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서 IBM 주가가 2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생성형 AI 기업 앤트로픽이 구형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자동으로 분석하고 현대화할 수 있는 ‘클로드 코드’ 도구를 공개한 직후다. 은행과 정부 시스템의 핵심을 떠받쳐온 코볼은 수십 년간 IBM 메인프레임에서 구동돼 왔다.
(사진 출처: 구글 주식)
시장은 이 발표를 IBM의 전통적 수익원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이해했고 지난 23일 IBM 주가는 하루 만에 10% 넘게 급락했다. 2000년 이후 최대 낙폭이다.
코볼은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언어로 지금도 대형 금융기관의 계정 처리와 결제 시스템에 광범위하게 쓰인다. IBM은 이 코드를 유지·보수하고 새 환경에 맞게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컨설팅 수익을 올려왔다. 지난해 IBM 컨설팅 매출은 211억 달러에 달한다.
앤트로픽이 공개한 도구는 코볼 코드 전체를 자동으로 읽어 구조를 정리하고 의존 관계를 파악해 다른 언어로 전환하는 과정을 지원한다. 그동안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던 분석 작업을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자들은 IBM의 고마진 컨설팅 사업이 자동화에 잠식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코드를 번역하는 기술과 실제 시스템을 옮기는 일은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 전산망은 단 한 번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수십 년간 누적된 거래 기록과 복잡한 규제 요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코드가 새 언어로 변환됐다고 해서 곧바로 클라우드 환경으로 이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 정합성 검증, 보안 인증, 내부 통제 체계 재설계 등 사람이 개입해야 할 영역이 여전히 크다.
IBM의 주력 제품인 메인프레임은 이런 안정성을 무기로 삼는다. 최근 출시된 ‘z17’ 시스템은 내부 중복 구조와 공유 메모리 설계를 통해 무중단 거래를 지원한다. 대형 은행들이 여전히 메인프레임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IBM은 메인프레임 하드웨어 판매와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유지보수 계약을 통해 안정적 현금흐름을 확보해왔다.
재무 지표도 당장 흔들리는 모습은 아니다. IBM은 지난해 약 147억 달러의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총부채는 613억 달러 수준이다. 회사는 올해 매출 성장률을 약 5%로 제시했다. 동시에 생성형 AI 관련 수주 잔고가 125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기존 고객 기반을 활용해 AI 솔루션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IBM은 최근 ‘에이전틱 AI’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거나 코드를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 시스템 전반에서 자동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AI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체 플랫폼인 왓슨x를 통해 금융·제조·공공 부문 고객에게 맞춤형 AI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코볼 현대화 프로젝트와도 연결된다. IBM 역시 코드를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AI 기능을 자사 서비스에 통합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를 과도한 공포라고 본다. 대형 금융기관은 검증되지 않은 도구로 핵심 시스템을 단숨에 교체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전통적 컨설팅 모델의 가격 구조가 재조정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코드 분석과 문서화가 자동화되면 인력 투입 규모와 청구 단가를 IBM 스스로 낮출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올해 남은 기간 IBM의 과제는 메인프레임이라는 안정적 기반을 유지하면서 AI 전환의 수혜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코볼 자동화 기술은 위협이자 동시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기존 고객이 현대화를 결심할 경우 그 프로젝트를 누가 설계하고 통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IBM이 그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면 주가 급락은 일시적 충격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못하면 AI가 촉발한 구조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실적에 반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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