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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매입의 시대'가 저문다…미국 자본, 다시 실물경제로

  • 고건 기자
  • 입력 2026.06.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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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무게중심이 주식시장에서 공장과 발전소로 옮겨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대기업들이 즐겨 쓰던 '자사주 매입'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여 소각하는 방식이다. 시중에 도는 주식 수가 줄면 주당 가치가 올라 주가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기업이 공장이나 설비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도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있어 지난 10여 년간 미국 기업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웰링턴-알투스의 수석 시장전략가 제임스 손은 6월 26일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축이 '금융공학'에서 '실물경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금리·저성장 시대에는 설비투자가 부담으로 여겨졌고 자사주 매입은 주주를 위한 절제된 경영으로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공식이 생산 시설의 국내 복귀, 에너지 안보, 공급망 안정, 인공지능(AI) 인프라라는 새로운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수치가 변화를 뒷받침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 등 대형 AI 기업 다섯 곳의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755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3%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의 올해 1분기 자사주 매입은 1년 전보다 64% 줄었다. 전체 현금 지출에서 자사주 매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7~2022년 평균 27%에서 현재 15%까지 떨어졌다. 벌어들인 현금 대부분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에 쏟아붓느라 주주에게 돌려줄 여력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6월 23일 뉴욕 이코노믹클럽 연설에서 미국 경제 전략의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 건국기 인물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모든 국가는 국가 공급에 필요한 핵심 요소를 자국 안에서 갖춰야 한다고 말한 점을 인용했다. 

 

다만 모든 부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국내에서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고 특정 국가에 위험할 정도로 집중된 공급망을 분산하고 충분한 국내 생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베센트 장관은 값싼 제품을 들여오면 생산 능력을 잃어도 괜찮다는 오랜 전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적대국에 핵심 물자를 의존하는 나라는 진정한 주권국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자국 생산을 강조한 분야는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첨단 제조, 조선, 핵심 광물, 의약품 등이다.

 

손 전략가는 자본이 재무제표를 다듬는 작업에서 벗어나 실제 생산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AI 투자 열풍이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돈이 콘크리트, 철강, 구리, 전력, 물류, 기계로 흘러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低)설비투자·고(高)자사주 매입 전략을 고수하는 투자자는 실물 생산 능력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시대에 생산 기반이 줄어드는 쪽에 베팅하는 셈이며 더 나은 기회는 실물경제를 건설하는 기업과 산업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다만 자사주 매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체 S&P500 기업의 올해 1분기 순매입 규모는 270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기술 기업의 매입은 급감했지만 반도체 장비, 전력 회사, 데이터센터 부동산 등 AI 인프라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자사주 매입을 늘리며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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