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만드는 미국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주가가 9월 11일 뉴욕 증시에서 12.44% 오른 62.09달러에 마감했다. 하루 거래량은 3370만 주로 최근 3개월 평균인 2130만 주보다 58% 많았다. HPE는 2015년 상장 이후 545% 상승했으며 이날 종가는 52주 최고가인 64.25달러에 근접했다.
급등의 방아쇠는 전날 장 마감 후 나온 오라클의 실적과 투자 계획이었다. 오라클은 클라우드를 통해 기업에 데이터베이스와 전산 인프라를 빌려주는 회사로 최근 AI 연산을 처리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오라클은 2027 회계연도에 순수 투자 기준으로 약 700억 달러, 고객 선급금 등을 반영하기 전 총액 기준으로는 900억~950억 달러를 데이터센터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직전 회계연도 투자액 557억 달러에서 다시 크게 늘어난 규모다. 이 발표가 나오자 시장은 데이터센터를 채우는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실제로 만드는 기업들이 그 수혜를 볼 것으로 판단했다.
오라클이 앞으로 계약상 벌어들일 미이행 매출 잔량은 1분기에만 2090억 달러 늘어 총 664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300억 달러 이상이 새로 체결된 AI 클라우드 계약이다. 대규모 계약이 쌓였다는 것은 그만큼 데이터센터 증설이 계속된다는 신호이고 장비를 공급하는 HPE의 주문도 함께 늘어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같은 날 서버·네트워크 업종 전반이 동반 상승했다. 경쟁사 델은 11.98% 오른 567.30달러, 네트워크 장비업체 아리스타네트웍스는 5.61% 오른 199.59달러, 서버 제조사 슈퍼마이크로는 7%대 상승으로 마감했다.
RBC캐피털마켓은 이날 델에 대한 분석을 새로 시작하며 '아웃퍼폼(시장수익률 상회)' 의견과 640달러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메모리 등 부품 공급 부족이 오히려 델의 AI 서버 수주 잔량을 2027 회계연도까지 지탱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S&P500 지수가 0.84%, 나스닥이 0.96% 오르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서버 관련주의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이번 급등은 HPE가 9월 2일 발표한 실적이 뒤늦게 재평가된 측면도 있다. HPE는 3분기(5~7월) 매출이 1년 전보다 34% 늘어난 122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정 주당순이익은 1.11달러로 처음 1달러를 넘어섰고 시장 예상치 0.93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네트워크 부문 매출이 75% 늘어난 29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데이터센터 내부를 연결하는 장비 매출은 두 배 이상, 데이터센터 간 대용량 통신을 담당하는 라우팅 장비 매출은 270% 급증했다.
주목받은 것은 부품 구매 약정이다. HPE가 앞으로 사들이기로 확정한 부품 규모는 직전 분기 60억 달러에서 300억 달러로 다섯 배 늘었다. 안토니오 네리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역사상 어느 분기보다 많은 주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HPE는 2026 회계연도 매출 성장률 전망을 34~37%로 올렸고 잉여현금흐름 목표도 최소 37억5000만 달러로 상향했다. 2027 회계연도에는 매출을 13~17% 늘리고 잉여현금흐름을 최소 50억 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실적 발표와 함께 HPE는 오라클과의 네트워크 협력 확대도 공개했다. 오라클이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에 HPE의 주니퍼 라우팅·스위칭 장비를 도입하는 다년 계약이다.
주니퍼는 HPE가 인수한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HPE는 이 거래에서 가격을 깎아주는 대신 오라클에 자사 주식을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워런트)를 부여했다. 인프라 장비업체가 핵심 고객을 붙잡기 위해 가격 할인 대신 지분 유인책을 쓰는 방식이다.
실적 이후 증권가 평가도 잇따라 상향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목표주가를 82달러에서 88달러로 올리며 '매수' 의견을 유지했고, 트루이스트는 70달러로 레이먼드제임스는 86달러로 목표주가를 제시했다. 씨티와 에버코어 등도 AI 인프라 수혜주로서 상승 여력을 강조했다.
HPE는 9월 30일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서 네트워크 사업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다만 위험 요인도 남아 있다. HPE는 주문은 확보했지만 메모리 등 핵심 부품을 직접 만들지 못해 공급망 확보와 가격 관리가 관건이다. 상대적으로 이익률이 낮은 AI 서버 비중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눌릴 수 있다는 우려, 주니퍼 통합 과정의 부담, AI 투자 둔화 가능성 등이 함께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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