의미다.
발표 직후 몇 분간은 금리가 내려갔다. 정부가 국채를 사주면 국채 가격이 오르고 그 반대급부로 금리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금리는 발표 이전보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드러켄밀러는 이 반응을 두고 시장의 판단이 빠르고 정확했다고 평가했다.
재무부의 조치는 유동성 관리보다는 가격 관리에 조금 더 가깝고, 40억 달러라는 액수가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실수라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핵심은 바이백의 성격이다. 바이백은 원래 시장에 현금이 원활히 돌도록 돕는 일상적 수단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정규 일정이 아닌 시점에, 두 배 규모로, 장기 국채 금리가 20년 만의 고점을 찍은 직후에, 규모를 무한정 키울 수 있다는 신호까지 담아 발표하는 것은 통상적 운영이 아니라고 봤다.
재무부가 특정 금리 수준을 방어하려 한다고 시장이 믿는 순간 금리가 오를 때마다 그것이 정부 의지를 시험하는 국면이 되고 재무부는 그 시험을 버티기 위해 매입 규모를 계속 키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드러켄밀러는 현재 채권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거래는 질서 있게 이뤄졌고 변동성도 억제된 상태였으며 정부 개입을 정당화할 만한 시장 기능의 마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30년 국채가 연 5.5% 금리에 팔려야 시장이 소화된다면 그것은 위기가 아니라 정부가 치러야 할 청구서라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의 금리 수준이 미국 경제의 실상을 반영한다고 봤다. 물가상승률이 3~4%, 실업률이 4.1%,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6%,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는 상황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경제의 명목 성장률과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금리가 성장률보다 높아져야 비로소 경제를 죄는 긴축이 되는데 지금은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채권시장이 이제 막 재정과 물가 압력에 반응하기 시작했을 뿐인데 재무부가 그 목소리마저 잠재우려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장기 국채 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정부가 앞으로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된다. 문제의 시급성이 흐려지고 정치인들은 부채가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유권자를 안심시킬 여지를 얻는다. 드러켄밀러는 이런 금리 억제가 재정 개혁을 미루는 데 대한 보조금이나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장기 금리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유일한 길은 재정적자 축소이며 신뢰할 만한 재정 개혁안이 이번 매입 프로그램의 1,000배 규모보다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베센트 장관은 반박에 나섰다. 그는 이번 국채 매입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려는 행위는 아니며 통상적인 유동성 관리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기자회견에서 매입 규모를 곧 늘릴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은 국채를 한 개도 사들이지 않았다고 답했고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일지에 대해서는 11월 초 분기 국채관리 계획 발표 전까지 기존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모건스탠리가 재무부가 최대 2,000억 달러까지 투입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등 개입 규모를 둘러싼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드러켄밀러와 베센트의 인연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에서 나란히 일하며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베팅해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영국은 파운드 가치를 인위적으로 방어하려다 실패했다. 34년이 지난 지금 드러켄밀러는 정부 자원을 동원해 장기 국채 금리라는 또 다른 가격을 인위적으로 방어하려는 제자에게 그때와 같은 실패를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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