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앳킨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4월 21일 워싱턴 DC 이코노믹 클럽에서 취임 1주년을 기념하는 기조연설을 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이날 사모대출 시장의 불투명성 문제를 공개 경고하는 한편 암호화폐 규제 정비와 기업공개(IPO)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35조 달러 규모로 성장한 사모대출 시장에 대해 SEC가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모대출은 은행 대신 블랙스톤·아폴로·아레스 같은 자산운용사가 중견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시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 시장에서는 현재 중도 환매 요청이 급증하고 있고 부도율 전망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블랙스톤의 사모대출 펀드 BCRED는 2026년 2월 3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손실을 기록했고 1분기에만 주요 운용사 전체에 걸쳐 100억 달러 이상의 환매 신청이 몰렸다.
피치 집계 기준 미국 사모대출 부도율은 지난 1월 기준 연간 5.8%로 추적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건스탠리는 AI 소프트웨어 기업 관련 대출 부실을 이유로 직접대출 부도율이 8%까지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이 시장의 핵심 문제로 불투명성을 꼽았다. 사모대출 펀드는 상장 펀드와 달리 자산 가치 평가 방식이나 대출 내역을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어 투자자가 실제 위험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자산 가치 평가, 투명성, 신용 품질이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하며 수수료가 높고 유동성이 낮다는 점도 투자 적합성을 따질 때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은행권의 이 시장 익스포저(노출 규모)가 1,080억 달러를 넘어선 만큼 은행 리스크도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사모대출 시장이 은행 규제 강화 이후 소규모·성장 기업의 자금 조달 공백을 메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하면서도 대규모 자금 유입이 계속되면 거래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앳킨스 위원장은 암호화폐 분야에서도 명확한 규제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SEC가 명확한 규칙 대신 법 집행을 통해 사실상 규제하는 방식을 택한 탓에 미국 기업들이 해외로 나갔다고 비판했다. 미국 기업가들의 의지나 투자자들의 수요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규제 당국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는 SEC가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협력해 암호화폐 자산에 대한 규제 정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두 기관은 지난 3월 11일 규제 조율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는 디지털 자산의 정의와 관할권을 명확히 하고 중복 규제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MOU 체결 직후인 3월 17일에는 SEC가 암호화폐 자산의 증권법 적용 기준에 관한 해석 지침을 발표했고 CFTC도 이에 동조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공시 규제를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는 1994년 SEC 직원으로 재직할 당시 미국 거래소에는 7,800개 이상의 기업이 상장돼 있었는데 현재는 약 40% 줄었다고 지적했다. 공시 부담이 쌓이면서 상장을 꺼리는 기업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그가 제시한 단기 개혁 과제는 네 가지다.
첫째, 2012년 잡스법(JOBS Act)이 도입한 신규 상장 기업 우대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잡스법은 기업공개 후 일정 기간 소규모·성장 기업에 한해 공시 의무를 완화해 주는 일종의 진입 경사로 역할을 해왔는데 이를 더 많은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소규모·성장 기업에만 허용된 각종 규제 완화 혜택을 더 넓은 범위의 기업으로 확대한다.
셋째, 대부분의 상장사가 '선반 등록'(shelf registration) 방식으로 주식·채권을 더 쉽게 발행할 수 있도록 한다. 선반 등록은 증권 발행 계획을 미리 등록해 두고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발행하는 제도다.
넷째, 기업이 분기 또는 반기 중 하나를 선택해 정기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다. 현재 미국 상장사는 분기마다 의무적으로 실적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 주기를 반기로 늦출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날 연설은 앳킨스 위원장이 2025년 4월 21일 취임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이루어졌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으로 상원 인준을 받아 SEC 34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전에는 1990년대 초 SEC 직원과 2002~2008년 SEC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이번이 세 번째 SEC 근무다.
그는 이날 앞서 4월 20일 CNBC 스쿼크박스에 출연해 IPO 활성화 의지와 사모대출 위험, 암호화폐 규제 현황 등에 관해 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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