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천연가스 가격이 단기간에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원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가격이 완만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고 폭등이나 폭락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이번 가격 급등의 직접적인 계기는 북극 한파였다. 미국 중서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기록적인 추위가 이어지면서 난방용 천연가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에서는 가정과 상업 부문의 난방에 천연가스가 널리 사용되는데 이 난방 수요가 전체 천연가스 소비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수요 증가가 곧바로 현물 가격에 반영된다.
(사진 출처: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수요 증가와 동시에 공급 차질도 발생했다. 텍사스 등 남부의 주요 생산 지역에서는 ‘웰헤드 프리즈오프(wellhead freeze-off)’로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극심한 저온으로 인해 가스전의 밸브나 배관이 얼어붙어 생산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영향을 받으면서 시장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기에 파생상품 시장 요인도 더해졌다.
한파 이전까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이 이어지자 가격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많았는데 기상 전망이 급변하자 이들이 포지션을 급히 정리하면서 가격 상승을 더욱 부추겼다.
다만 미국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항상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다른 요인들도 반복적으로 작용해 왔다. 2005년에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가 멕시코만을 강타하면서 해상 생산 설비가 대규모로 중단됐다. 당시 미국 천연가스 생산의 약 4분의 1이 멕시코만 해역에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급이 단기간에 크게 줄었다.
2008년에는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급등한 시기였고, 2021년 가을에는 허리케인 아이다의 여파로 생산과 처리 시설이 장기간 멈추면서 가격이 뛰었다. 이런 사례들은 미국 천연가스 시장이 특정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취약성의 핵심은 저장과 운송 구조에 있다. 천연가스는 상온에서 기체 상태이기 때문에 저장이 쉽지 않다. 원유처럼 탱크에 담아두는 방식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갈된 가스전이나 염층 같은 지하 공간을 활용한 저장소를 사용하거나, 액화해 보관해야 한다. 지하 저장소는 지질 조건이 맞아야 하고 건설 비용이 크다. 액화 저장은 가스를 영하 162도까지 냉각해 부피를 줄이는 과정이 필요해 설비 투자와 운영 비용이 매우 높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천연가스 저장은 계절 수요를 감안한 제한적인 규모로만 운영된다. 저장 여력이 제한되다 보니 미국 천연가스 시스템은 ‘필요한 만큼 생산해 곧바로 소비지로 보내는’ 구조에 가깝다. 평상시에는 효율적이지만 예상보다 수요가 늘거나 생산에 문제가 생기면 대응할 여유가 크지 않다.
겨울철에는 이미 난방용으로 사용할 물량을 전제로 재고가 계산돼 있기 때문에, 한파가 강해지면 추가로 쓸 수 있는 가스가 빠르게 부족해진다. 이때 시장은 가격을 통해 즉각적인 조정을 시도하게 된다.
운송 방식도 제약 요인이다. 미국 내 천연가스는 대부분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동한다. 원유처럼 트럭이나 선박으로 유연하게 옮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파이프라인은 노선이 정해져 있어 지역 간 이동에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텍사스에서 가스가 남아돌더라도 수요가 급증한 미국 동북부로 즉시 충분한 물량을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특정 지역에서는 가격이 급등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유지되는 현상이 반복된다.
최근에는 전력 수요 구조 변화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전력 생산의 약 40%가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
겨울철에는 난방용 가스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전기 난방과 데이터센터 가동으로 인해 발전용 가스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수요가 소폭만 늘어나도 여유 물량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가격 변동성이 커지는 취약점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천연가스 가격 급등은 저장이 어렵고 파이프라인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급망 구조, 그리고 계절과 산업 변화에 민감한 수요 구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천연가스의 가격 변동이 증폭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BEST 뉴스
-
400억 달러 AI 펀드 '파산설'…반도체주 덮친 청산 공포
AI 전문 헤지펀드 '밸류얼라인드리서치어드바이저스(VARA)'의 파산설이 글로벌 반도체주 급락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헤지펀드는 소수 거액 투자자의 돈을 모아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펀드다. 실제 청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VARA가 대량 보유한 종목들이 이번 주 매도세의 한가운데 있었다. 15일(미국 동부... -
캐시 우드 '스페이스X 줍줍' 멈췄다…로빈후드 팔고 코어위브·베라사이트 담아
'돈나무 언니'로 불리는 캐시 우드가 이끄는 미국 자산운용사 아크인베스트먼트(ARK Invest)가 지난주 스페이스X 지분 일부를 처분했다. 지난 6월 상장 이후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사들이던 종목이다. 같은 기간 아크는 AI·바이오·방산 기술주를 늘리고 로빈후드와 테라다인 등 많이 오른 종목은 덜어냈다. 12일 시킹... -
일자리 2만9000개 '고용 쇼크'에 웃은 월가…나스닥100 사상 최고치
미국의 9월 일자리 증가 폭이 시장 예상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자 뉴욕증시가 일제히 올랐다. 고용 둔화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을 미룰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0.5% 오른 5만1176.96에 장을 마쳤다. 대형주 500... -
"팬더는 왔지만 반도체는 없었다"…미중 정상회담 성과는 '두 달짜리 휴전 연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이 25일(현지시간) 마무리된다. 사흘간의 일정에서 나온 가장 큰 성과는 양국 무역 휴전을 두 달 연장하기로 한 합의다. 그 외에 AI 부문이나 지정학 현안에서 눈에 띄는 돌파구는 나오지 않았다. 휴전 연장은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 이미 공개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
연일 치솟는 국채금리…베선트가 급히 부른 '월가 채권통'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8일(현지시간) 월가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저보스를 재무장관실 카운슬러로 영입했다. 국채 금리가 1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채권시장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시장과 직접 대화할 인물을 전면에 세운 것이다. 카운슬러는 장관을 보좌하는 고위 자문직으로 상원 인준이 필요 없어 ... -
트럼프 "경유 수출 막자"…에너지장관도 재계도 유럽도 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유 수출을 제한하거나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국제 석유제품 시장이 출렁였다. 22일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유를 내보내지 말자고 행정부 내부에서 주장해 왔다며 결정은 빠르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스콧 ...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
"금리 세 번 더 올린다"는 월가 베팅에 엘에리언 "과하다"…기술주 급락이 변수
-
이란 전쟁 8개월에 한 집당 2000달러 증발…’전쟁 청구서' 받아든 미국 가계
-
전쟁도 불황도 없는데 적자 2조달러…미국 국채금리 6% 경고등
-
미 국채금리 24년 만에 최고인데…채권펀드엔 '역대급' 뭉칫돈
-
일자리 2만9000개 '고용 쇼크'에 웃은 월가…나스닥100 사상 최고치
-
연준 서열 3위 윌리엄스 "서두를 필요 없다"...금리인상 분위기 급반전
-
연일 치솟는 국채금리…베선트가 급히 부른 '월가 채권통'
-
트럼프 "경유 수출 막자"…에너지장관도 재계도 유럽도 반대
-
AI도 '대마불사'로 가나…연준 인사가 던진 경고성 질문
-
미 국채 금리 5.2% 돌파…"국가부채 위기? 489조 달러 민간자산 보라" 반론도 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