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출 지표가 미국 증시 실적을 한 달 앞서 예측하는 '선행 신호'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핀테크·투자 서비스 기업 SoFi의 투자전략 책임자 리즈 토머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수출 증가율이 S&P 500 기업들의 향후 12개월 주당순이익(EPS) 성장률과 약 한 달의 시차를 두고 거의 일치하는 패턴을 보인다고 밝혔다.
이 상관관계의 핵심은 반도체다. 한국은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 세계 D램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토머스는 한국의 반도체 수출 주문이 늘어나는 것은 곧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수익 증대를 앞두고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지표들은 이 공식을 뒷받침한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3월 ICT(정보통신기술) 수출은 435억 1천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중 반도체 수출만 328억 4천만 달러로 151% 급증했으며 단일 품목으로 월간 3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4월 7일 올해 1분기 잠정 실적을 공시하며 영업이익 57조 2천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800% 증가한 수치이자 분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3조 6천억 원)을 단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SK하이닉스는 오는 4월 23일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매출 46조 6천억 원, 영업이익 31조 5천억 원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보다 28% 올려 216조 원으로 상향했다. 이는 2025년 실적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같은 반도체 호황의 배경에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있다. AI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양의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6년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기업),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5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AI 인프라 기업)의 설비투자 합산 규모는 6천600억~7천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5년 대비 최대 두 배 수준이다.
CreditSights는 이 중 약 75%인 4천500억 달러가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직접 투입되는 AI 전용 지출이라고 분석했다.
4월 1~10일 사이 한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7% 증가한 252억 달러를 기록해 월 초 10일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 중 반도체만 86억 달러로 152% 급증했다. 이 기록은 불과 한 달 전 세운 종전 최고치(217억 달러)를 다시 넘어선 것이다.
이 같은 한국발 지표들은 미국 기업 실적 시즌과 정확히 맞물리고 있다. 금융 데이터 기업 FactSet에 따르면 S&P 500 기업들의 2026년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2.5~12.6%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6분기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이다.
SoFi의 토머스는 4월 15일 기준으로 S&P 500 중 30개 기업이 실적을 발표했으며 1분기 11.3%, 연간 기준으로는 16.9%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수치들이 대부분의 비교 기준 대비 강하며 실현될 경우 시장은 펀더멘털(기업의 실질 가치를 뒷받침하는 재무·경제 지표) 지지를 받게 된다고 평가했다.
FactSet의 주간 보고서에서도 2026년 연간 기준 S&P 500 EPS 성장률 전망치는 17.4%로 나타났다. 2분기부터 4분기까지 각각 19.1%, 21.2%, 19.3%의 성장이 예상되며 향후 12개월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시장이 기업 이익의 몇 배를 주고 주식을 사는지를 나타냄)은 19.8배로 5년 평균(19.9배)에 근접한 수준이다.
토머스는 한국 수출 데이터 단 하나의 지표만 놓고 봐도 미국 기업 실적의 추가 상승 여력이 상당하며 2026년 두 자릿수 성장 기대가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AI 주도의 반도체 수요가 이 지표의 예측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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