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테크놀로지스가 올해 인공지능(AI) 서버 주문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IT 기업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논점은 델이 메모리 가격 급등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어떻게 넘길지”에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델이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AI 서버 출하 가이던스는 약 250억달러로, 지난해 대비 150% 이상 증가했다. 단순한 전망치 상향이 아니라 실제 주문 잔고(백로그)가 180억달러를 넘어서며 AI 특수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분기에만 새롭게 들어온 AI 서버 주문이 120억달러 수준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델은 인프라 솔루션 그룹(ISG) 매출이 분기 기준 최고치인 141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묶은 부문 매출만 보면 전년 대비 37% 증가한 101억달러로, “AI 서버가 기업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가 말 그대로 확인된 셈이다.
시장 평가도 긍정적이다. 미국 모건스탠리는 델의 AI 서버 매출이 내년에도 50% 이상 성장해 약 37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델 경영진이 FY27(회계연도 2027년) 가이던스를 공식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수년간 연평균 매출 7~9% 성장과 주당순이익(EPS) 15% 이상 성장”이라는 내부 모델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시장에 안내한 점이 반영됐다. 실제로 실적 발표 직후 델 주가는 장 초반 5%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다만 시장의 관심은 AI 서버 판매량에서 ‘메모리 슈퍼사이클’로 이동하고 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은 서버용 DRAM과 SSD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고 공급이 부족한 현상을 가리킨다. AI 서버에는 기존 서버보다 훨씬 많은 메모리가 필요한데, 전 세계 수요가 급증하면서 DRAM과 HBM(고대역폭 메모리) 생산 라인이 모두 포화 상태에 가깝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은 내년 메모리 가격을 최대 30~60%까지 인상할 가능성을 고객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이클은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메모리는 서버가 정보를 저장하고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본 부품이다. AI를 돌리는 서버는 일반 서버보다 훨씬 높은 속도의 대용량 메모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메모리 가격이 오르면 서버 제조사 원가에도 곧바로 영향을 준다.
모건스탠리는 “델의 AI 서버 판매 여부가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FY27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델은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델 경영진은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모든 제품군 원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규모의 이점과 공급망 협상력 덕분에 타사보다 먼저 필요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요가 몰리는 제품군으로 주문을 유연하게 이동시키고, 가격 조정도 병행할 수 있어 마진 하락 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 서버 수요의 성격도 델의 성장세를 뒷받침한다. 씨티(Citi)는 “델 AI 서버 매출의 중심축은 ‘네오 클라우드’”라고 분석했다. 네오 클라우드는 AWS·애저·구글 클라우드 같은 기존 하이퍼스케일러가 아니라 CoreWeave·Lambda·xAI·Crusoe 등 AI 계산에 특화된 신흥 클라우드 업체들을 뜻한다.
이 업체들은 GPU를 대량으로 확보해 대규모 AI 학습과 생성 모델 작업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서버 구매 속도와 규모가 전통 기업보다 훨씬 공격적이기 때문에 델의 매출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소버린 클라우드’ 투자도 수요를 키우고 있다.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이 자체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례가 늘면서 서버 업체들이 안정적인 대규모 수주를 확보하고 있다. 델은 최근 미국 에너지부, 중동 지역의 G42, 그리고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xAI 등이 고객사라고 언급하며 AI 인프라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월가의 평가는 엇갈렸다. 모건스탠리는 여전히 ‘언더웨이트(비중 축소)’ 의견을 유지하고 목표주가를 113달러로 소폭 상향했다. 반면 씨티는 델의 실행력을 높게 평가하며 ‘매수’ 의견과 175달러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씨티는 “메모리 가격 상승은 부담이지만 델은 다른 서버 제조사보다 대응력이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델이 AI 서버 시장에서 확보한 속도가 내년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AI 학습용 서버는 단가가 매우 높고 GPU와 메모리 수급이 기업 실적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데, 델은 두 요소 모두에서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 서버 수요가 네오 클라우드와 정부 기관을 중심으로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메모리 시장의 불안정성이 델의 실적을 흔들지 여부가 향후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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