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업계의 대표 기업 HMM이 대규모 신규 선박 발주를 단행했다. 발주 금액은 총 3조 4천5백억 원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맡게 될 이번 프로젝트는 해운업과 조선업 양쪽 모두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이번 계약에는 1만3천TEU급 LNG 추진 컨테이너선 12척과 초대형 원유운반선, 즉 VLCC 2척이 포함된다. HMM은 이 발주를 통해 친환경 선박 확보와 선복량 확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구상이다.
이번 발주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각각 나눠 맡는다. 두 회사 모두 LNG 연료 추진 시스템을 갖춘 최신 선박을 설계해 건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발주 금액만 놓고 보면 12척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이 약 3조 원 규모이며 VLCC 2척은 약 3천6백억 원 수준이다.
HMM이 이처럼 대규모 계약을 단행한 것은 2021년 이후 4년 만이다. 회사 측은 이번 결정을 ‘2030 중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했다. HMM은 해당 계획에서 선박 효율 개선과 온실가스 감축, 그리고 글로벌 운항 네트워크 확장을 핵심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HMM 관계자는 “국제 해운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LNG 연료 추진선은 현실적으로 가장 검증된 친환경 대안”이라며 “이번 신규 선박들은 IMO(국제해사기구)의 환경 기준을 충족할 뿐 아니라 향후 연료 전환에도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LNG는 기존 중유 대비 온실가스를 20% 이상, 질소산화물은 80% 이상, 황산화물은 99% 이상 줄일 수 있는 연료로 평가된다.
HMM은 과거에도 국내 조선사와 손잡고 대형 선박 발주를 지속해왔다. 2018년에는 2만4천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6천TEU급 8척을 포함해 총 20척을 발주했으며 규모는 약 3조 1천억 원에 달했다.
2021년에는 1만3천TEU급 12척을 1조 7천억 원 규모로 발주했고 2023년에는 메탄올 연료를 사용하는 9천TEU급 9척을 1조 4천억 원에 계약했다. 이번 발주는 HMM이 자사의 선대를 꾸준히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며 탄소중립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행보다.
조선업계에서도 이번 계약은 의미가 크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모두 고부가가치 선박을 수주한 셈이며, 이는 국내 조선 기술력의 경쟁력을 재확인시켜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LNG 연료 추진 시스템은 고도의 설계와 제작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 조선소의 기술력과 생산 관리 역량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업계 관계자는 “HMM의 이번 발주는 조선업계 전반의 수주 흐름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긍정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부담 요인도 적지 않다. 조선업계는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 그리고 숙련 인력 부족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조선소별로 수주 잔량이 늘어나면서 건조 일정이 빡빡해지고 있어 납기 지연 가능성도 거론된다.
HMM 입장에서도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은 경기 변동과 운임 지수 변화에 민감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해운시장의 불확실성도 변수로 남는다. 팬데믹 이후 급등했던 해상 운임은 2023년을 기점으로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유가 변동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수천억 원대의 신규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장기적인 수요를 확신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HMM은 이에 대해 “현재의 발주는 향후 10년을 내다본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하며 장기적 시각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HMM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업계 전반의 재무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조선산업 전문가는 “친환경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선박 건조비와 유지비가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며 조선사와 해운사 모두 비용 효율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주는 HMM이 글로벌 톱 10 해운사로 자리잡기 위한 교두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HMM의 선복량은 약 90만 TEU 수준이며 이번 신조선 투입이 완료되면 100만 TEU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세계 주요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HMM은 신조선을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받을 계획이며 그때까지 기존 노후 선박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키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한편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발주가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급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대형 발주가 늘어나면 기자재, 도장, 엔진, 자동화 설비 등 관련 중소기업에도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
특히 LNG 연료 추진선의 경우 관련 부품의 국산화 비중이 높아 국내 산업 내에서의 생산 파급력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대형 프로젝트는 국내 조선소의 고용 안정과 기술 투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HMM의 이번 결정은 산업 전반의 친환경 전환 흐름에 맞춘 중장기 전략으로 보인다. 글로벌 선사들이 일제히 LNG와 메탄올 같은 저탄소 연료로 선박을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HMM이 국내 조선소와 손잡고 선제적으로 움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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