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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한 달, 코스피는 어떤 고통을 겪었나

  • 고건 기자
  • 입력 2026.04.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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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은 한국 증시에 긴 상흔을 남긴 달이다.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군사·핵시설을 향해 선제 공습을 단행했고,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중동 전역에 전운이 드리웠다. 

 

이튿날 이란은 페르시아만 일대 미군 기지를 향해 보복 공격을 단행했고, 걸프 지역 영공과 일부 국제공항이 폐쇄됐다. 한국 증시가 한 달 내내 중동발 뉴스에 일희일비하는 장세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3월 한 달간 코스피는 15.9% 급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 기간 약 30조 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공매도 잔액은 공매도 재개 이후 처음으로 16조 원을 돌파했다. 공매도란 주가가 내려갈 것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 팔고 이후 더 싼값에 사서 갚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거래다. 이 잔액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자금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특히 3월 23일은 최악의 하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해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내자 코스피는 하루 만에 6.49% 폭락했다. 트럼프가 시한 수 시간 전 "이란과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면서 낙폭이 다소 좁혀졌지만 이란이 곧바로 "미국과 어떤 대화도 없었다"고 반박하면서 불확실성은 끝내 걷히지 않았다. 

 

3월 내내 사이드카(주가 급변 시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중단하는 장치)와 서킷브레이커(시장 전체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장치)가 여러 차례 발동됐다.


이번 사태가 한국 증시를 이토록 크게 흔든 이유는 수입 구조 때문이다. 한국은 도입 원유의 70.7%, 액화천연가스(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이 물량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남부와 오만 사이에 위치한 폭 33km의 좁은 수로로 전 세계 원유 해상 교역량의 약 27%가 이곳을 지나는 에너지 수송의 핵심 관문이다. 이란이 이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면서 평시 하루 50척 규모였던 유조선 통항은 사실상 0~1척 수준으로 급감했다.

 

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대에서 3월 9일 장중 100달러를 돌파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수출 차질로 인한 저장 공간 부족을 이유로 감산을 발표했다. 산업연구원은 봉쇄가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한국 제조업의 평균 생산 비용이 11.8%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OECD는 이번 사태를 반영해 한국의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했는데 이는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하락 폭이었다.


에너지 섹터 안에서도 희비가 갈렸다. 정유주는 초반에 급등했다. S-Oil은 3월 한 달간 13% 올랐고 SK이노베이션은 9% 상승해 코스피 전체 상승률(약 3.5%)을 크게 웃돌았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미리 사둔 원유의 가치가 높아지고 휘발유 등 제품과 원유의 가격 차이인 정제 마진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정제 마진이 20달러를 넘어서자 매수세가 몰렸고 거래량도 평시의 1.5~2배로 늘었다.

 

그러나 석유화학 업계는 반대 상황에 놓였다. 석유화학은 원유를 정제해 얻은 나프타(납사)를 원료로 에틸렌, 프로필렌 같은 기초 원료를 만들고 이를 다시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 등으로 가공한다. 원유가 제때 들어오지 않으면 나프타 생산도 줄고 그 여파는 석유화학 전 공정으로 이어진다. 


국내 최대 나프타 분해 시설을 갖춘 여천NCC는 가동률을 80%에서 60%대로 낮췄고, 울산의 한 정유사는 정제 시설 3기 가운데 1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KB증권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연간 석유화학 가동률이 전년 대비 27%, 나프타 분해 설비 가동률은 47%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정유사에 정부 비축유를 빌려주는 '비축유 스와프'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4월까지 약 5000만 배럴의 대체 원유를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평시 도입량(8000만 배럴)에는 못 미쳤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8일 "호르무즈를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을 신속히 발굴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항공사들은 유가 상승과 항로 우회 이중고에 시달렸다. 걸프 지역 영공 폐쇄로 중동 경유 유럽 노선 운항에 차질이 생겼고 우회 항로로 인해 비행 시간과 연료비가 늘었다. 다만 유가가 일시 하락할 때마다 항공주는 급반등하며 유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목군임을 보여줬다.

 

해운업계는 더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동량은 3월 초 기준 평시 대비 80% 급감했다. MSC, 머스크 등 글로벌 10대 선사가 3월 초부터 중동 노선 운송을 연이어 중단했다.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은 중동 지역으로 운송하는 화물에 컨테이너당 약 1000달러의 추가 비용을 부과했다. 

 

운임 자체는 치솟았지만 선박 연료인 벙커C유 가격도 원유와 함께 급등한 데다 전쟁 위험 보험료까지 올라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됐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3월 14일 호르무즈 해협의 대체 항로로 활용되던 UAE 푸자이라 항구를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우회로마저 막혔다.


반면 방산주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부각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은 '안전 자산' 성격의 종목으로 거론되며 동반 상승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내 방산주가 주도주로 떠오른 경험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방산주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시각이 확산됐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에서 '가성비 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K방산 기업들의 해외 수주 기대감도 함께 커졌다. 1~4차 중동전쟁 당시 S&P500 지수가 발발 당일 평균 1% 하락한 뒤 1개월 후 2.5% 반등했던 사례를 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증시 조정을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반도체와 자동차 대형주에 집중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월 내내 흔들렸다. 3월 마지막 주에는 구글이 AI 메모리 사용량을 최대 6분의 1로 줄이는 '터보퀀트' 알고리즘을 공개한 것이 겹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 우려까지 불거졌다. 

 

그러면서도 3월 한 달간 삼성증권 개인 고객 기준 가장 거래가 활발한 종목 1위와 2위는 각각 삼성전자(35조 2104억 원)와 SK하이닉스(16조 5237억 원)였다. 전쟁 리스크를 단기 이벤트로 보고 저점 매수에 나선 개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야간 거래 기준 1521.1원까지 치솟으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의 최고 수준에 바짝 다가섰다.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수입 비용이 늘어난 데다 외국인 주식 매도가 겹치면서 원화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졌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이미 2.2%로 목표를 넘어섰고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면 2분기 CPI가 3%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7.0으로 1월(112.1)보다 5.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큰 낙폭이었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전환과 중동 원유 의존도 완화, 수출시장 다변화의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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