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의 뜨거운 열기에 가려져 있지만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시세는 현재 인플레이션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최근 원유 가격은 지난 몇 년간의 고점과 저점 사이 중간 지점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물가 안정을 갈구하는 시장 입장에서는 에너지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가장 큰 공신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국면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겨냥한 강력한 에너지 규제 카드를 꺼내 들며 국제 유가 시장에 새로운 파장을 던지고 있다.
먼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트럼프의 행보는 독재 정권의 생명줄을 끊겠다는 외교 전략의 일환이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은 반미 성향을 유지하면서도 국영 석유회사인 PDVSA를 통해 벌어들이는 외화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PDVSA와의 거래를 차단하여 정권을 압박하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 기업인 셰브론(CVX)의 입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셰브론은 베네수엘라 현지에서 전체 생산량의 25%에 달하는 막대한 물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는 베네수엘라 전체 수출량의 30%를 차지하는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셰브론의 사업 허가를 취소하고 철수를 명령했으나 최근 그 기한을 한 달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는 셰브론이 가진 독점적 지위와 에너지 자산의 가치를 고려한 사업가적 셈법이 작용한 결과다.
엑슨모빌 같은 경쟁사들이 이미 철수한 상황에서 셰브론이라는 유일한 통로를 남겨둠으로써 마두로 정권에 대한 압박 수단과 에너지 공급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계산이다.
동시에 트럼프는 이란산 원유에 대해서도 강력한 봉쇄 작전을 시작했다. 이란산 원유를 구매하는 중국 정유사와 운반선까지 제재 리스트에 올리며 이란의 경제적 기반을 질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이란 역시 베네수엘라와 마찬가지로 원유 수출이 외화 벌이의 핵심 수단이기에 이를 차단함으로써 핵 협상 테이블로 이란을 끌어내려는 목적이 크다. 특히 중동 내 무장 세력을 지원하는 이란의 자금줄을 막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전략이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한 동시다발적 제재는 표면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원유 공급량을 줄여 유가 상승을 초래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의 진짜 의도는 단순히 공급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정교한 이중 플랜을 가동하는 데 있다.
트럼프식 에너지 방정식의 첫 번째 단계는 적대국의 원유를 차단하여 미국 내 셰일오일 생산자들에게 우호적인 가격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란산 기름이 시장에 무분별하게 풀려 유가가 급락하면 미국 셰일 업체들은 손해를 보며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절한 봉쇄를 통해 유가를 셰일 업계의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60달러 후반대 수준에서 지지함으로써 미국 내 에너지 자립도를 유지하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두 번째 단계는 우방국과 미국 내부의 증산을 유도하여 적대국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같은 주요 산유국에 증산 압박을 가하고 미국 셰일 기업들에게 세금 인하나 정유 보조금 같은 혜택을 제공하여 시장 전체의 공급 총량은 유지되도록 관리한다.
만약 유가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 폭등할 기조를 보이면 전략비축유 방출 같은 행정적 수단을 동원해 즉각적인 방어에 나설 준비도 갖추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초반대까지 끌어내려 인플레이션을 상당 부분 완화하는 것에 있다. 이는 미국의 압도적인 통제력과 물리적인 공급 조절을 통해 유가를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비록 베네수엘라나 이란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유가에 일시적인 상승 압력을 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공급 체계가 재편되면서 유가는 하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셰일 업체의 생존 마지노선인 66달러 선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60달러 초반대의 가격 형성은 트럼프가 그리는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에너지 부문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글로벌 인플레이션 해소에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은 당분간 지정학적 리스크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에너지 딜은 미국 내 산업 보호와 글로벌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수렴할 것이다.
투자자와 시장 참여자들은 이제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공급 차단이라는 단기적 악재보다 그 이면에 깔린 미국 중심의 공급 증대와 정책적 방어 기제에 더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패권의 재편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미국의 전략은 향후 글로벌 경제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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