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에서 대형주의 몸값이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소형주와의 가격 격차는 역사적 기준으로도 이례적인 수준이다.
투자리서치 기관 야데니 리서치가 집계한 시장 데이터에 따르면 S&P 500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 약 20.6배다. 중형주 500개 종목으로 구성된 S&P 400은 16.1배, 소형주 600개 종목의 S&P 600은 15.1배에 머물고 있다. S&P 500이 중형주보다 28%, 소형주보다 36% 비싸게 거래되는 셈이다.
이 정도 격차가 나타난 시기는 투자자들이 대형 기술주에 열광하며 거품을 키웠던 1990년대 말이 사실상 유일하다.
현재의 구도는 당시와 많이 닮아 있다. S&P 500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AI 관련 초대형 기술주가 높은 비중으로 편입돼 있고, 이들 종목에 자금이 집중되면서 지수 전체의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렸다. 상위 10개 종목이 S&P 500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30%를 훌쩍 넘는다.
팩트셋은 2026년 S&P 500 편입 기업들의 연간 순이익 증가율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는데 시장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이익 성장 기대가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한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소형주는 투자자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저평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주 ETF인 SPDR S&P 500(SPY)이 올 들어 견조한 흐름을 보인 것과 달리 소형주 ETF인 아이셰어즈 러셀 2000(IWM)은 연초 이후 부진이 계속됐다.
중형주 ETF인 뱅가드 미드캡(VO), 아이셰어즈 코어 S&P 미드캡(IJH) 역시 같은 흐름 속에 SPY 대비 수익률이 뒤처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나 2월 들어 흐름이 달라졌다. IWM은 2월 중순을 기점으로 SPY 대비 수익률을 빠르게 좁히며 올해 처음으로 대형주를 앞서는 구간이 생겼다. S&P 600 편입 기업들의 실적도 수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이익 증가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수 경기에 민감한 소형주 특성상 미국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견조하게 유지되는 점도 소형주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신호들을 근거로 일부 운용사들은 올해를 '소형주 부활의 해'로 점치기 시작했다. 애버딘 인베스트먼트는 2026년 소형주가 시장을 주도할 여건이 갖춰졌다고 판단했고, 코네스토가 캐피털은 극단적인 대형주 고평가 국면이 오히려 소형주 투자 기회를 넓힌다고 봤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은 소형주 시장에서 종목 선별을 통한 초과 수익 가능성이 커졌다며 적극적인 운용 전략을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른바 '2026년의 대순환', 즉 대형주에서 중·소형주로 자금이 이동하는 국면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밸류에이션 격차는 결국 좁혀지는 경향이 있다. 대형주가 하락하거나, 소형주가 상대적으로 강하게 오르거나, 혹은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방식이다. 다만 극단적 고평가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은 과거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교훈이다.
닷컴 버블 당시에도 대형 기술주 고평가 논란은 붕괴 직전까지 수년간 이어졌다. 경기 조정 주기를 반영한 장기 PER 지표인 CAPE 비율은 현재 30배를 웃돌며 2000년대 초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AI 투자에 대한 실질적인 수익 회수 여부를 둘러싼 의구심도 커지는 추세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AI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매출·이익 성장이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검증 요구가 올 들어 부쩍 강해졌다.
일부 분석가들은 현재의 AI 투자 열풍이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인프라 투자 광풍과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불확실성이 현재의 대형주 프리미엄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시장 논쟁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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