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인공지능) 설비투자 붐이 경기 둔화를 일시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선행지수(LEI)와 고용 지표는 과거 경기후퇴기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해고 인원이 올해 들어 94만명을 넘어서며 연말에는 1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뉴욕 증시는 여전히 AI 낙관론과 연준(Fed)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최고가 부근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 상황을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아직 경기침체를 선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근거로 이미 침체가 시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NBER은 통상 경기침체를 뒤늦게 발표해왔으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실제 침체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뒤에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킨베스트(Hawkinvest) 애널리스트는 “NBER이 공식 선언을 내릴 즈음이면 이미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뒤일 가능성이 높다”며 “선행지표와 고용통계를 보면 미국은 지금 이미 경기후퇴 국면에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특히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하는 미국 선행경제지수(LEI)는 전형적인 침체 신호를 보이고 있다. LEI는 과거 경기하강기에 예외 없이 하락세를 보였던 지표로 2025년 8월 기준 전월 대비 0.5% 감소했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누적 하락률은 2.8%로 집계됐다. 콘퍼런스보드는 LEI의 6개월 성장률과 확산지수(diffusion index)가 모두 임계선을 밑돌며 “침체 신호가 공식적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세부 항목을 보면 제조업 신규주문, 소비자 기대지수 등 주요 부문이 모두 부진했다.
고용시장 역시 뚜렷한 둔화 조짐을 보인다. 구직지원업체 챌린저, 그레이앤크리스마스(Challenger, Gray & Christmas)에 따르면 9월 한 달 동안 미국 기업들은 약 5만4천명의 감원을 발표했다. 올해 누적 해고 인원은 94만6천명으로 집계됐으며, 2025년 말까지 100만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회사 부사장 앤디 챌린저는 “해고 규모가 이렇게 커졌던 시기는 대부분 경기침체기였다”며 “2005~2006년처럼 자동화의 첫 물결이 제조업과 기술 일자리를 대량으로 대체하던 시기와도 닮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해고만이 아니다. 신규 채용계획이 2009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점도 경기둔화를 뒷받침한다.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2022년부터 꾸준히 줄던 기업들의 채용계획은 2025년 들어 추가 급락하며 아직 회복 신호가 없다.
전문가들은 “AI 생산성 경쟁이 일자리 축소로 이어지는 전환이 본격화됐다”며 “AI 투자 호황이 오히려 노동시장의 체질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가운데 주식시장은 여전히 낙관적 분위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연중 내내 과열권에 머물러 있고 AI 기대감과 금리 인하 전망이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실물경제와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주식시장이 조정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며 그 과정은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시장 낙관론이 2007년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시 연준은 이미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갔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경기부양 신호로 해석하며 주식 매수에 나섰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금융위기가 터지며 시장은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금리 인하가 시장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NBER의 정의에 따르면 경기침체는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전반적인 경제활동의 뚜렷한 감소”를 의미하며 생산·고용·실질소득 등 주요 지표가 모두 약세를 보여야 한다.
현재 LEI와 고용 데이터는 이 정의에 근접해 있다. LEI는 6개월 연속 감소했고, 채용계획은 1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하킨베스트는 “이 두 가지 지표가 동시에 악화된 시기엔 예외 없이 경기침체가 뒤따랐다”며 “지금이 그 전형적인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AI 투자 열풍이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겉모습을 떠받치고 있지만 제조업과 소비, 고용 등 실질지표는 이미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LEI의 연속 하락, 100만명에 육박한 해고 규모, 그리고 2009년 이후 최악의 채용계획. 이 세 가지는 과거 경기침체 직전마다 반복됐던 조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AI가 만들어낸 호황의 착시가 꺼질 때 미국 경제의 진짜 체온이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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