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가 세계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떠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8월 27일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OPEC은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함께 조절해 국제 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카르텔로 1960년 베네수엘라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와 함께 창립한 조직이다. 창립 회원국이 탈퇴를 저울질하는 것은 66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탈퇴 문제가 미국 관리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거론됐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언급을 거부했고 베네수엘라 정보부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번 움직임의 배경에는 베네수엘라의 급격한 정치 지형 변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기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을 축출한 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판매를 사실상 장악한 상황이다. 현재 나라를 이끄는 임시 정부 수반은 델시 로드리게스이며 미국 측 협상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맡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OPEC의 핵심 회원국이었으나 미국의 제재와 국내 혼란으로 석유 산업이 무너지면서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 7월 원유 생산량은 하루 116만 배럴로 10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만 올해 들어 생산량은 다소 회복됐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가 실제로 탈퇴하더라도 국제 원유 시장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생산량이 급감해 OPEC이 회원국에 배정하는 생산 한도(쿼터) 바깥에 놓여 있어 실제 공급량 변화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급량보다 OPEC 결속력에 미칠 파장이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가 생산 한도에 대한 불만으로 OPEC을 떠났고 이라크 역시 6월 더 높은 생산 한도를 인정받지 못하면 탈퇴를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앙골라는 2024년 조직을 떠났다.
여기에 베네수엘라까지 이탈하면 UAE와 합쳐 하루 500만 배럴이 넘는 생산 능력이 조직에서 빠져나간다. 이는 올해 초 OPEC 핵심 회원국 생산 능력의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원 이탈이 이어지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이 원유 가격을 조율하는 능력 자체가 흔들린다.
일부 미국 관리들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동맹을 통해 OPEC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새로운 '석유 강국'을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국제금융그룹 ING의 분석가들은 미국이 이미 베네수엘라의 석유 판매를 통제하고 있는 만큼 베네수엘라가 탈퇴를 검토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들은 탈퇴가 OPEC의 영향력을 줄이더라도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까지 묶은 확대 협의체 'OPEC+'를 감안하면 조직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크다고 덧붙였다.
이번 검토는 미국과 베네수엘라가 유전을 놓고 벌이는 대형 협상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 유전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여러 유전을 대상으로 한 100년짜리 장기 임대(리스) 계약도 거론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협상 테이블에는 오리노코 벨트의 미개발 초중질유 광구와 마라카이보호의 성숙한 경질유 광구를 포함해 17개 유전이 올라 있다. 이 계약으로 확보되는 원유는 이란과의 갈등 속에 치솟는 연료비를 잡기 위해 미국에 우선 공급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인 3030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투자만 이뤄지면 생산량을 크게 늘릴 여력이 있다.
시티그룹의 스콧 그루버 분석가는 베네수엘라의 유전 서비스 사업 기회가 상당하지만 실제 투자 확대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미국 밖에서 대규모 원유 증산이 일어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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