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통제 방식을 조정하면서 수년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셰브론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로이터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셰브론(Chevron Corporation)을 비롯해 글로벌 원유 트레이딩 하우스인 비톨(Vitol)과 트라피구라(Trafigura)가 트럼프 행정부와 접촉하며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 물량을 둘러싼 협상에 나섰다.
이들 기업은 백악관에서 회의를 갖고 미국의 제재로 묶여 있던 베네수엘라 원유를 어떤 방식으로 해외 시장에 공급할지에 대해 역할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논의의 중심에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가 제재 기간 동안 팔지 못하고 저장고에 쌓아둔 최대 5천만 배럴 규모의 원유 재고가 있다. 미국은 그동안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원유 수출을 제한해 왔는데, 최근 들어 이 재고 물량을 관리된 형태로 시장에 내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존재하는 재고를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어떤 선박과 결제 방식으로 판매할지를 미국 정부가 허가와 감독을 통해 통제한다는 의미다.
원유를 팔 수 있는 창구를 제한적으로 열고 그 창구 운영권을 가진 기업을 정한다는 쪽에 가깝다.
그동안 이 역할을 사실상 맡아온 곳이 셰브론이었다. 셰브론은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미국계 메이저 석유기업으로, 현지 합작사업과 생산 시설 운영 경험을 유지해 왔다. 미국 정부가 부여한 특별 허가, 즉 라이선스를 통해 제한적인 범위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이를 자사 정유시설로 가져오는 구조였다.
라이선스란 제재 대상 국가와의 거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일종의 통행증으로, 선박 보험, 금융 결제, 항만 이용까지 모두 이 허가를 전제로 움직인다.
이 라이선스가 없으면 원유를 실은 배가 항구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대금을 송금하지 못해 거래 자체가 멈춘다.
이번에는 경쟁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진 이유가 있다. 원유를 실제로 생산하는 기업뿐 아니라 이를 운송하고 판매하는 데 특화된 트레이딩 하우스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이다. 비톨과 트라피구라는 유전 운영보다는 선박 확보, 보험 계약, 최종 구매자 연결에 강점을 가진 회사들이다.
제재 환경에서는 이런 능력이 곧 수익으로 이어진다. 베네수엘라 원유는 점도가 높아 가공이 까다로운 편이라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정유소가 제한적이고 그만큼 거래 구조를 짜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과 마진이 발생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원유를 직접 캐는 기업과 이를 시장에서 현금화하는 데 능숙한 트레이더를 동시에 활용하는 쪽이 관리와 통제에 유리해진 셈이다.
실제 물량 이동에서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선박 이동 자료에 따르면 셰브론은 이달 첫 주에만 약 168만 배럴의 베네수엘라 원유를 선적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다섯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해당 물량의 상당수는 미국 정유사 Phillips 66로 향했고, 일부는 발레로 에너지와 셰브론이 운영하는 미시시피 연안 정유시설로 배정됐다. 이들 정유사는 중질유를 처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어 베네수엘라 원유와 궁합이 맞는 곳으로 꼽힌다.
여기에 스페인 석유기업 렙솔(Repsol)까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렙솔은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던 지난해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을 중단했지만 최근 미국 당국에 수출 재개를 위한 라이선스를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와 백악관의 정확한 의중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누가 라이선스를 받느냐에 따라 원유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선박, 거래 상대, 그리고 수익 구조가 달라진다.
셰브론은 현지 운영 경험이라는 강점을, 비톨과 트라피구라는 글로벌 유통 능력을 앞세워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인 영향은 미국 걸프코스트 정유사와 원유 트레이딩 시장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이번 경쟁은 제재 환경 속에서 그 원유를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지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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