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집값이 10년 넘게 이어진 공급 부족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남아도는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주택담보대출은행협회(MBA)가 6월 발표한 백서 '지속적인 주택 수요 둔화의 함의'는 인구 구조 변화가 시장의 오랜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MBA는 앞으로 10년간 미국의 신규 주택 수요가 연평균 약 110만 채, 누적 1130만 채 수준에 그칠 것으로 봤다. 반면 같은 기간 공급은 1060만 채에서 1460만 채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집을 필요로 하는 가구가 생겨나는 속도, 즉 가구 형성이 느려지는 것이 핵심 배경이다. MBA는 인구 고령화, 낮은 출산율, 젊은 층 인구 자체의 감소, 그리고 이민 축소가 겹치면서 새로 집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지난 흐름을 짚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신규 주택 건설을 크게 줄였는데 마침 밀레니얼 세대가 독립해 가구를 꾸리기 시작하면서 수요가 몰렸다. 지을 집은 부족하고 찾는 사람은 많으니 집값이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기록적으로 낮은 대출 금리에 힘입어 수요가 폭발했고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전국 집값은 55% 뛰었다. 임대료도 상당 기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건설업체들은 뒤늦게 공사를 늘렸다. 여러 가구가 한 건물에 사는 다세대 주택의 착공 물량은 2023년 1970년대 초 이후 볼 수 없던 수준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 공사들이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완공돼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한 시점이 수요가 식는 시기와 겹쳤다는 점이다. 금리가 크게 오르고 고용 시장이 흔들리면서 집을 사려는 발길이 줄었다.
MBA가 주목한 인구 변화는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Z세대가 생애 첫 주택 구매 연령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이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규모가 작다. 과거에는 부족한 젊은 층을 해외에서 들어온 이민자가 메워줬지만 2025년 이민 정책이 급격히 바뀌면서 그런 완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다른 하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다. 미국에서 자기 집을 소유한 세대가 가진 주택의 40% 이상을 베이비붐 세대가 쥐고 있는데 이들이 앞으로 20~30년에 걸쳐 세상을 떠나거나 시장에서 빠져나가면 그 집들이 매물로 나온다. MBA는 이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두고 공급을 조금씩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봤다.
건설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이어진다면 이런 흐름이 겹쳐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 MBA는 오늘의 건설 결정이 지금의 가격 신호에 근거해 내려지는데 이 신호가 이미 데이터에 드러난 인구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착공한 집이 완공될 무렵에는 수요 상황이 지금과 크게 달라져 있을 수 있고 그 결과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모두 전국적으로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협회는 전망했다.
집값 하락은 대출업계에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집을 사는 가구가 줄면 대출도 줄어 대출 취급액이 직접 타격을 받는다. 이미 집을 가진 사람에게도 문제다. 집값이 내리면 자산 가치가 줄어 집을 담보로 현금을 빌리기 어려워지고 손해를 보고 파는 경우도 늘어난다.
MBA는 집값이 갚아야 할 대출금보다 낮아지는 이른바 '깡통주택' 상태에 빠지는 매수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런 전망은 최근 의회를 통과한 '21세기 주택으로 가는 길 법안(21st Century ROAD to Housing Act)'보다 실제 집값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이 법안은 건설 규제를 풀고 대기업의 단독주택 매입을 제한해 공급을 늘리려는 초당적 법안으로 상원과 하원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미루면서 시행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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