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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산성 혁명? 도이체방크 '연준의 1990년대 향수는 위험하다'

  • 고건 기자
  • 입력 2026.07.1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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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AI를 촉매로 1990년대 후반의 '생산성 기적'을 재현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는 가운데 도이체방크가 이에 신중론을 제기했다. 생산성이란 노동자 한 명이 같은 시간에 만들어내는 산출량을 뜻하며 이 수치가 오르면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Fed는 지난 6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케빈 워시 의장 주도로 'AI 태스크포스'를 신설했다. 벤처투자자 마크 앤드리슨, 스탠퍼드대 경제학자 채드 존스,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게임기 브랜드 엑스박스의 아샤 샤르마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조직이다. 


워시 의장은 이 조직에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속도, 범위를 살피고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Fed의 정책 목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하도록 지시했다.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려 공급 능력을 키운다면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워시 의장의 판단이다.

 

표면적으로 생산성 지표는 고무적이다. 최근 8개 분기 동안 비농업 부문 생산성은 연율 2.4% 상승했고 2024년에는 3.0%까지 빨라졌다. 

 

이는 경기 확장기 후반부 기준으로 199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빠른 2년간의 생산성 증가세다. 기업들의 투자 흐름도 당시와 닮았다. 2025년 1분기 이후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센터, 컴퓨터·주변기기가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한 몫은 평균 0.8%포인트에 달했다. 특히 정보처리 장비의 기여도는 AI 관련 투자가 몰리면서 1999년 이후 가장 높았다.

 

도이체방크는 그럼에도 지금 상황을 1990년대와 그대로 겹쳐 볼 수 없는 세 가지 차이를 지적했다.

 

첫째는 노동 공급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는 일할 수 있는 인구 가운데 실제로 일하거나 구직에 나선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경제활동참가율이 꾸준히 올라 2000년대 초 경기 침체 직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한창 일할 나이에 접어들었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도 늘던 시기였다. 

 

반면 지금은 인구 고령화로 참가율이 낮아지고 있고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이 이 흐름을 더 부추긴다. 도이체방크는 순유입 이민이 없다면 미국 인구가 2020년대 말부터 줄어들 수 있다고 봤다.

 

둘째는 물가를 눌러주던 세계화의 힘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는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화가 빨라지면서 공산품 근원물가 상승률이 2.5~5% 수준에서 0~1%대로 뚝 떨어졌다. 근원물가란 가격 변동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을 뺀 물가를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역이 되레 뒷걸음질 치는 탈세계화와 관세가 그 흐름을 되돌리고 있다. 도이체방크는 세계 무역에서 멀어지는 이 변화만으로도 근원물가에 0.1~0.4%포인트가 더해질 수 있고 관세가 더 큰 폭을 얹을 수 있다고 추산했다.

 

셋째는 다른 정책들이 생산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는 사실상 국내 생산자에게 물리는 세금처럼 작동한다. 미국 수입품의 절반가량이 완제품이 아니라 국내 기업이 생산에 투입하는 중간재이기 때문이다. 

 

미 노동통계국(BLS) 연구에 따르면 이렇게 수입한 중간재는 1997~2005년 생산성 향상에 상당히 기여했는데 관세로 그 효과가 뒤집힐 위험이 커졌다.

 

학계 추정치를 종합하면 AI는 추세 생산성 증가율을 연 0.5~0.7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경제의 잠재 생산 능력을 키우고 이른바 '중립금리'를 밀어 올릴 가능성이 크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자극하지도 억누르지도 않는 균형 수준의 금리를 뜻한다. 

 

도이체방크가 13개 지표로 실질 중립금리를 추적한 결과 이 값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뚜렷이 올라 최근 몇 년간 1.5~1.75% 범위에서 안정됐다.

 

도이체방크는 AI 덕에 정책 당국이 강한 성장을 곧바로 경기 과열로 단정하지 않고 더 열린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됐다고 봤다. 다만 물가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생산성이 빨라지면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성장 속도의 한계는 높아지겠지만 1990년대 중반 앨런 그린스펀 당시 Fed 의장이 경기 후반의 과열 신호를 못 본 척 넘길 수 있게 해줬던 물가 하락 압력을 지금 그대로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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