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의 실존 인물로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이름을 알린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8일(현지시간) 현재의 미국 증시를 "트럼프의 시장"이라고 규정하며 약세 전망을 거듭 내놨다.
버리는 전날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에서 지금의 주가가 기업의 실제 실적이나 재무 상태를 더 이상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격이 다시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고 누구도 차마 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바보들아, 지금은 트럼프의 시장이고 너희가 빛날 시간"이라며 시장의 과열을 비꼬았다.
버리의 발언은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주가 급등 직후 나왔다. 인공지능(AI) 분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팔란티어는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돈 2026년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뒤 이번 주에만 약 37% 올랐다. 팔란티어는 지난 3일 2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3% 늘어난 19억4천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 18억1천만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특히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을 상대로 한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이 149% 급증했다. 조정 주당순이익도 0.41달러로 예상치 0.35달러를 넘었다. 회사는 연간 매출 전망치를 81억5천만달러 이상으로 올려 잡았다.
실적 발표 다음 날 팔란티어 주가는 하루에만 약 29% 뛰었다. 여기에는 공매도 투자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주식을 되사는 '숏 스퀴즈'가 작용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해 주식을 빌려 판 뒤 값이 떨어지면 되사 갚아 차익을 남기는 거래인데 주가가 오르면 반대로 손실이 커진다. 이를 막으려 매수가 몰리면 주가가 더 밀려 올라간다. 팔란티어의 이날 급등으로 공매도 세력이 하루 만에 약 30억달러의 평가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팔란티어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팔란티어는 뛰어난 전투 역량을 입증했다"고 언급하며 힘을 실어준 종목이기도 하다.
버리는 이번 상승을 과거 거품 사례에 빗댔다. 그는 1998년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붕괴 이후 2000년 3월까지, 인터넷 기업 주가가 실적과 무관하게 치솟던 '닷컴 버블' 시기를 언급했다. 당시 아마존 같은 인터넷 기업이 시장을 주도했고 "완전한 바보들이 그 기간에 영구적인 부를 쌓았다"는 것이 버리의 설명이다.
다만 2002년 여름이 되자 상황이 뒤집혀 다우존스, S&P500, 나스닥 지수가 기술주 매도세에 몇 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며 결국 가격이 다시 중요해지는 국면이 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버리는 최근 AI 관련 종목을 겨냥한 하락 베팅을 확대해왔다. 그는 지난 6월 30일 엔비디아, 마이크론, 캐터필러, 테슬라와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에 걸쳐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했다. 캐터필러를 공매도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후 7월 24일 마이크론을 933.86달러에, 엔비디아 공매도를 210.28달러에 추가하며 규모를 키웠다.
엔비디아에 대해 버리는 현재와 미래 수요의 상당 부분이 실제 최종 고객 수요가 아니라 서로 돈을 대주는 순환 구조로 조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종목에 대해서는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200일 이동평균선보다 65% 넘게 높은 수준이라며 이런 과열은 2000년 닷컴 버블 때 단 한 번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버리의 하락 베팅이 모두 들어맞은 것은 아니다. 마이크론 주가는 올해 들어 약 192% 급등했고 엔비디아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반면 팔란티어와 테슬라는 팔란티어 실적 발표 전까지 각각 30% 안팎 하락했다. 버리는 엔비디아에 대해서는 주식을 직접 빌려 파는 공매도가 아니라 '풋옵션'을 활용하고 있다. 풋옵션은 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두는 거래로, 주가가 올라도 손실이 처음 낸 옵션 매입 비용으로 제한된다.
한편 버리가 운용하던 헤지펀드 사이언자산운용은 지난해 1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을 자진 취소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실제 포지션 규모와 변동을 외부에서 추적하기는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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