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지난달 맺은 휴전이 3주 만에 붕괴 위기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이란과의 휴전이 사실상 끝났다고 밝혔다. 그는 협상을 계속할 수는 있지만 시간 낭비라고 했고 협상 자체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며 "그냥 끝내버리자"고 말했다.
발단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선박 공격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외해를 잇는 좁은 바닷길로, 세계 원유와 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이곳을 지난다.
이란은 7일 이 해협에서 카타르 소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알레카야트호와 사우디아라비아 국적 초대형 유조선 웨디안호를 공격했다. 알레카야트호는 엔진실에 불이 붙어 폭발 위기까지 몰렸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라이베리아 선적 유조선 사이프러스 프로스페리티호까지 공격하면서 사흘 사이 세 척이 피격됐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공격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란 국영매체도 자국의 소행임을 시사했다.
미국은 두 갈래로 대응했다. 먼저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 판매를 허용해 온 제재 면제 조치를 철회했다. 이 면제는 지난달 서명한 양해각서(MOU)에 포함된 것으로, 전쟁으로 막혔던 이란의 원유 수출을 60일간 풀어주는 대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도록 하는 유인책이었다.
원유·석유화학 수출은 이란 경제를 지탱하는 사실상 유일한 생명줄이어서 면제 철회는 이란 경제에 큰 타격을 준다. 이미 선적을 마친 물량에는 유예 기간을 두되 그 대금은 이자가 붙는 동결 계좌에 묶어두기로 했다.
이어 군사 대응이 뒤따랐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현지시간 화요일 밤 이란 내 80여 개 표적을 정밀 타격했다고 밝혔다. 방공망과 지휘통제망, 해안 레이더, 대함미사일 시설과 함께 해협 안팎의 혁명수비대 소형 선박 60여 척을 공격했다는 설명이다.
이란 남부 케슈므섬과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 부셰르주의 군기지 두 곳도 타격을 받았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은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중부사령부는 수요일 오후에도 이란이 민간 상선을 다시 공격한 데 대응해 추가 타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이란 지도부를 겨냥해 "역겹다" "쓰레기 같다"는 격한 표현을 쓰며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국이 해상 봉쇄를 다시 가동하겠다고도 밝혔다. 다만 전면전이 재개될 것으로 보지는 않으며 상황이 빠르게 끝날 것이라고 말해 앞선 발언과는 온도차를 보였다.
이란은 반발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는 미국이 MOU의 여러 조항을 위반했다며 미국이야말로 합의 구조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번 미군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바레인과 쿠웨이트 내 미군 시설 85곳을 겨냥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서명된 MOU는 양측이 전투를 멈추고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풀며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여는 내용을 담았다.
이 합의를 발판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의 미래와 동결된 이란 자금 처리 등 더 까다로운 쟁점을 60일간 협의하기로 돼 있었다. 트럼프는 3주 전만 해도 이 합의를 "무조건 항복"이라 부르며 성과로 내세웠으나 이번에 스스로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번 사태로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5.2% 오른 배럴당 78.02달러에 마감했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4.4% 상승한 73.52달러로 장을 마쳤다. WTI는 장중 76달러까지 뛰며 6월 이후 하루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고, 이틀간 상승률은 7%를 넘었다.
MOU 체결 뒤 배럴당 69~70달러선에서 3주가량 안정됐던 유가가 다시 요동친 것이다. 뉴욕 증시에서는 S&P500 지수가 0.3% 내렸고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77포인트 하락했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동발 물가 상승이 정치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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