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오는 6월 14일 자국 인구를 1000만 명 이하로 묶는 안건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 투표가 통과되면 이민이 대폭 줄고 유럽연합(EU)과의 핵심 협정이 깨질 수 있어 구글, 로슈, 노바티스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000만 명 스위스 반대'로 불리는 이 안건은 의석수 1위인 우파 정당 스위스국민당(SVP)이 발의했다. 핵심은 2050년까지 영주 인구를 1000만 명 아래로 유지하도록 헌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2025년 말 기준 스위스 인구는 약 910만 명이며 이 가운데 외국 국적자가 27%를 넘는다.
2002년 EU와 인력 자유이동이 시작된 뒤 인구는 약 170만 명 늘었고 증가분의 대부분이 이민에서 왔다. 현재 속도라면 1000만 명 선은 2050년보다 훨씬 일찍 넘어선다.
제도는 단계별로 작동한다. 인구가 950만 명을 넘으면 정부는 새 거주 허가 발급과 가족 결합 비자, 난민 신청을 조이는 1차 조치를 내놔야 한다. 가족 결합은 외국인 거주자가 본국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는 절차를 말한다. 동시에 인구를 늘리는 국제 협정을 다시 협상해야 한다.
또한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면 스위스는 EU와 맺은 '인적 자유이동 협정'을 파기해야 한다. 이 협정은 EU 시민이 스위스에서 자유롭게 살고 일할 수 있게 한 약속이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여러 양자 협정을 통해 EU 단일시장에 참여해 왔고 자유이동은 그 토대가 되는 핵심 협정이다.
협정이 깨지면 23조 달러 규모 경제권과 4억 5000만 소비자 시장에 대한 접근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EU는 스위스 최대 교역 상대이자 최대 수출 시장이다. 스위스는 지난해 단일시장 접근을 유지하고 넓히는 새 협정을 EU와 타결해 의회에서 논의 중인데 이번 안건이 통과되면 그 합의도 불확실해진다.
기업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이 안건이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뿐 아니라 고급 인력 채용까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리히의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85개국 출신 외국인 5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바젤에 본사를 둔 제약사 로슈는 10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온 직원을 쓴다.
로슈의 제버린 슈반 회장은 스위스가 필요한 인재를 자국 인력만으로 채울 수 없으며 최고 인재를 위해 국경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노바티스와 네슬레도 다양한 배경의 전문 인력 유입이 혁신과 번영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스위스 화학 제약 바이오 산업은 직원의 45%가 외국인이다.
재계는 거세게 반발한다. 최대 경제단체 에코노미스위스는 이 안건을 '혼란 유발 안'으로 규정했다.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 세수와 혁신 역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의료 연구 서비스 분야의 인력난도 심해진다.
EU와 그 인근 국가 출신 노동자들이 스위스 연금 재정에 기여하는 몫이 큰 만큼 이들이 줄면 사회보험 재정이 나빠진다는 분석도 있다. 이민이 줄면 고령화가 빨라져 일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연금 수급자는 늘어난다는 우려도 나온다.
연방정부와 상하 양원 모두 부결을 권고했다. 정부는 협정 파기 시 망명 신청과 비용이 늘고 경찰이 공동 수사 데이터베이스 접근권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찬성 측 주장은 다르다. SVP의 마르셀 데틀링 대표는 스위스가 끝없이 커지지만 성장의 혜택이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빠른 인구 증가로 주택난과 임대료 상승, 도로 정체, 만원 대중교통, 학교 과밀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친화적인 추크주처럼 호황을 누린 지역은 집값이 제네바를 넘어설 만큼 치솟았다.
여론은 팽팽하다. 4월 말 조사에서는 찬성이 52%로 앞섰지만 5월 8일 gfs.bern 조사에서는 찬반이 47% 대 47%로 갈렸다. 5월 18~26일 유고브 조사에서는 반대 51% 찬성 43%로 반대가 우세했다.
양측이 캠페인에 쏟아붓는 비용은 1500만 스위스프랑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스위스에서 이민을 둘러싼 국민투표는 60년간 스무 차례 넘게 치러졌고 2014년에도 비슷한 인구 상한 안건이 부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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