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국채시장에서 최근 3년에서 7년 사이 만기의 중기채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단기채는 금리 인하 기대에 눌리고 장기채는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확대 우려로 불안정성이 커진 가운데 그 중간 구간이 투자자들에게 ‘안정적 수익 구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연준(Federal Reserve)의 통화정책, 재무부의 발행 구조, 그리고 채권 수익률 곡선 변화가 동시에 맞물리며 중기채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단기채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향후 수익률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연준은 9월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한 데 이어 10월에도 추가 인하를 시사했다.
단기채 금리는 중앙은행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정책 전환 시기에 불확실성이 커진다. 반면 장기채는 다른 이유로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와 국채 발행 증가로 인해 장기물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장기채 투자자는 정부의 부채 부담이 커질수록 ‘기간 프리미엄’이라 불리는 위험 보상을 더 요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장기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고 변동성이 커졌다는 평가다.
중기채가 각광받는 것은 이 두 구간의 불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움직임과 관련이 깊다. 중기물은 금리 변화에 대한 가격 민감도가 크지 않으면서도 일정 수준의 이자 수익을 제공한다.
또한 만기가 짧아질수록 채권가격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롤다운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보유 기간 동안의 추가 수익이 기대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재무부 발행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미 재무부는 최근 분기별 리파이낸싱 발표에서 장기물 발행 규모를 당분간 동결하기로 했다. 대신 단기채 발행을 확대해 재정 수요를 메우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장기물 공급이 급증하지 않는다는 점은 투자자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동시에 단기물의 금리가 정책 변화에 따라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기물이 상대적으로 수급상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 구조 변화 중 하나로 ‘수익률 곡선의 스티프닝(steepening)’ 현상도 주목된다. 수익률 곡선이란 채권의 만기별 금리를 순서대로 이어 그린 선으로, 보통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게 나타난다.
최근 들어 단기금리는 연준의 완화 신호로 낮아지는 반면 장기금리는 재정 리스크로 높게 유지되면서 만기 간 금리 차이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곡선의 기울기 확대를 ‘스티프닝’이라 부른다.
스티프닝이 일어난다는 것은 시장이 단기적으로는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부담과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남아 있다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 구조 속에서 중기채는 단기와 장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변동성의 충격을 덜 받는다.
금리 하락 구간에서 자본차익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수익과 안정의 절충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관투자자들의 움직임도 중기물 선호를 강화하고 있다. 은행권은 2023년 대규모 평가손실을 겪은 이후 장기 듀레이션 자산을 줄였고 보험사와 연기금도 금리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만기를 짧게 가져가는 추세다.
그러나 초단기채만 보유할 경우 향후 금리 인하 국면에서 재투자 수익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따라 다수 기관이 평균 만기를 5년 안팎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자금의 흐름도 비슷하다. 유럽과 일본이 성장 둔화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며 장기물 금리가 흔들리는 반면 미국의 중기물은 달러 강세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와 유동성을 제공하고 있다. 외국계 기관들은 미국 중기채를 달러 자산 중 가장 안정적인 투자대상으로 보고 있다.
결국 중기채 강세는 단기금리 하락 기대와 장기금리 불안, 그리고 연준과 재무부의 정책 조합이 동시에 만들어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시장은 금리 방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기 구간을 중심으로 자산을 재배치하고 있으며 이는 2025년 하반기 채권시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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